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눈으로 본 민노당의 진영논리 비판
작성자 옮긴이
본문
줄기세포의 눈으로 본 민노당의 진영논리 비판
줄기세포는 한국적 진영논리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체계를 유도하고 있다.
이 혁명적 요청의 가장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희생자는 한국의 자칭 진보(?)라는 민노당이다. 나는 이들을 진보라 보지 않는다. 한국적 상황에서 문제의 총체인 지역모순을 부정하는 친구들이 무슨 진보인가?
오늘 사회당의 논평을 보니 이들도 비슷하게 삽질을 하며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참진보의 지도자가 없다보니 이런 비극은 지속된다. 이들이 불쌍하다. 이들은 21세기의 사상의 낙오자들이다. 낡은 사고를 고집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민노당은 반성의 기미는 고사하고 줄기차게 황우석 죽이기와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죽이기가 불가능 하다면 가능한 심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 목표이다. 배후세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이 혼란으로 이 연구의 특허건은 물거너갔다. 이것도 노렸을 것이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는 더없는 희소식일 것이다.
이들의 악랄한 행동을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집단처럼 보인다. 부끄러움도 모른다. 이들이 진보인가? 개소가 웃을 일이다. 자신들이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모른다면 정박아들일 것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파렴치한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삽질이 가져올 엄청난 재난을 모르고 지금도 설치고 있다.
민노당의 파폭자해를 보면서 이들이 왜 이럴까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시대의 빠른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가다보니, 자신의 진영논리를 망각하고 수구짓을 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보는 민노당은 수구이다.
진보와 보수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문제이다.
지금의 보수는 과거라면 진보의 대접을 받을 만하다. 반대로 오늘의 진보는 미래에는 보수 내지는 수구 취급을 당할 것이다. 이 진영논리는 시간의 문제이다(재미난 것은, 지금의 한나라당이 미래엔 진보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비극의 딜레마를 민노당이 당하고 있다. 미래적 실용대상인 줄기세포 앞에서 민노당의 시간에 뒤쳐진 수구보수성이 여실히 드리났기 때문이다.
현재 내지는 과거적 좌파사상에 안주하는 민노당이나 사회당으로서는 줄기세포가 주는 미래적 진보사상을 해석하거나 수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에 결국은 수구 보수적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고, 딴지걸며 훼방 놓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수구적 좌파사상에 안주하는 이들에게는 난자기증이 정신대로 보일 수 밖에 없고 자발적 기증도 이들에게는 조소거리가 된다. 그것은 여성의 상품화요, 자본주의적 비극의 산물이며 무지한 대중의 광기이고, 파시시트들의 난동인 것이다. 오직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이런 작태는 수구적 집단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들에게 대중은 항상 우매한 미개인들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고매한 지식과 논리가 먹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진보 독식시대는 인터넷과 함께 지나갔다. 좌파 엘리트 시대도 사망하였다. 귀족 좌파들은 이제 짐을 싸고 속히 집으로 돌아가 평민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작금의 황교수 논란에 대한 민노당의 닭짓(?)과 삽질 그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작태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본 행태임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은 지난날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주로 하던 작태들이다. 한나라당은 민주화 이후에 잃어버린 자신들의 권력을 그리워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끝없이 개혁에 딴지를 걸며 방해를 해왔다.
이같이 진보들도 한날당처럼 자신들의 지나버린 영화(? )를 그리워하며 발악중이다. 피지도 못한 꽃인 진보가 벌써 질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런 반역적 작태를 진보라는 민노당과 사회당이 하고 있으니 희비극이 교차하는 것이다.
건전 보수가 없는 비극의 결과
작금의 사태는 한국의 진영논리에 모순이 있기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즉 수구와 보수와 중도와 진보가 각기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그중에 건전보수가 없다는 것이 이 비극의 주된 원인이다. 줄기세포 논쟁은 보수나 수구 측에서 윤리니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해야, 진보쪽에서 이에 반작용으로써 줄기세포 연구를 변호할 것인데, 이놈의 나라는 건전보수가 전멸하다보니 마땅히 이런 건전한 비판을 해줄 세력이 전무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허접하고 편협한 우리의 진보세력들은 줄기세포 비판이 진보의 임무라고 착각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의 삽질이 시작된 것이다. 상대할 진정한 라이벌이 없는 것이 한국 진보의 비극이다.
한나라당의 어부지리
줄기세포 사건에서 큰 이득을 본 것은 한나라당이다. 그 이유도 재미가 있다. 그들의 무지와 문교부 암기교육의 효과이다. 줄기세포를 안다고 반대하다 삽질로 망가진 민노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줄기세포가 주는 미래적 사상을 그들의 머리로는 알리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여론의 흐름에 편승하고 그것이 미래의 국가사업이 될거라니까 아무 생각없이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암기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자기생각 없이 들은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모르면 조용히 있는 것이 유익하다는 진리를 한나라당은 증명하였다.
만일 한나라당이 안다고 민노당처럼 설쳐댔으면 그들도 상당히 망가졌을 것이다.
각 진영이 자기 위치를 이탈할 때에 비극이 잉태된다.
이 비극은 진보가 수구화되어 종교적 맹신주의자인 한 피디의 편향적 독선과 성체줄기세포 세력의 악의적 이권과 정권의 정략적 수단화가 그 원인이 되었다. 노무현 말고는이런 비극을 잉태시킬 지도자는 전세계에 전무후모할 것이다. 그것이 황박사가 몸져 누운 사연이다. 이 국책사업을 정략적 수단으로 사용하여 망가뜨렸으니 벙어리 냉가슴만 타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각 진영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고 다른 진영논리를 펼 때에 비극이 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수구는 수구다와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와야 하도 진보는 진보다와야 한다. 공자나 예수의 말처럼, 진리는 예를 예라하고 아니오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곡되면서 이 해결을 위해 제도나 법, 윤리, 종교, 사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줄시세포에서는 진보가 수구화 되었으며, 아무 생각 없는 수구보수인 한나라당은 본의 아니게(?) 진보행세를 하였다. 이것이 비극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더우기 줄기세포와 난자 지원이라는 진보적 사상을 보수파들이 선점하고 이것이 자본과 미래산업의 비젼까지 내포하자 수구세력과 줄기세포의 결합은 더욱 환상적 앙상불이 되었으며, 결국 진보세력을 궁지에 몰아서 더욱 삽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한나당과 자본과 결합한 줄기세포가 진보의 눈에는 더욱 문제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낡은 사상과 편협한 이분법이 부른 결과이다. 이리하여 이들이 사고의 일대전환을 하지 않는 한 진보의 삽질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열우당과 민주당은 눈치보느라 본전은 했다.
민노당을 잡는 법, 그것은 줄기세포와 같은 미래적 첨예한 사안을 들이미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여지없이 지금의 삽질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또한 한나라당이 진보화한다면 민노당은 삽시간에 해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가지는 아주 중요한 지역문제이다. 즉, 지역모순은 한국적 미래에 반드시 해체될 사안이다. 물론 여기에도 민노당은 수구적 행태를 보이면서 지역차별과 영남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물타기나 모르쇠 작전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 모순은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지금 그 해체의 길을 가고 있다. 지역주의의 해체와 함께 민노당의 영남일파 체제도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다. 지역모순의 부각은 민노당에게 독약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cadline/20208522
줄기세포는 한국적 진영논리를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체계를 유도하고 있다.
이 혁명적 요청의 가장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희생자는 한국의 자칭 진보(?)라는 민노당이다. 나는 이들을 진보라 보지 않는다. 한국적 상황에서 문제의 총체인 지역모순을 부정하는 친구들이 무슨 진보인가?
오늘 사회당의 논평을 보니 이들도 비슷하게 삽질을 하며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참진보의 지도자가 없다보니 이런 비극은 지속된다. 이들이 불쌍하다. 이들은 21세기의 사상의 낙오자들이다. 낡은 사고를 고집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민노당은 반성의 기미는 고사하고 줄기차게 황우석 죽이기와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죽이기가 불가능 하다면 가능한 심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 목표이다. 배후세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이 혼란으로 이 연구의 특허건은 물거너갔다. 이것도 노렸을 것이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는 더없는 희소식일 것이다.
이들의 악랄한 행동을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집단처럼 보인다. 부끄러움도 모른다. 이들이 진보인가? 개소가 웃을 일이다. 자신들이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모른다면 정박아들일 것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파렴치한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삽질이 가져올 엄청난 재난을 모르고 지금도 설치고 있다.
민노당의 파폭자해를 보면서 이들이 왜 이럴까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시대의 빠른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가다보니, 자신의 진영논리를 망각하고 수구짓을 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보는 민노당은 수구이다.
진보와 보수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문제이다.
지금의 보수는 과거라면 진보의 대접을 받을 만하다. 반대로 오늘의 진보는 미래에는 보수 내지는 수구 취급을 당할 것이다. 이 진영논리는 시간의 문제이다(재미난 것은, 지금의 한나라당이 미래엔 진보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비극의 딜레마를 민노당이 당하고 있다. 미래적 실용대상인 줄기세포 앞에서 민노당의 시간에 뒤쳐진 수구보수성이 여실히 드리났기 때문이다.
현재 내지는 과거적 좌파사상에 안주하는 민노당이나 사회당으로서는 줄기세포가 주는 미래적 진보사상을 해석하거나 수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에 결국은 수구 보수적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고, 딴지걸며 훼방 놓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수구적 좌파사상에 안주하는 이들에게는 난자기증이 정신대로 보일 수 밖에 없고 자발적 기증도 이들에게는 조소거리가 된다. 그것은 여성의 상품화요, 자본주의적 비극의 산물이며 무지한 대중의 광기이고, 파시시트들의 난동인 것이다. 오직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이런 작태는 수구적 집단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들에게 대중은 항상 우매한 미개인들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고매한 지식과 논리가 먹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진보 독식시대는 인터넷과 함께 지나갔다. 좌파 엘리트 시대도 사망하였다. 귀족 좌파들은 이제 짐을 싸고 속히 집으로 돌아가 평민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작금의 황교수 논란에 대한 민노당의 닭짓(?)과 삽질 그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작태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본 행태임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은 지난날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주로 하던 작태들이다. 한나라당은 민주화 이후에 잃어버린 자신들의 권력을 그리워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끝없이 개혁에 딴지를 걸며 방해를 해왔다.
이같이 진보들도 한날당처럼 자신들의 지나버린 영화(? )를 그리워하며 발악중이다. 피지도 못한 꽃인 진보가 벌써 질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런 반역적 작태를 진보라는 민노당과 사회당이 하고 있으니 희비극이 교차하는 것이다.
건전 보수가 없는 비극의 결과
작금의 사태는 한국의 진영논리에 모순이 있기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즉 수구와 보수와 중도와 진보가 각기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그중에 건전보수가 없다는 것이 이 비극의 주된 원인이다. 줄기세포 논쟁은 보수나 수구 측에서 윤리니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해야, 진보쪽에서 이에 반작용으로써 줄기세포 연구를 변호할 것인데, 이놈의 나라는 건전보수가 전멸하다보니 마땅히 이런 건전한 비판을 해줄 세력이 전무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허접하고 편협한 우리의 진보세력들은 줄기세포 비판이 진보의 임무라고 착각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의 삽질이 시작된 것이다. 상대할 진정한 라이벌이 없는 것이 한국 진보의 비극이다.
한나라당의 어부지리
줄기세포 사건에서 큰 이득을 본 것은 한나라당이다. 그 이유도 재미가 있다. 그들의 무지와 문교부 암기교육의 효과이다. 줄기세포를 안다고 반대하다 삽질로 망가진 민노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줄기세포가 주는 미래적 사상을 그들의 머리로는 알리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여론의 흐름에 편승하고 그것이 미래의 국가사업이 될거라니까 아무 생각없이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암기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자기생각 없이 들은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모르면 조용히 있는 것이 유익하다는 진리를 한나라당은 증명하였다.
만일 한나라당이 안다고 민노당처럼 설쳐댔으면 그들도 상당히 망가졌을 것이다.
각 진영이 자기 위치를 이탈할 때에 비극이 잉태된다.
이 비극은 진보가 수구화되어 종교적 맹신주의자인 한 피디의 편향적 독선과 성체줄기세포 세력의 악의적 이권과 정권의 정략적 수단화가 그 원인이 되었다. 노무현 말고는이런 비극을 잉태시킬 지도자는 전세계에 전무후모할 것이다. 그것이 황박사가 몸져 누운 사연이다. 이 국책사업을 정략적 수단으로 사용하여 망가뜨렸으니 벙어리 냉가슴만 타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각 진영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고 다른 진영논리를 펼 때에 비극이 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수구는 수구다와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와야 하도 진보는 진보다와야 한다. 공자나 예수의 말처럼, 진리는 예를 예라하고 아니오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곡되면서 이 해결을 위해 제도나 법, 윤리, 종교, 사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줄시세포에서는 진보가 수구화 되었으며, 아무 생각 없는 수구보수인 한나라당은 본의 아니게(?) 진보행세를 하였다. 이것이 비극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더우기 줄기세포와 난자 지원이라는 진보적 사상을 보수파들이 선점하고 이것이 자본과 미래산업의 비젼까지 내포하자 수구세력과 줄기세포의 결합은 더욱 환상적 앙상불이 되었으며, 결국 진보세력을 궁지에 몰아서 더욱 삽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한나당과 자본과 결합한 줄기세포가 진보의 눈에는 더욱 문제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낡은 사상과 편협한 이분법이 부른 결과이다. 이리하여 이들이 사고의 일대전환을 하지 않는 한 진보의 삽질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열우당과 민주당은 눈치보느라 본전은 했다.
민노당을 잡는 법, 그것은 줄기세포와 같은 미래적 첨예한 사안을 들이미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여지없이 지금의 삽질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또한 한나라당이 진보화한다면 민노당은 삽시간에 해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가지는 아주 중요한 지역문제이다. 즉, 지역모순은 한국적 미래에 반드시 해체될 사안이다. 물론 여기에도 민노당은 수구적 행태를 보이면서 지역차별과 영남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물타기나 모르쇠 작전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 모순은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지금 그 해체의 길을 가고 있다. 지역주의의 해체와 함께 민노당의 영남일파 체제도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다. 지역모순의 부각은 민노당에게 독약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cadline/2020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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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님의 댓글
나쁜 작성일레인맨 이놈이 쓴글이구만 까불지 마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