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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제도를 대신할 새 신분등록제도의 의의와 한계
작성자 호구
댓글 0건 조회 493회 작성일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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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제도를 대신할 새 신분등록제도의 의의와 한계

지난 4월 27일 국회에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호적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률이 제정됐다. 2005년 3월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었던 신분등록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그 제도의 설계를 담은 법이 막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호적법 대체입법이 처리되는 과정은 2년 전 호주제 폐지 때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탈이었을까? 호적법을 대신할 법률안으로 3개의 법안이 각각 국회에 상정돼 있었지만 막상 본격적인 심의에서 본회의 통과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호적제도 안에는 가족, 시민권, 인권과 같은 묵직한 쟁점들이 숨어 있다. 필요할 때 호적등본을 떼서 어딘가에 제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이런 쟁점들은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도 ‘가족관계’라는 말이 이 법을 대표하는 상징이 돼 버렸다.

과연 호주제 폐지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지난 4월말 법안 처리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새 신분등록제도는 호적의 문제점을 개선하긴 한 것인가? 긴 이야기의 출발점은 호주제로 되돌아간다.

호주제와 호적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관념적인 가(家)를 구성하고 이를 원칙적으로 직계비속 남성에게 승계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호주와 가족은 실제와는 다른 ‘가상’의 개념인데, 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할머니나 어머니의 호주가 된다거나, 같이 살지도 않는 부모와 장남 가족이 법적으로는 한 가족이라던가 하는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가상의 호주, 가상의 가족이 수십 년간 구성되고 유지 가능했던 이유는 이것이 모두 호적이라는 장부 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호적과 현실의 괴리 그 자체만이 아니다. 호주-호적제도가 전제하는 특정한 가족형태가 ‘공인’된 가족 모델이며, 여기에서 벗어난 가족은 문제 있는 가족으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공고히 유지되어 왔다는 점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 호적제도는 국가가 개별 국민의 신분관계를 등록·관리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국민은 가족-호주를 통해서만 국민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가면서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해야 할 때 매순간 가족과 호주를 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호주-호적제도를 바꾸는 것은 국가가 강제하는 가족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이자, 호주를 뺀 국가와 개별 국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내가 ‘나’라는 것, 즉 개인의 신분을 무엇으로 공증할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호주제 폐지가 기정사실화되던 2000년대 초반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대안으로 유력했던 가족부는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호적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1인 1적부 즉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는 곧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결국 통과된 법률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라니, 문제가 어떻게 꼬인 것일까?

개인별 신분등록부의 명칭이 ‘가족관계등록부’?

이 법률이 국회 법사위의 대안으로 만들어지기 전, 3개의 호적법 대체입법안-노회찬 의원안, 이경숙 의원안, 정부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었다. 세 법안은 모두 개인별 신분등록제도, 즉 모든 국민의 신분등록 장부를 각 개인 단위로 작성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그런데 국회 심의 과정에서 법률 명칭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되었고, 개인별 신분등록부의 이름까지 ‘가족관계등록부’가 돼버렸다. 법률 내용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이름표가 생긴 것이다.

이 배경에는 신분등록제도의 기본 틀을 개인으로 바꾸더라도 여전히 가족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고 개별 국민의 지위를 가족 안에 묶어 두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호주제 폐지 때문에 가족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보수 세력에게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기 위해서 일까? 새 법률에 호주의 원 주소라고 할 수 있는 본적이 이름만 ‘등록기준지’로 바뀐 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해석에 더욱 무게를 실어 준다.

이러한 문제들은 새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호주제와 호적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가 호주와 가족을 통하지 않고 개인과 관계 맺는 것은 요원한 일인가? 법·제도 상 한국사회의 시민권이 가족-가장이 아닌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그렇게 획기적인 것인가? 이런 질문이 던져질 새도 없이 새 법률은 황급히 국회의 손을 떠나버렸다.

목적별 신분등록제 방안의 기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제도에는 호적제도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지난 2004년부터 호적을 대신할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목적별 신분등록제 방안의 기여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펴보려 한다.

이 방안을 고안하고 입법화하기 까지 오랜 기간 활동했던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은 호적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가족부가 주목받던 2003년 개인별 신분등록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결성된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 활동에서 출발했다. 이후 보다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공동연대는 호적제 개선의 방향으로 △성평등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 △개인정보 보호라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고, 이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제도로 목적별 신분등록제도를 선보였다.

이 제도는 신분등록의 기준을 개인으로 하되, 신분사항을 담은 증명서를 그것이 쓰이는 목적(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양식으로 발급한다는 의미에서 목적별 신분증명제도라고 이름 붙여졌다. 또 다른 특징은 신분등록과 증명 과정에서 개인정보의 수집과 공개를 최소화하고, 현재의 신분사항을 보여주는 증명서와 신분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증명서를 분리하여 프라이버시와 정보인권을 보호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제도 구상이 수개월의 작업을 거쳐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고와 증명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법률안으로 만들어졌고, 지난 2005년 9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됨으로써 목적별 신분등록제도는 가장 급진적인 그러나 이상적인(?) 방안일 뿐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한 호적 대안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비록 이번에 통과된 법률에 목적별 법안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위 활동 과정은 뒤이어 발의된 여당과 정부 법안의 틀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호주제 폐지 직후까지도 가족부를 고수했던 정부의 입장이 개인별 신분등록제로 전환되었고, 두 법안 모두 한계는 있지만 목적별 증명방식을 채택하고 개인정보 보호의 원리를 제도에 통합시켰던 것이다. 때문에 새로 통과된 신분등록제도는 등본 한 장에 모든 개인정보, 가족정보를 명기하는 호적제도와 달리 가족증명, 기본증명, 혼인증명, 입양증명 등 용도에 따른 목적별 증명서를 발급하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목적별 신분등록제를 현실화시키고자 노력했던 여러 여성, 인권, 정보인권단체들이 거둔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법률에 따라 새로운 신분등록제도 개선작업이 마무리되면 오는 2008년 1월 1일 드디어 호주제 폐지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호주제 폐지 결정까지 50년, 호적법 개선 방안을 확정짓기까지 또 3년을 더, 국민들은 참으로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이 마무리 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치기 어렵다. 이번 법률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민감한 신분변동사항이 불필요하게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또 실제 국민들이 출생, 혼인, 이혼 등을 신고하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 사용할 각종 서류가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지는 않는지, 여전히 ‘정상 가족’을 모델로 하여 편견을 조장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이번 법률 제정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 우리 사회의 끈질긴 ‘정상 가족’에 대한 집착, 가족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시민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오랜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수많은 법·제도의 근본적인 원리마냥 작동하고 있는 가족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운동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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