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5천원 보조출연도 급수가 있네
작성자 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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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멍하다. 지하1층 지상3층짜리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환호성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350여명이 동시에 폴짝폴짝 뛰며 가수 이름을 외쳐댄다. 딱, 열광적인 대형 콘서트 분위기다. 중학생부터 30대 아줌마까지, 팬 층도 골고루다. 무대에 가수는 없다. 단 한 명, 이들 ‘보조출연’의 연기를 지시하는 ‘팀장’만 서있을 뿐.
영화 ‘미녀는 괴로워’ 콘서트장면 촬영현장. ○○엔터테인먼트(보조출연자를 섭외해 영화사에 공급하는 업체)로부터 “갑자기 한 명이 펑크가 나서 급한데 당장 일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초보라고 우물거렸더니 팀장은 “눈앞에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열광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보조출연자만 관리하는 이런 ‘팀장’만 8명. 보조출연 경력이 많은 사람들로 직접 출연도 한다. 그때부터 한 번에 1분에서 3분씩, 10번 넘게 한 노래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끝났나 했더니 옆 관람석으로 이동해 “슛(실제촬영) 한 번 더 들어가겠다”고 했다. “여기 1만5000석을 전부 보조출연자로 채우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겠어. 일부만 세워 부분촬영하고 꽉 찬 것처럼 CG(컴퓨터그래픽) 처리하는 거지” 옆자리 김모(여·28)씨가 귀띔해준다. 관람석을 5번 옮겨 다니며 2시간 동안 쉴새 없이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반쯤 쉬어버렸다.
12시 이번엔 무대 앞 촬영. “간지 나는(스타일이 좋은) 애 7명만 뽑아” 팀장 지시에 키 크고 덩치 좋은 남자 7명이 불려나갔다. 악쓰는 팬 대신 무대 앞에서 ‘경호원’ 역할을 하는 행운(?)을 얻은 것. “소리 안 질러서 편하겠어” 환호하는 장면 촬영 한 시간째. “더 미친 듯이 방방 뛰어줘야 빨리 끝나요” “동선대로(사전지시 받은 대로) 움직이라니까” 팀장의 주문도 늘어났다. 얼굴을 치켜들고 열광했더니 목은 뻣뻣하고, 허기가 진다. “소리지르는 게 막노동보다 더 힘드네.” 친구 따라 왔다는 이모(24·대학생)씨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보조출연자 중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다.
1시 10분 “점심 먹고 합시다” 감독이 소리쳤다. 연기하느라 화장실도 못 가던 사람들 얼굴이 환해졌다. 나눠주는 도시락을 들고 앉은 곳은 관람석.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받은 보조출연자는 “10분밖에 안 남았다”며 울상이다.
점심 후엔 환호하는 소리만 따로 녹음하는 ‘목소리 연기’시간이 이어졌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 ‘기대에 찬 웅성거림’, 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환호소리’, 주인공이 깜짝 놀랄 고백을 할 때 지르는 소리를 각 3분씩. 이미 쉬어 버린 목소리들이 마이크 앞에서 용을 썼다. “입만 벙긋하는 사람은 앞에서 다 보인다”는 팀장의 엄포에도 어쩔 수 없다. 목소리녹음부터 다시 무대 앞 촬영까지, 잠깐 잠깐 쉬는 시간을 빼고 저녁 내 힘쓴 목에선 결국 꺽꺽 소리가 났다.
오후 10시. 갑자기 무대 한쪽이 소란스럽다. “언제쯤 끝날지는 말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사람들과 팀장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버스나 택시 막차를 놓쳐 택시비로 일당을 다 날릴까봐 걱정이다. “우리야 빨리 보내주고 싶은데 감독이 계속하니까…” 팀장 표정이 곤혹스럽다. “지하철 끊어지기 전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설득해 겨우 돌려보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11시 40분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모두 입구 쪽으로 전력 질주. 한 줄로 서 일당을 받았다. ‘5만5000원’. 기본일당 3만원에 야간 촬영비와 교통비가 더해졌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 40분까지, 15시간을 ‘연기’한 대가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콘서트장면 촬영현장. ○○엔터테인먼트(보조출연자를 섭외해 영화사에 공급하는 업체)로부터 “갑자기 한 명이 펑크가 나서 급한데 당장 일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초보라고 우물거렸더니 팀장은 “눈앞에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열광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보조출연자만 관리하는 이런 ‘팀장’만 8명. 보조출연 경력이 많은 사람들로 직접 출연도 한다. 그때부터 한 번에 1분에서 3분씩, 10번 넘게 한 노래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끝났나 했더니 옆 관람석으로 이동해 “슛(실제촬영) 한 번 더 들어가겠다”고 했다. “여기 1만5000석을 전부 보조출연자로 채우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겠어. 일부만 세워 부분촬영하고 꽉 찬 것처럼 CG(컴퓨터그래픽) 처리하는 거지” 옆자리 김모(여·28)씨가 귀띔해준다. 관람석을 5번 옮겨 다니며 2시간 동안 쉴새 없이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반쯤 쉬어버렸다.
12시 이번엔 무대 앞 촬영. “간지 나는(스타일이 좋은) 애 7명만 뽑아” 팀장 지시에 키 크고 덩치 좋은 남자 7명이 불려나갔다. 악쓰는 팬 대신 무대 앞에서 ‘경호원’ 역할을 하는 행운(?)을 얻은 것. “소리 안 질러서 편하겠어” 환호하는 장면 촬영 한 시간째. “더 미친 듯이 방방 뛰어줘야 빨리 끝나요” “동선대로(사전지시 받은 대로) 움직이라니까” 팀장의 주문도 늘어났다. 얼굴을 치켜들고 열광했더니 목은 뻣뻣하고, 허기가 진다. “소리지르는 게 막노동보다 더 힘드네.” 친구 따라 왔다는 이모(24·대학생)씨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보조출연자 중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다.
1시 10분 “점심 먹고 합시다” 감독이 소리쳤다. 연기하느라 화장실도 못 가던 사람들 얼굴이 환해졌다. 나눠주는 도시락을 들고 앉은 곳은 관람석.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받은 보조출연자는 “10분밖에 안 남았다”며 울상이다.
점심 후엔 환호하는 소리만 따로 녹음하는 ‘목소리 연기’시간이 이어졌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 ‘기대에 찬 웅성거림’, 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환호소리’, 주인공이 깜짝 놀랄 고백을 할 때 지르는 소리를 각 3분씩. 이미 쉬어 버린 목소리들이 마이크 앞에서 용을 썼다. “입만 벙긋하는 사람은 앞에서 다 보인다”는 팀장의 엄포에도 어쩔 수 없다. 목소리녹음부터 다시 무대 앞 촬영까지, 잠깐 잠깐 쉬는 시간을 빼고 저녁 내 힘쓴 목에선 결국 꺽꺽 소리가 났다.
오후 10시. 갑자기 무대 한쪽이 소란스럽다. “언제쯤 끝날지는 말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사람들과 팀장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버스나 택시 막차를 놓쳐 택시비로 일당을 다 날릴까봐 걱정이다. “우리야 빨리 보내주고 싶은데 감독이 계속하니까…” 팀장 표정이 곤혹스럽다. “지하철 끊어지기 전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설득해 겨우 돌려보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11시 40분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모두 입구 쪽으로 전력 질주. 한 줄로 서 일당을 받았다. ‘5만5000원’. 기본일당 3만원에 야간 촬영비와 교통비가 더해졌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 40분까지, 15시간을 ‘연기’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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