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야 할 금속노조, 거꾸로가는 두산
작성자 김창근
본문
거듭나야 할 금속산별노조
김창근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조합원)
6월 말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공장노조가 산별전환결의를 하여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사고 있다. 2001년 출범한 금속노조는 중소사업장 중심의 4만 명에 불과한 한계가 뚜렷함에도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아등바등 힘겹게 싸워왔는데 한꺼번에 10만에 가까운 동지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으니 오랜 가뭄에 소나기를 만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같은 배를 타게 될 동지들을 환영하면서 그 동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직의 전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조직의 힘은 쪽수에서 나온다. 그러나 질적으로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산별노조의 운명이 달려있다. 산별노조는 전환 결의만으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업별노조 틀, 조직체계뿐만 아니라 관행과 생각 운영 등 모든 것을 획기적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금속노조가 완전한 모델이 될 수 없다. 나름대로 5년의 성과도 있었지만 금속산업을 대표 할 수 없는 수적인 한계와 법 제도 등 우리를 둘러싼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한계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내부의 의식전환 즉, 기업별노조로 되돌아가려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싶다.
금속노조의 대공장인 두산 오리온전기 만도 현대제철(구INI스틸) 삼호중공업 효성창원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자본의 저항이 거센 가운데 우리의 대응이나 내부문제 또한 계속되고 있어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금속노조 초기에 우리는 그동안 기업별노조에 익숙한 조직에서 산별노조의 정신과 기풍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한 예로 오리온전기 구조조정 투쟁에서 노조의 방침을 어기고 합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부장을 징계하고 본조 부위원장이 중도 사퇴까지 하면서 산별노조의 기풍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였는데 갈수록 이런 정신이 흐려지고 있어 안타깝다.
대공장이 앞장서야
금속노조의 대기업 중에 만도지부는 그나마 투쟁의 중심에 복무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업별 울타리를 띄어 넘지 못하고 있다. 기업지부 해소를 위하여 참으로 많은 토론과 회의를 거쳐서 어렵게 결정하였지만 만도지부가 주체적으로 조직의 결정에 복무하기 보다는 책임 있는 간부와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결국은 “2003년 9월까지 기업지부 해소”라는 조직의 결정은 실행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업지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두산인프라코어(구 대우종합기계)도 기업지회 분회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 조직체계와 관련 재정비를 해야 한다.
현대제철은 과거 강원산업(포항)과 인천제철(인천)이 자본에 의해서 합병되어 INI스틸로 되었고 포항공장은 초기에 산별전환을 실천하여 금속노조에 합류하였으나 인천공장은 금속연맹에 남아있어 문제가 발생하였다. 처음부터 기업별노조만 경험한 조합원들은 기업의 울타리가 금속노조보다 우선이었고 포항공장의 지회집행부는 이를 극복하기 보다는 인천공장과의 연대로 임금임상 많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중소사업장문제 신규사업장투쟁 등 투쟁하기에만 힘든 금속노조보다는 인천공장과의 연대가 쉽고 성과 있는 사업이다 보니 금속노조를 탈퇴하여 연맹으로 되돌아가는 반산별(반조직)행위를 단행 하였든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난 6월 산별전환투표에서 또다시 인천 포항 아산 세 지역을 묶어서 현대제철 기업지부를 전제조건으로 산별전환을 하였다고 하니 이 또한 산별운동에 걸림돌로 작용 할 것이며 조직체계논의에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올 것이 우려된다.
거꾸로 가는 두산
금속노조의 최대사업장이었고 상공회의소 회장이든 박용성이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앞장섰든 두산은 수 십 명의 구속과 해고 손배와 가압류로 노동조합을 초토화 시키려 하였고 결국 배달호 열사의 희생으로 일부 복구는 하였지만 여전히 탄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두산이 쳐놓은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노동자의 최대과제이고 사회의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를 쟁점화 시키고 금속노조의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을 성사시켜 산별노조를 강화하기 보다는 지회조합원들 돈 많이 받고 충족시키는데 머무르고 있다. 2002년 금속노조 투쟁의 중심에서 싸우다가 두산에서 해고되어 아직 복직 못한 네 사람의 동지가 있지만 작년에도 연말까지 쟁점으로 싸웠지만 복직시키지 못했는데 괜히 쟁점 삼아봐야 부담만 될 것이고 피해자구제기금으로 임금 보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속노조 5년 두산중공업 지회를 뒤돌아보면 발전하기보다는 계속 뒷걸음질만 하고 있다.
2001년 산별전환 73%로 모아냈고 그해 두산과 첫 임.단협에서 투쟁을 통해서 소사장제 막아내고 임금인상 5.8%로 성과를 올리자 박용성 회장은 애써 ‘승자가 없는 무승부’라고 해명하였다. 2002년 두산은 반격하였고 금속노조의 방침과 두산의 산별노조 불인정속에서 대리 전 양상의 큰 싸움으로 두산의 피해와 노조의 희생을 치르는 홍역을 치렀다. 해고와 수배의 상태에서 집행부가 바뀌고 결국 빼앗기는 합의를 하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금속노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집행부에 책임을 묻기도 하였다. 배달호열사가 새카맣게 타서 오그라든 채로 노동자 광장에 누워있을 때도 조합원들이 모이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는 한심한 상황을 경험한 우리는 현장조직력복원이라는 구호만 있었지 투쟁을 통한 조직복원은 시도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투쟁을 회피하는 근거만 되었다. 2004년 교섭대표인 수석부지부장이 인정하지 않은 채로 지회장이 독단으로 임단협을 잠정합의하여 조합원총회에 부치려 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불상사가 있었고 2005년은 본조에서 수석부위원장이 직접 교섭대표로 참석하여 두산자본과 어려운 싸움을 해왔다. 그런데 2006년 임단협은 계획부터 두산지회는 물론이고 조합이나 지부역시 뜨거운 감자인 두산을 극복하기위한 노력보다는 지부임원이 교섭담당으로 배정만 되었지 실제로는 지회자율에 맡겨진 채로 진행되어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과는 무관하게 임금인상과 격려금위주로 휴가 전 타결이라는 성과(?)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고 왔다.
금속노조가 산별운동의 견인차
금속노조 대다수 조합원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산별노조강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일부 대공장 지회가 ‘현실여건’과 ‘조합원정서’를 이유로 산별노조의 정신을 흐리고 있다면 이번 자동차 대공장의 산별노조합류를 계기로 삼아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태어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공장이 아닌 우리노조 우리지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발상전환과 중앙과 지역지부로 힘을 모아낼 수 있도록 기업지부와 지회까지 해소하는 체계정비와 산별협약 지부협약을 강제하는 투쟁과 다른 한편으로 ‘산별협약법’제정 등 헤쳐 나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우리가 산별노조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지금추진중인 공공산별을 비롯한 우리나라 산별운동의 운명이 달려 있는 만큼 자긍심을 가지고 모든 힘을 총 매진해야 할 것이다.
2006. 8. 14.
김창근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조합원)
6월 말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공장노조가 산별전환결의를 하여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사고 있다. 2001년 출범한 금속노조는 중소사업장 중심의 4만 명에 불과한 한계가 뚜렷함에도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아등바등 힘겹게 싸워왔는데 한꺼번에 10만에 가까운 동지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으니 오랜 가뭄에 소나기를 만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같은 배를 타게 될 동지들을 환영하면서 그 동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직의 전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조직의 힘은 쪽수에서 나온다. 그러나 질적으로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산별노조의 운명이 달려있다. 산별노조는 전환 결의만으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업별노조 틀, 조직체계뿐만 아니라 관행과 생각 운영 등 모든 것을 획기적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금속노조가 완전한 모델이 될 수 없다. 나름대로 5년의 성과도 있었지만 금속산업을 대표 할 수 없는 수적인 한계와 법 제도 등 우리를 둘러싼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한계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내부의 의식전환 즉, 기업별노조로 되돌아가려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싶다.
금속노조의 대공장인 두산 오리온전기 만도 현대제철(구INI스틸) 삼호중공업 효성창원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자본의 저항이 거센 가운데 우리의 대응이나 내부문제 또한 계속되고 있어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금속노조 초기에 우리는 그동안 기업별노조에 익숙한 조직에서 산별노조의 정신과 기풍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한 예로 오리온전기 구조조정 투쟁에서 노조의 방침을 어기고 합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부장을 징계하고 본조 부위원장이 중도 사퇴까지 하면서 산별노조의 기풍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였는데 갈수록 이런 정신이 흐려지고 있어 안타깝다.
대공장이 앞장서야
금속노조의 대기업 중에 만도지부는 그나마 투쟁의 중심에 복무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업별 울타리를 띄어 넘지 못하고 있다. 기업지부 해소를 위하여 참으로 많은 토론과 회의를 거쳐서 어렵게 결정하였지만 만도지부가 주체적으로 조직의 결정에 복무하기 보다는 책임 있는 간부와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결국은 “2003년 9월까지 기업지부 해소”라는 조직의 결정은 실행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업지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두산인프라코어(구 대우종합기계)도 기업지회 분회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 조직체계와 관련 재정비를 해야 한다.
현대제철은 과거 강원산업(포항)과 인천제철(인천)이 자본에 의해서 합병되어 INI스틸로 되었고 포항공장은 초기에 산별전환을 실천하여 금속노조에 합류하였으나 인천공장은 금속연맹에 남아있어 문제가 발생하였다. 처음부터 기업별노조만 경험한 조합원들은 기업의 울타리가 금속노조보다 우선이었고 포항공장의 지회집행부는 이를 극복하기 보다는 인천공장과의 연대로 임금임상 많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중소사업장문제 신규사업장투쟁 등 투쟁하기에만 힘든 금속노조보다는 인천공장과의 연대가 쉽고 성과 있는 사업이다 보니 금속노조를 탈퇴하여 연맹으로 되돌아가는 반산별(반조직)행위를 단행 하였든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난 6월 산별전환투표에서 또다시 인천 포항 아산 세 지역을 묶어서 현대제철 기업지부를 전제조건으로 산별전환을 하였다고 하니 이 또한 산별운동에 걸림돌로 작용 할 것이며 조직체계논의에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올 것이 우려된다.
거꾸로 가는 두산
금속노조의 최대사업장이었고 상공회의소 회장이든 박용성이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앞장섰든 두산은 수 십 명의 구속과 해고 손배와 가압류로 노동조합을 초토화 시키려 하였고 결국 배달호 열사의 희생으로 일부 복구는 하였지만 여전히 탄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두산이 쳐놓은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노동자의 최대과제이고 사회의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를 쟁점화 시키고 금속노조의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을 성사시켜 산별노조를 강화하기 보다는 지회조합원들 돈 많이 받고 충족시키는데 머무르고 있다. 2002년 금속노조 투쟁의 중심에서 싸우다가 두산에서 해고되어 아직 복직 못한 네 사람의 동지가 있지만 작년에도 연말까지 쟁점으로 싸웠지만 복직시키지 못했는데 괜히 쟁점 삼아봐야 부담만 될 것이고 피해자구제기금으로 임금 보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속노조 5년 두산중공업 지회를 뒤돌아보면 발전하기보다는 계속 뒷걸음질만 하고 있다.
2001년 산별전환 73%로 모아냈고 그해 두산과 첫 임.단협에서 투쟁을 통해서 소사장제 막아내고 임금인상 5.8%로 성과를 올리자 박용성 회장은 애써 ‘승자가 없는 무승부’라고 해명하였다. 2002년 두산은 반격하였고 금속노조의 방침과 두산의 산별노조 불인정속에서 대리 전 양상의 큰 싸움으로 두산의 피해와 노조의 희생을 치르는 홍역을 치렀다. 해고와 수배의 상태에서 집행부가 바뀌고 결국 빼앗기는 합의를 하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금속노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집행부에 책임을 묻기도 하였다. 배달호열사가 새카맣게 타서 오그라든 채로 노동자 광장에 누워있을 때도 조합원들이 모이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는 한심한 상황을 경험한 우리는 현장조직력복원이라는 구호만 있었지 투쟁을 통한 조직복원은 시도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투쟁을 회피하는 근거만 되었다. 2004년 교섭대표인 수석부지부장이 인정하지 않은 채로 지회장이 독단으로 임단협을 잠정합의하여 조합원총회에 부치려 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불상사가 있었고 2005년은 본조에서 수석부위원장이 직접 교섭대표로 참석하여 두산자본과 어려운 싸움을 해왔다. 그런데 2006년 임단협은 계획부터 두산지회는 물론이고 조합이나 지부역시 뜨거운 감자인 두산을 극복하기위한 노력보다는 지부임원이 교섭담당으로 배정만 되었지 실제로는 지회자율에 맡겨진 채로 진행되어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과는 무관하게 임금인상과 격려금위주로 휴가 전 타결이라는 성과(?)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고 왔다.
금속노조가 산별운동의 견인차
금속노조 대다수 조합원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산별노조강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일부 대공장 지회가 ‘현실여건’과 ‘조합원정서’를 이유로 산별노조의 정신을 흐리고 있다면 이번 자동차 대공장의 산별노조합류를 계기로 삼아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태어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공장이 아닌 우리노조 우리지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발상전환과 중앙과 지역지부로 힘을 모아낼 수 있도록 기업지부와 지회까지 해소하는 체계정비와 산별협약 지부협약을 강제하는 투쟁과 다른 한편으로 ‘산별협약법’제정 등 헤쳐 나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우리가 산별노조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지금추진중인 공공산별을 비롯한 우리나라 산별운동의 운명이 달려 있는 만큼 자긍심을 가지고 모든 힘을 총 매진해야 할 것이다.
200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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