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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숨결은 어디로 갔는가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3회 작성일 201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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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언론인)

50년 전의 4·19혁명은 서울 변두리에도 찾아왔다.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 채 달리는 트럭에 매달려 태극기를 흔들어대던 대학생들. 그들의 목멘 환호성에 뜨거운 박수를 쳐주던 어른들.
호기심으로 먼지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그 트럭을 뒤쫓아가던 동네 꼬마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코흘리개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으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수십명의 대학생이 경찰 총탄에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혁명의 환호 뒤에 정의를 위한 분노와 비애가 함께 자리잡고 있었음을 철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의 거창한 이미지와는 달리 수유리 4·19묘역에 대한 청소년기의 기억은 어딘지 쓸쓸한 잔상으로만 남아 있다. 기념식 때마다 분향대 주변에 큼지막한 화환들이 줄지어 놓여지곤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차라리 영령들에게 더 위안을 준 것은 야생화나 뻐꾸기의 지저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코흘리개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해마다 4·19 무렵이면 대학가는 날마다 시위였다. 캠퍼스 곳곳에 ‘유신 타도’ ‘교련 철폐’ 등의 유인물이 뿌려졌고 크고 작은 집회나 시위가 잇따랐다.

대학가에선 혁명 숨결 사라져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변할 만큼 변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달성함으로써 과거처럼 대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거리로 나설 필요는 없어졌다. 설령 사회적인 이슈가 제기된다 하더라도 정치권과 언론, 전문가 집단을 앞세운 시민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대학가 분위기도 상당히 바뀐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직을 걱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학점 관리와 어학연수, 자격증 취득에 신경을 써야 하니 다른 문제에 한눈을 팔기가 어려울 것이다. 학생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공부가 먼저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대학가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4·19혁명의 환호와 숨결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다. 4·19가 ‘의거’에서 ‘혁명’으로, 4·19묘지가 ‘국립묘지’로 격상됐고 헌법 전문에 ‘4·19 이념의 승계’ 규정이 추가됐으나 그때의 감동은 오히려 잊혀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묘한 정치사적 굴곡을 거치면서 혁명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 및 폄하된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는 특히 50주년이라는 한획을 긋는 시점에서 학술 발표회를 포함해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의 숨가쁘고 처절한 상황을 환기시키기에는 역시 미흡했다.
4·19를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중이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과연 공휴일 하루 더 늘었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불의에 항거한 순수한 열정
이제 다시금 혁명의 주역들을 가슴에 되새긴다. 자유당의 편파적 선거유세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던 대구 고등학생들과 김주열군을 비롯한 마산 시민들, 광화문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했던 고대생들, 그리고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가두행진에 나섰던 대학교수들…. 그것은 모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순수한 열정에서였다.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어도 뒷세대에 전하는 혁명의 교훈은 지금도 무언의 함성으로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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