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노
작성자 새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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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보면 거대한 권세의 사악함에 대해서는 난치 불치병 치료 인류애를 얘기하며 윤리가 밥먹여주느냐며 윤리를 위반한 학자를 비판하기는커녕 외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거국적으로 지지해주고 덮고가자면서, 그 악행의 진실을 들추어내며 올바른 문제 제기를 한 소수 약자인 엠비시와 피디수첩에 대해서는 취재윤리의 악행을 빌미로 거의 테러에 가까운 애국질 행패를 저질렀지요.
황우석과 엠비씨가 온 언론을 도배질하다시피하는 다른 한편에선 쌀수입개방 정책으로 비탄과 절망에 차서 이에 항거하다 전용철 농민이 거대한 권세인 국가 공권폭력에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 보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적었고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했지요. 그러면서 두 사건의 중요성을 생각해봤지요. 황우석 사건은 과학기술 전문직 영역에서의 연구성과 진위문제에 대한 것이고, 전용철 농민 사망 사건은 그야말로 하층민의 생존권을 둘러싼 그것도 사람의 생명이 국가폭력에 맞아죽은 사건인데도 농민들의 폭력시위 장면 위주로 화면은 장식되고 발언권과 보도의 비중은 왜 적었들까요? 저거 보면서 퍼뜩 정신이 드는게 아 그렇지 여기는 기업가 시이오 귀족 엘리트 군주성역국이지 농민이나 우리 노동자 봉급쟁이들은 그저 저 성역의 양아치들이 바라는대로 일만 죽어라 해줄줄만 알아야지 혹여 우리 노동자들 농민들의 삶의 처지를 나아지게 해보려는 건 고사하고 단지 지켜보려 발버둥쳐본다고 저 성역의 양아치들에게는 거슬릴 수 밖에 없는 활동을 했다간 해고되서 길거리로 내쫒겨지거나 05년 단체교섭처럼 혹시 내주면 주는대로 받고 안내주면 그만인 그저 국가경쟁력과 기업이윤 앞에 죽어라 일할 줄만 아는 머슴이어야만 하는 그런 세상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박지성 축구, 독일월드컵 이야기하며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 통합과 민족을 이야기합니다. 산업 평화, 노사 화합 상생을 외치며 선동합니다. 그런데 이건희나 박용성이하고 우리 노동자들하고 어떻게 같은 기업, 같은 나라 사람일 수 있나요?
대기업 임원들 연봉엔 분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종사 노동자 연봉엔 한없이 분개하지요.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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