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
참여마당
자유게시판
2025년 단결투쟁 당당하게 현장속으로
바뀌고 있는 '강간'의 정의
작성자 쪼래기
댓글 0건 조회 837회 작성일 2005-06-02

본문

한국의 형법은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범죄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필사의 저항'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법논리 뒤에는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미국의 형법은 철저히 피해자의 신변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범죄구성요소로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 피해자의 저항행위가 목숨을 위협하는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때로는 가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범죄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위험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행의 17%, 그리고 폭행미수의 39%가 피해자에게 육체적인 상해를 초래한다. 성폭행은 가해자가 흉기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피해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폭력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가해자와 맞서 싸우는 것이 상황을 피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더 나아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강간과 성폭행: 당신이 알아야 할 것," Bingham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저항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름에 불구하고, 한국의 형법은 '목숨을 건 사투' 아니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분법을 강요하고 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범죄 상황 하에서 '적극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기구가 할 일이 아니다. '정절 아니면 목숨'이라는 조선시대의 '은장도 정신'이 현대의 법정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바뀌고 있는 '강간'의 정의
2003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로라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남자친구 존과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가졌다. 관계 도중 그녀는 마음을 바꾸어 "이제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만 두라'는 구체적인 거부의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남자친구는 행위를 계속하다가 그녀가 네 번째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후 그 남자는 강간죄로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명백히 동의에 의해 성관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상대가 마음을 바꾸어 거부의사를 표하면 즉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은 충분한 거부의사의 표시였고, 따라서 그녀의 의사에 반한 채 계속 성행위를 한 것은 명백히 "강압에 의한 강간죄(offense of forcible rape)"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클레어 쿠퍼, "법원판결: 강간은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명할 때 시작된다" <새크라멘토 비> 2003. 1. 7.

피고는 피해자가 "집에 가겠다"라는 첫 발언이 있은 후 5분, 그리고 네 번째 말을 들은 후 1분여 만에 그녀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그리고는 남자의 생리적인 특성상 곧바로 행동을 멈출 수 없다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의 거부의사를 들은 이후에도 피고가 계속해서 양손으로 원고의 허리를 잡은 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강간'의 범죄구성요소로 충분하다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이 있은 후 미국 대다수의 주들이 '강간'의 법규정을 수정했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강간의 예외적 사례로 보는 기존의 입장을 탈피해 '합의'는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순간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94% 이상의 법조인들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여관에 들어간 경우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불리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2003년 성폭력상담소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낸시 깁스는 이런 견해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그녀에 따르면, "여성이 남자와 술을 함께 마시거나, 함께 밤길을 걷거나, 심지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그녀가 바닥에 억지로 눕혀져 성폭행을 당하고 싶다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낸시 깁스, "강간은 언제 시작되는가" <타임>, 1991. 6. 3.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로 다루어지는 한국의 성범죄

미국무부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만연한 성범죄로 고통 받는 한국여성의 상황을 '인권문제'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2004년 2월에 발간된 이 보고서는 가정폭력과 함께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분류하고 있다.

"강간은 심각한 상태이다. 1월부터 9월까지 1만3914건의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이중 3630건만 기소되었다. 강간사건에 따르는 피해자의 사회적 오명 때문에 많은 사건이 신고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여성단체들이 사건 신고와 처벌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으며,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교육을 벌이고 있다. 여성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다수의 강간사건이 기소되지도 않은 채 무마되고 있으며, 성범죄자로 기소되는 경우도 아주 미약한 처벌만을 받는다." - "인권실천에 관한 국가 보고서," 미국무부 제출, 2004. 1. 25일 발간.

남성중심사회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모순을 발견한다. 하나는 남성이 언제나 여성보다 '이성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입장이 되면 갑자기 여성의 옷 하나에도 통제력을 상실하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돌변한다. 물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나면 즉시 '이성적인' 지배자의 위치로 복귀한다.

한국의 성범죄 법체계에 반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 남성들이다. 한국의 형법이 가정하고 있는 바, 스스로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완강한 저항'이 없는 한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체계는 남성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끔찍한 범죄자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비인도적 법 앞에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끔찍한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공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법원에서 당신을 '무죄'로 판결해준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