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누가 전선을 교란했나?
작성자 펌순이
본문
누가 전선을 교란했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로드맵 타협안이 나오기까지
노사관계선진화입법이 국회 환노위를 통과하던 지난 12월 8일의 풍경은, 국회
담장을 경계로 당황스러울만치 극단적인 대비를 이뤘다.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로드맵이 민주노동당의 참여 속에 환노위에서
처리되던 시간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회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 자리에서 "로드맵 날치기 강행이 코 앞에 왔다.
물러나면 안된다"며 대열을 이끌었고, 경찰의 해산작전으로 허영구 부위원장
등 26명이 연행됐다.
그러나 다음날 민주노총이 발행하는 신문인 주간 <노동과세계>는 11일자
헤드라인에서 '날치기'라는 단어를 빼기로 했다. 민주노동당이 참여한, 혹은
사실상 '합의처리'한 로드맵 관련법안을 '날치기'로 몰아붙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국회안의 민주노동당과 국회밖의 민주노총. 누구의 책임인지와 무관하게
일단 전선은 흐트러졌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도 이런 혼선을 의식한 듯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제까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너무 일치화시켜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투쟁에서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으로서의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투쟁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원들, 나아가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들에게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총은 구분될 수 있을까?
국회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국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복기해 보자.
저녁 7시께 심상정 의원이 기자들 앞에 섰다. 심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전향적으로 심의하겠다고 해서 소위를 다시 열게 됐다. 어떤
부분이 전향적인 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었다"는 다소 애매한
브리핑을 했는데, 그 직후 민주노동당은 법안소위 점거를 풀었고 연이어
로드맵의 상임위 전체회의 상정에 합의했다.
전체회의장에 가장 늦게 입장한 단병호 의원은 복수노조 시행 유예,
대체근로 허용,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등 로드맵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반대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제종길 의원은 약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제 의원은
"이런 식으로 전체회의에서 다시 반대 의견을 낼 것이면 왜 소위에서 합의를
했냐"고 따졌다. 조금 전에, 단병호 의원이 반대 의견을 내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제종길 의원은 모르고 있었다.
#1) 1시간 전: 저녁 6시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에서는 비공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단병호 의원과 그의 보좌관,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이병일 노동위원장, 김용신 의정지원단실장,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
김태현 정책실장,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 등이 참석했다.
단 의원이 우원식 법안소위장과의 협상 내용을 발제했다. 경위권이
발동되었기 때문에 7시부터 전체회의가 열릴 것이고 원안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결론은 필수공익사업장 대체근로를 '파업참가자 숫자의 50% 만큼 허용'으로
명확히 하고 표결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보건의료노조가 다급함을 호소하는
상황이었다. 단 의원도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김태일 총장이 결단을
내린 것인데, 어쨌든 교섭에 대한 책임은 당에 있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회의 직후 홍준표 환경노동위원장과 단병호 의원이 만나 타협안을 만들었다.
7시께 성안이 됐는데, 그 내용은 전체회의에서 결정된 것과 동일하다.
(△파업참가자의 50%까지 대체근로 허용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 현행
60일에서 50일로 단축 △필수공익사업장에 항공사 포함 △복수노조
허용-전임자임금지급급지 3년 유예 등등) 수정안은 홍준표 위원장이
제출하기로 합의가 됐다.
홍준표 의원은 "합의가 아니라 양해라고 봐야한다. 단 의원이 반대 의견을
발표하고 대신 표결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민노당 안을 거의 다
수용하면서 표결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 아니냐'고 양해를 받았다. 이것은
속기록에 다 나와있다"고 말했다.
#2) 하루 전: 7일 밤 11시경 긴급 산별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조금 전 단
의원실의 연락을 받은 지도부가 이른바 '열우당 최종안'을 논의에 부치기
위해서였다.
열린우리당이 제시했다는 최종안의 내용은 '대체근로 50% 수준의 허용,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 45일, 항공사업장은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였다.
대체근로 50%의 의미가 대체근로의 '인원수'인지,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있는 '요건'인지는 불명확했다. 인원수라면 '종업원이 100명인 경우 50명까지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요건이라면 '종업원 50% 이상이 파업을
들어갔을 때만 대체근로를 투입한다'는 내용이 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것의 의미를 후자로 받아들였고, 그 때 교섭을
적극적으로 했다면 후자로 만들 수 있었다고 (10일에도 여전히)확신하고
있었다. 집행부는 이 최종안이 대체근로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필수공익사업장에서 관리자와 '협정근로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종업원
전체, 그 중에서 현실적으로 50% 이상이 파업에 돌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와 관련해 11일 우원식 법안소위장은 "나는 그냥 '대체근로는 50%만
하자'고 얘기했다"면서 "정확한 개념을 제시한 건 아니고 '50% 정도는
일하도록 보장해줘라'는 거였는데, (요건이든 인원수든)그게 그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우 의원 개인이 "적당한
선에서" 중재용으로 던졌던 50%의 개념은 "어려웠고,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다
달랐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인원수의 의미로 구체화됐다. 이 50%는 다시
종업원 50%냐, 조합원 50%냐, 파업참가자 50%냐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어쨌건 '최종안'을 전달받은 민주노총은 "교섭을 하라. 최선을 다하라"면서
당에서 '알아서', '책임지고', 교섭을 완결지으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단 의원은 민주노총이 산별대표자들을 모아 의견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밤 11시경 시작된 산별대표자회의는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계속됐다. 밤에는
금속연맹 중집을 비롯한 연맹별 회의도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금속과 공공, 사무, 몇몇 지역본부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보건과 화섬연맹 등이 사실상의 찬성의사를 표했다. 연맹간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파업대오를 지켰고 이후의 파업에서도 중심이 될
금속연맹은 반대를 분명히 했다. 물론 금속연맹에는 대체근로의 핵심 타겟이
될 필수공익사업장이 거의 없었다.
금속연맹의 중집회의는, 필수공익사업장이 없는 연맹의 입장을 감안해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나, 원칙적인 반대뿐만 아니라 '타협안을
받기에는 (내용이)너무 부족하다'는 입장이 주종을 이뤘다.
날은 밝아왔고 아침 7시 민주노총은 최종적으로 여당의 협상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오전부터 환노위 법안소위가 예정되어 있었고, 민주노총은
원래의 방침대로 간부상경투쟁을 진행함과 동시에 국회 앞 집회를 개최했다.
오후 3시경에 한차례 더 산별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열린우리당의 입장은
민주노총이 보기에 더 후퇴해 있었다. 대표자들은 강행통과가 되더라도
총파업으로 돌파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투본대표자들이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이같은 기조는,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유지됐다.
#3) 환노위 처리 이후: 로드맵이 환노위에서 처리된 다음날인 9일 오전 다시
산별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총연맹 집행부는 '민주노동당이
1)물리적으로 저지하다가 로드맵이 정부안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 2)반대를
명확히 하되 일부 완화된 수정안이 통과되는 경우 등을 고민하다가, 선택을
했다'는 요지의 보고를 했다.
나중에 김태일 사무총장을 만났다. 그는 의정지원단에서의 회의와 관련해,
"로드맵은 합의도 조율도 아닌 강행처리됐다"라고 설명했다. 수정안을 받는 게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김 총장은 같은 취지의 답변을
반복했다.
총연맹의 다른 지도부들은 알고 있었을까? 일단 부위원장들의 경우엔
국회에서의 협상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인사에 따라서는
'민주노동당이 책임있게 교섭에 임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조준호 위원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당일날 김태일 총장에게 협상안을
사실상 추인하는 역할을 맡겼는지는 불분명하다. 당일 조준호 위원장은
사무총장이 아닌 사무총국 직원들을 통해 국회 상황을 전해듣고 있었는데,
이따금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보고해야지"라며 답답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목격됐다.
조 위원장은 12일 "당일날은 국회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전체회의 결과를 사전에 알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나중에 알았다"고
답변했다.
타협이 이루어진 사실은, 협상과정에 참여한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하면,
산별대표자들에게는 전혀 통보되지 않았다. 대체근로 문제를 발등에 불로
인식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여야 민주노동당 한국노총 등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여왔던 터였다.
전재환 금속연맹 위원장은 12일 "9일 투본회의에서 '(전날)당의 고민이
그랬다'는 보고만 받았다"며 "합의하는 순간 현장에서의 투쟁은 힘들어진다.
하지만 적극적인 동의의 수준이었는지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일 김태일 사무총장의 행보에 대해서 그는 "수정안을 분명히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당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단병호 의원은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로드맵 협상
'합의'든 '조율'이든 '양해'이든 혹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든,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들과 함께 로드맵을 '처리'했다.
우원식 법안소위장은 로드맵의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오늘 합의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여야 노동계가 최초로 합의해서 통과시킨
것"이라며 "오늘 합의는 끝없이 벌어지는 갈등을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노동문제에서 타협은 전혀 낯선 단어는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노조는
끝없이 싸우면서, 또 끝없이 타협한다. 임금,단체협상이 끝나면 노조집행부는
잠정합의안을 조합원들의 총투표에 회부한다. 타협의 수준이 적절했는지를
대중에게 묻는 것이다.
로드맵이 '협상가능한 사안'인지, '무조건 저지'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이번 투쟁 역시 타협의 지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최선을 다했다'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에 못지않은 책임도
뒤따른다. 개별 사업장의 임금교섭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로드맵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인 13일
현재, 민주노동당이건 민주노총이건 현재의 상황을 책임있게 대중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총파업 중'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본회의에서 이
법안들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명분도 의사도 갖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묘한 혼란에 대해 대중들에게 책임있게 설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조준호 위원장의 궁색한 설명은 이렇다.
"원칙적인 입장을 민주노동당에 전달하는 게 우리의 기본 의회 전술이지만,
당으로서 제도개선이나 법안 협상 과정에서의 임무는 당이 맡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로드맵)법안에 대해서 원칙적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앞으로
남은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협상은 민주노동당이 하고, 민주노총은 원칙적으로 투쟁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선 아무도 책임을 지진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자신들이 만든 국회의원이 처리한 법안에 대해 '저지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노동자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협상을 하던 투쟁을 하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같이 죽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낡은
것이 된 것일까?
- 이전글안티조선 달력의 내용이 궁금하시죠? -전체 06.12.28
- 다음글이제 제대로된 세상이 돌아오는것 같다 06.12.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