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
작성자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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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강도가 도망가는 여인을 끝까지 쫓아가 칼로 찔렀다. 지나가는 행인이 많아 강도는 멀리 숨어 지켜봤으나 그 여인이 피를 흘리고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데도 그 어느 누구도 못 본 척 지나갈 뿐이었다. 이에 강도는 다시 와서 그 여인의 숨통을 끊고 도망갔다. 그 사건 속에 등장하는 행인들은 총 38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그 행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고 배달호 열사의 분신의 진정한 원인은 손배가압류가 아니었다. 그가 아끼던 동료들이 18명이나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 그는 주위동료들에게 ‘내가 집행부였으면 내가 잘리는 건데, 그들이 내 대신 잘렸다’라고 자주 말하였다.
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전국이 붉은 물결을 이룰 그 때 노조가 했던 47일간의 파업 때문이었다. 물론 해고를 시킨 주체가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박용성 회장이 입성하기 전인 1999년에 노조는 48일 동안이나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해고는커녕 그 누구도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박용성 회장이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이다. 이에 우리는 박회장이 직접적인 지시를 했든 안 했든 해고와 징계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박회장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그 모든 책임이 박회장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이 엄청난 대량 해고와 징계를 받고, 우리 모두의 의식은 위축되었다. 우리는 부당한 해고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마치 지나가는 행인들처럼.
나를 버린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크게는 목숨을 버릴 수도 있고, 명예를, 미래를, 가족의 행복을, 안락한 삶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타인이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이는 ‘나’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박회장을 욕할 수가 없다. 박회장이 사리사욕과 명예욕에 불타 회사를 ‘내 회사’로 여기고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해고시켰던 것처럼, 우리 또한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없어 내 정신과 마음을 팔아 ‘내 직장’을 지키고 해고자들을 몰라 했기 때문이다.
배달호 형님의 죽음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를 부르짖지 못한 바로 우리 스스로의 위축된 마음을 깨우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큰 적은 결국 자기자신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의 가르침이 ‘나를 버려라’라고 가르쳤던 것은 아닐까?
역사는 언제나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도, 전태일도, 배달호도 그들 자신을 스스로 버려 희생하였기에 역사는 정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의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정의의 완성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상천국, 용화세계, 대동세계 등 무슨 용어를 붙이든 정의의 완성은 신이나 절대자나 박용성회장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모두가 각자의 ‘나’을 버려 ‘우리’가 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지 못하면 우리가족, 우리회사, 우리민족, 우리나라, 우리세상은 억만년이 지나도 결코 오지 않는다. 이는 또한 결코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다.
해방 후 60년간 우리는 단 한번도 친일파를 친일파라 부르지 못하였고, 사기꾼을 사기꾼이라 부르지도 못하였다. 불의가 판을 치고, 정의가 언제나 패배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은 단지 일개 단체의 외침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누가 감히 박용성 회장을 친일파의 손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민족의 피를 팔아 불의하게 번 돈으로 해방 후 지금까지 떵떵거리면서 민족을 팔았듯이 기업을 팔고 직원을 해고시켰다고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있을까? 온갖 사기와 협잡으로 비리를 일삼고 있어도 감히 누구 하나 제대로 사기꾼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왜 우리는 그토록 불의 앞에서 비굴한가?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면, 우리 조상 탓일 것이다. 조상들이 불의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불의 앞에 굴복하고 진실과 정의를 제대로 말조차 못한다면 우리 자손들도 똑같이 우리들을 욕할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 앞에 떳떳할 것인가?
비굴할 것인가?
치욕의 지난 과거 역사를 나도 되풀이할 것인가?
좌절과 굴욕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 손으로 불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내자!
두산중공업 담수외주생산팀 사원 이상민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강도가 도망가는 여인을 끝까지 쫓아가 칼로 찔렀다. 지나가는 행인이 많아 강도는 멀리 숨어 지켜봤으나 그 여인이 피를 흘리고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데도 그 어느 누구도 못 본 척 지나갈 뿐이었다. 이에 강도는 다시 와서 그 여인의 숨통을 끊고 도망갔다. 그 사건 속에 등장하는 행인들은 총 38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그 행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고 배달호 열사의 분신의 진정한 원인은 손배가압류가 아니었다. 그가 아끼던 동료들이 18명이나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 그는 주위동료들에게 ‘내가 집행부였으면 내가 잘리는 건데, 그들이 내 대신 잘렸다’라고 자주 말하였다.
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전국이 붉은 물결을 이룰 그 때 노조가 했던 47일간의 파업 때문이었다. 물론 해고를 시킨 주체가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박용성 회장이 입성하기 전인 1999년에 노조는 48일 동안이나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해고는커녕 그 누구도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박용성 회장이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이다. 이에 우리는 박회장이 직접적인 지시를 했든 안 했든 해고와 징계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박회장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그 모든 책임이 박회장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이 엄청난 대량 해고와 징계를 받고, 우리 모두의 의식은 위축되었다. 우리는 부당한 해고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마치 지나가는 행인들처럼.
나를 버린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크게는 목숨을 버릴 수도 있고, 명예를, 미래를, 가족의 행복을, 안락한 삶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타인이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이는 ‘나’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박회장을 욕할 수가 없다. 박회장이 사리사욕과 명예욕에 불타 회사를 ‘내 회사’로 여기고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해고시켰던 것처럼, 우리 또한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없어 내 정신과 마음을 팔아 ‘내 직장’을 지키고 해고자들을 몰라 했기 때문이다.
배달호 형님의 죽음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를 부르짖지 못한 바로 우리 스스로의 위축된 마음을 깨우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큰 적은 결국 자기자신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의 가르침이 ‘나를 버려라’라고 가르쳤던 것은 아닐까?
역사는 언제나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도, 전태일도, 배달호도 그들 자신을 스스로 버려 희생하였기에 역사는 정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의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정의의 완성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상천국, 용화세계, 대동세계 등 무슨 용어를 붙이든 정의의 완성은 신이나 절대자나 박용성회장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모두가 각자의 ‘나’을 버려 ‘우리’가 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지 못하면 우리가족, 우리회사, 우리민족, 우리나라, 우리세상은 억만년이 지나도 결코 오지 않는다. 이는 또한 결코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다.
해방 후 60년간 우리는 단 한번도 친일파를 친일파라 부르지 못하였고, 사기꾼을 사기꾼이라 부르지도 못하였다. 불의가 판을 치고, 정의가 언제나 패배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은 단지 일개 단체의 외침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누가 감히 박용성 회장을 친일파의 손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민족의 피를 팔아 불의하게 번 돈으로 해방 후 지금까지 떵떵거리면서 민족을 팔았듯이 기업을 팔고 직원을 해고시켰다고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있을까? 온갖 사기와 협잡으로 비리를 일삼고 있어도 감히 누구 하나 제대로 사기꾼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왜 우리는 그토록 불의 앞에서 비굴한가?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면, 우리 조상 탓일 것이다. 조상들이 불의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불의 앞에 굴복하고 진실과 정의를 제대로 말조차 못한다면 우리 자손들도 똑같이 우리들을 욕할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 앞에 떳떳할 것인가?
비굴할 것인가?
치욕의 지난 과거 역사를 나도 되풀이할 것인가?
좌절과 굴욕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 손으로 불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내자!
두산중공업 담수외주생산팀 사원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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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기수님의 댓글
중공업기수 작성일달호형과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지도부의 지침을 묵묵히 수행하시는 각지회의 동지들도 존경합니다. 금속노동자 진짜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