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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두산家 정신적 지주 명계춘 여사 별세
작성자 뉴스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200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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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家 정신적 지주 명계춘 여사 별세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가 9월16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난 명 여사는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1931년 박두병 회장과 결혼해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등 6남1녀를 길러냈다.

명 여사는 좀처럼 외부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 해온 현모양처의 표본이었다. 박두병 회장이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1970년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며 재계의 거목으로,한국의 산업 합리화 운동을 주도한 20세기의 대표적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재벌가의 안주인답지 않게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명 여사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고인은 한 세기 동안 두산그룹이 발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왔던 산증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셈이다.

저포전(紵布廛ㆍ모시가게)을 운영하던 명태순씨의 딸로 태어난 명 여사는 1931년 5월 숙명여고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공회당(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당시 경성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두병 회장과 결혼,이듬해 맏아들 박용곤 명예회장을 낳았다.

열여덟살의 나이에 3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들어간 명 여사는 해방 후에는 운수업의 실무를 맡기도 했다. 그의 시어머니가 분가루 공장인 '박가분 제조본포'를 운영하면서 사업을 익혔던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초기에 운수업은 가업 수준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으나,훗날 무역업체 '두산상회' 발족의 토대가 됐다. 이는 6ㆍ25 전쟁 중 피란지인 부산에서 대규모 운수업인 '제3모터풀'을 운영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명 여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면서 2005년 '형제의 난' 이후 소원했던 두산가 형제들이 상가에 모두 모여 문상객을 맞았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박용현 두산건설 회장,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물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도 상주로 빈소를 지켰다. 이날 빈소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박범훈 중앙대 총장 등 재계ㆍ학계 인사들의 문상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8시3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선영. (02)2072-2092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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