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말말말'
작성자 새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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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노위 현장 '말말말'
23일 오전 11시30분, 열린우리당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이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소회의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양당 의원들은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 “방망이(의사봉) 주세요. 회의하게!”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이목희 의원이 위원장 석을 ‘점거’ 하고 있는 단병호 의원에게 한 말이다. 단병호 의원은 의사봉은 건넸지만 받침은 주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거나 쳐도 소리는 나요.”
○ “열린우리당에 국어사전 보내야겠다.”
심상정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비정규직) ‘확산’과 ‘보호’를 헷갈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한 말.
○ “헛걸음 하실 거 없습니다.”
이목희 법안심사소위원장이 20여분간의 설전을 마치고, 나서면서 “오후 본회의를 산회한 직후에 법안심사소위를 열겠다”고 말하자 단병호 의원이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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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과 ‘정규직’이라는 원칙
근로기준법의 기본 원칙은 어디까지나 ‘직접 고용’ 그리고 ‘정규직’이다. “중간착취 배재” “차별적 처우 금지”에 관한 조항들이 바로 그 원칙들을 담고 있다.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근로기준법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가장 중요하게 제기됐고, 따라서 파견 형태의 고용은 노동자 파견법이 처음 출발할 때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파견 기간이 2년이다 또는 3년이다, 파견 기간이 끝나면 직접 고용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들이 법에 규정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비정상적 고용 형태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존속하게 되면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질병·출산·휴가 등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고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남보다 불리하게 단기적으로 고용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란 개념은 이런 취지를 살리자는 것인데, 기업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니 여러 가지 논리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건설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에 노동자 파견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나라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특별한 불이익 없고, 전형적인 시장경제주의 체제인 미국도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대형화되어 교육과 사회복지 혜택이 거의 동등하다.
기업은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 확대가 순리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2천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그것이 국가 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파견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주장하는 정책들이 기업의 단기적 이익이나 경영자의 사욕 추구, 또는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사람들에게만 유익할 뿐, 국가 경제 전체에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관되게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구되는 정책들은 사회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켜 국가 경제에 해로움을 끼칠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경상수지흑자와 수출액 기록 경신이 거의 매달 이루어질 정도로 역사상 유례없는 수출 실적이 달성되고 있음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는 기업 부설 연구소들조차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이익이 언제나 나라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계의 주장이 노동자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론 함께 따져봐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주장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금보다 더욱 증가시킬 수밖에 없고 그 차별을 공고하게 하는 것이라면(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그렇다는 것이고 그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 노동부장관 즉,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도 해로울 수밖에 없다.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할 것이 분명한 법안 내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사회 불평등구조가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그 차별을 공고히 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유익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기업 강성 노조와 노동 유연성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의 책임을 대기업 강성 노조에 돌리고 있고, 정부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가 대부분 지나치게 강성이어서 부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경영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 한국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투쟁적이고 과격한 줄 알았는데 와서 직접 겪어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고 상당히 합리적이었다.”고 거듭 강조하는 사실과 - GM대우의 ‘닉 라일리’, 한국도요타의 ‘오기소 이치로’, 주한미상공회의소 명예회장 ‘제프리 존스’ 외에도 그와 같은 발언을 하는 외국인 CEO들은 많다 -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이 OECD 가입국 등 여러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낮은 편이 아니라는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들을 정부와 기업은 애써 외면한다. 대기업 강성 노조는 있다고 해도 소수에 불과한데 그 피해가 지나치게 과장되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 노조의 이익 추구 행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불러오는 현상이 전혀 없다거나, 대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절반 정도의 대우밖에 하지 않는 비윤리적 행위를 ‘노동 유연성’이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하는 기업의 행태에 비하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 추구 행위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산수
정부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현안대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 반드시 기업의 입장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로서는 비정규 노동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결코 불리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화살을 기업이나 정부에 돌리기보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과거사 규명과 친일 잔재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썼더니 그 글에 대해 “노동문제연구소장이라는 놈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킬 생각은 않고 한가하게 역사나 이야기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불행하게도 그러한 비난에 많은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무리 많아져도 기업과 정부로서는 자신들이 받아야 하는 비난의 하중이 늘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더욱 고립될 뿐이니, 정부로서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일이 없다는 ‘산수’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이유
“어떤 경제학도 휴머니즘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 정책이란 뜻이다. 이렇게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가 인류 사회에 확립된 것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게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돼야 한다”는 고전적 휴머니즘의 차원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진화 과정 속에서 그러한 도덕적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 인류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나라의 백년대계를 거스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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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법안에 대한 판단 기준(하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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