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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인맨
댓글 0건 조회 769회 작성일 2005-04-21

본문

노동자 정치운동 연구에 대한 비판적 소고


1. 연구의 대상과 방법의 다양성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정치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조직주체 및 노동조합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계급조직과 부르주아 계급조직 간의 정치적 투쟁으로 현실화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제반 이해를 전취함과 동시에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유지․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권력주체의 의지를 실현하려 하고, 부르주아 계급은 계급이해의 특권적인 근거지가 되는 국가장치를 매개로 노동자 계급을 영속적으로 해체하거나 분열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투쟁의 주체는 일반적으로 정당이지만, 정당 이외의 다양한 계급조직들이 주체로 나서기도 한다. 투쟁의 형식과 내용 역시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간의 힘의 관계에 따라 다양하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다양한 조직주체들은 노동자 대중들에게 노동자 계급정치의 정치이념을 삼투시키기 위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많은 이론가들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공급한다. 그런데 많은 이론가들 사이에 노동자 계급정치의 연구대상과 방법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형식과 내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적 봉기활동, 합법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은 정치조직 중심의 선도적 정치활동, 합법화된 정치조직 중심의 정치활동,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의 부속물로 전락한 정치조직 중심의 정치활동 등이 존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을 범주화한다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중심주의, 국가-자본-노동간 합의주의, 그리고 노동자 계급 중심주의이다.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이 다양한 담론과 언술의 기교로 표현될지라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이념과 노선, 전략적 목표, 전술적 목표 등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범주인 것이다.


먼저 국가의 노동정책 및 부르주아 제도정치의 틀 내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활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중심주의’이다. 특히 부르주아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 즉 국회에 법을 청원하는 활동,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활동,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지지활동 등을 노동자 정치운동으로 분석․평가하려는 시각이다. 대부분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관계의 강화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둘째로는 노동-국가-자본간의 합의주의 시각이다. 노동-국가-자본간의 다양한 갈등을 계급간의 화해와 협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노동정치운동을 부각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이다. 노동자 계급이 국가-자본과 대등한 계급역량을 보유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국가-자본-노동간의 삼자협의를 토대로 국가와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략적 목표라고 간주한다.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화해주의를 기초로 하는 신조합주의적 정치활동이 노동자 계급정치의 이념형으로 제시된다. 즉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관계의 강화에 기여하는 개혁을 지향한다. 그러나 체제변혁운동의 토대를 강화하는 체제개혁적 노선이 존재할 수 있다.


셋째로는 노동자 계급 중심주의이다.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추구하는 제도적 정당이나 비제도적 정치조직의 다양한 정치활동을 분석․평가한다. 이러한 정치적 조직주체들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계급주체를 형성하는 활동과 그것을 토대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려 하는 내용을 부각시킨다. 대부분 체제변혁적인 정향성을 지향하고 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을 중심으로 분석․평가한다.


이 글에서는 노동자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의 특수한 국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나타난 다양한 연구자들의 개념과 이론적 정향성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려 한다. 그 지점은 체제강화적 정향성, 체제강화에 기여하는 체제개혁적 정향성, 그리고 ‘주의주의’적인 접근방법과 그 한계 등이다. 여기에서 평가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은 그 동안 노동자 정치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이론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지만, ‘제도 정치권의 공간으로 제한하는 선거주의 강화, 계급화해를 지향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강화, 급진적 인텔리 배격주의를 동원한 정치활동가 불신의 강화’ 등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정치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을 중심으로 비판하려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이론적 재구성의 과정이고, 노동자 정치운동을 희화하고자 하는 본질이 규명되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출발부터 한계를 내포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대표적인 이론가들의 인식이 변할 수도 있고, 또한 현재는 노동자 정치운동이 아닌 다른 주제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들을 이 글에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이론가의 특정영역을 비판의 대상으로 제한하지 않을 수 없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2. 제도적 정치활동 강화전략


어떠한 체제이든지 총체적인 사회적 관계를 계승․유지․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정치행위 주체들은 현존하는 사회체계와 ‘순응적 호응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비순응적 호응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한 관계들은 계급이해를 둘러싼 정치행위 주체들의 총체적인 정치활동으로 현실화된다. 권력의 형성․집행․배분을 둘러싼 국가권력과 권력주체간의, 정치적 조직주체와 권력주체간의, 정치적 조직주체와 국가권력간의 유기적인 호응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객관적 조건에 따라 정치활동의 형식과 내용이 단일하게 표출되지 않는다. 현존 사회체계와의 순응적 호응관계를 강화시켜 나가는 정치행위 주체들은 주로 기득권을 토대로 그 사회체계에서 자신 및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이해를 확보하려 한다. ‘비순응적 호응관계’를 형성하는 정치행위 주체들은 현존 사회체계 및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도모하여 자신 및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 한다. 특히 후자의 세력은 부르주아 국가의 제도적 공간, 즉 의회정치․정당정치․선거정치만을 정치활동의 주요한 공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비제도적인 정치활동의 방식과 체제변혁적인 내용을 추구한다.


김동춘 역시 정치활동의 의미를 제도적인 공간에서의 활동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 “정치활동이란 넓은 의미에서 노조활동을 포함하여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지만, 주로 대정부 정치활동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피선거권적 정치활동, 선거권적 정치활동, 정책입안․집행과정에의 참여, 그리고 로비활동 등을 의미한다.”1)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제반 활동을 정치활동에 포함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을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김동춘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한 과정으로서의 정치활동의 실질적인 내용을 ‘선거정치’로 제한하는 개념적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1987년 이후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전국적인 노동자 정치조직의 부재로 정치세력화에 실패하였다는 점과 선거권적 정치활동․피선거권적 정치활동을 강조하였다.”2)


그러나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노동자 정치운동은 ‘선거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에만 주력했던 것이 아니다. 선진 노동자들은 비합법적인 정파조직에 참여하여 가두집회 및 반정부 가두시위 등의 비제도적인 반정부 정치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러한 주체들이 1984년 이후 학생운동의 주체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제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활동을 발전시키고, 노동자 정치운동의 민주적인 정치공간을 확장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활동이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김동춘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민주적인 정치공간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노동자 정치운동 진영이 담당했던 역할을 배제하고 있다. “1987년 7~9월 노동운동이 폭발하게 된 주요 원인을 학생과 시민이 조성한 민주적인 정치공간에서 찾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기존의 사회관계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치질서를 수용하고 있다”3)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은 1981년~1987년 6월 사이에 크든 작든 민주적인 정치공간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실질적인 토대였다. 1981년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투쟁, 1983년 한국노동자 복지협의회의 투쟁, 1985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비롯해 구로 동맹파업투쟁, 서노련을 비롯한 정치적 조직들의 투쟁, 그리고 각종의 비합법 조직들의 투쟁 등이 그렇다.


물론 학생과 시민이 조성한 정치적 투쟁공간, 민주적 정치공간의 확장,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강화로 노동운동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고,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 포섭될 수 있다. 문제는 노동자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이 투쟁을 통해 정치적 공간을 확장시켰고, 노동자 정치활동의 합법성을 획득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제도적인 공간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역으로 정치활동의 공간을 부르주아 의회 및 선거정치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다양한 공간이 부정되고 있다.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필요에 따라 합법적 공간이든 비합법적 공간이든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노동자 정치운동의 비합법적인 정치활동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제도화의 실패와 계급정치의 구도를 통한 동원의 실패를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노동운동의 전통적인 탈정치성, 사업장 차원에서의 연대의식을 정치적 차원에서 해체시키는 보수양당 정치구조, 그리고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표행태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노동자의 정치적 계급대표의식의 결여에서 기인한 것”4)이라고 규명한다.


김동춘의 지적대로 노동자들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각종의 선거에서 ‘연고성, 폐쇄성, 즉흥성’ 등과 같은 투표행태를 드러냈다. 이는 1948년 특히 1968년 이후 지속되어 온 부르주아 정치구조의 산물이지 노동운동의 탈정치성이나 노동자의 정치적 계급대표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된 파업투쟁들은 정치성을 담보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계급대표의식을 강화시켜 왔다. 1991년 전노협의 총파업투쟁, 1996년~1997년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 그리고 2001년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민주노총과 민중연대의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춘의 연구대상과 방법의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첫째, 노동자계급들의 제반 이해를 실질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부재한 상태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활동형태와 활동내용을 제도권의 정치영역으로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 방법은 제도권 정당 및 의회의 본질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는 유용하지만,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상호연대관계에서 형성되어 왔던 노동자 정치운동의 활동의 내용을 분석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둘째, 노동자 계급정치가 사회적으로 현실화되는 양태를 제도권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노동자 계급정치를 법・제도적 체계 내에서의 정치활동, 지배세력의 정치질서의 형성과정으로서의 정치활동, 정당 및 의회체계 내에서의 정치활동 노동자 계급의 정치활동으로 이해․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 계급의 제반 이해를 둘러싼 모순․갈등을 국가의 노동정책의 변화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가의존적인 노동운동 혹은 의회 중심적인 정치적 대리주의가 노동자 정치운동 내에 만연될 수 있는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3. 최적의 합의주의 선택전략


‘사회적 합의’(Social Accord)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담론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려 하고 있고,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새로운 노동운동의 이념을 “사회적 조합주의”5) 차원에서 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노동-국가-자본간의 ‘사회적 합의의 정당성’을 옹호하려 하였고, 현재도 그러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자 정치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고 상호승리게임(win-win game)을 위해 투쟁을 자제하거나, 투쟁을 전개한다 하더라도 ‘계급이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순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국가권력과 권력주체간의, 정치적 조직주체와 권력주체간의, 정치적 조직주체와 국가권력간의 상호 ‘순응적 호응관계’를 지향하고, 이 과정에서 국가가 ‘공공선’을 대표하는 공적주체로서 노동-자본간의 이해대립을 조절하는 자율성을 보유하게 된다. 문제는 상호 ‘순응적 호응관계’는 노동의 이해보다는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권력관계와 사회적 관계만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이론가는 송호근과 임혁백이다. 송호근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급진성 때문에 국가-자본-노동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합의주의’를 지향하지 못하고 노동운동이 퇴보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송호근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대학생과 재야집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사회주의를 추구하였던 비공식적, 진보적인 노동자집단을 표면에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전제를 하고 있지만,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이념, 즉 노동해방과 미래사회에 관해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전망을 추구하는 새로운 노동운동(new unionism) 때문에 노동-국가-자본간의 합리적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이른바 정치적 운동그룹의 급진성으로 인해 그 발전이 제약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6) 송호근의 주장대로 추론하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제시될 수 있다. ‘1990년을 전후로 노동자 정치운동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정치적 급진성을 추구하지 않고 합리적 타협을 선택하였다면, 새로운 노동운동(new unionism)은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운동과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진보적이고 전투적인 투쟁노선을 견지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주체를 보존하고, 민주노총이 결성되는 실질적인 토대를 강화시켰다.


그런데 송호근은 혁명적 노동운동 그룹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과 연계되어 헤게모니를 행사하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이후 새로운 노동운동의 퇴보와 그들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떠한 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당시 노동자 정치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은 송호근의 지적대로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인 노선’을 지향한 것이 아니다. 전노협의 ‘노동해방’은 노동현장의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는 문제에서부터 새로운 대안적 사회체제의 상을 반영하는 추상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강령이었지, 송호근의 인식처럼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전노협 사수’라는 조직보존투쟁에 주력했던 현실, 그리고 노동자 정치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에게 합리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허용하지 국가-자본의 탄압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 등을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임혁백은 노동정치를 노동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국가․자본․노동의 정치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계급갈등 해결의 제도화, 즉 정치적 주체들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는 신조합주의론을 노동정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7) 임혁백은 “신조합주의와 협의주의가 계급조직간의 갈등 해결기제로 적용되는 것이다. 신조합주의는 계급타협의 보장자로서의 국가의 권위적 통제의 역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계급조직 상호간에 장기적인 이익의 향상을 꾀하는 최적의 집단적 획득전략이고, 협의주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경쟁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면서 계급조직간의 최소한의 권력분점을 보장․제도화하고 상호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상호공존전략이다”8)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최적의 집단적 획득전략이든 상호공존전략이든 계급타협이 이루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이 보장되어야만 그 논리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국가-자본이 보유하고 있는 합의의 조건과 노동이 보유하고 있는 합의의 조건이 최소한 동등해야 한다. 물론 임혁백은 계급타협전략의 전제조건으로 ‘이윤증대에 따른 임금인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 노동자들이 투자를 통제할 수 있는 기구의 존재, 자본가들이 이윤의 일부를 미래의 임금의 증가를 위해 쓰겠다는 조건에 합의, 자본가들이 정치적 권위주의로의 기도를 멈춘다는 것에 동의’ 등을 제시하였다. 이 전제조건은 사적 자본가들의 관념적 도덕성과 국가권력의 ‘공동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전제조건이 성립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어떠한 국가정책이든 장기적인 자본의 투자와 이윤을 보장해야만 하고, 다음으로는 자본의 사적영역에 개입해야만 하는 국가의 정책이 자본가 계급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다.9) 마지막으로는 노동자 계급이 계급타협의 한 주체로서 자본가 계급과 조응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반 장치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첫째 조건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자본의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의 법칙에 따라 장기적인 자본의 투자와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조건에서는 국가의 정책이 자본가 계급에게 의존해야만 하고,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비롯되는 제반 부담을 임금 노동자들에게 전가시켜야만 한다는 점이다. 셋째 조건에서는 노동자 계급정치운동에 필요한 제반 장치들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는 의사(pseudo)적인 계급타협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권위적 통제수단으로 오히려 임금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임혁백의 계급타협전략으로서의 신조합주의와 협의주의는 계급타협의 조건을 구축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부르주아 국가체제 안으로 포섭․통합시키고,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계급정치운동의 역량을 분할․고립화시켜 나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전략에 불과한 것이다. 제솝(Jessop)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신조합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첫째,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강화할 수 있다. 둘째, 자본축적을 증진시키는 수단이다. 셋째, 노동자 계급의 분할을 토대로 혁명적 노동운동을 저지할 수 있다. 넷째, 체제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개혁주의적 정치를 제도화할 수 있다. 다섯째, 국가자본(national capitals)의 강화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여섯째,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갈등을 제거할 수 없다.”10)


4. 급진적(?) 정치 엘리트주의 비판전략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는 정치적 투쟁의 국면이나 정세조건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노동조합운동이나 조직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이 동시에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개별적인 정치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에 비해 노동자 정치운동이 발전한 경우에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노동자 정치운동에 비해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한 경우에는 노동조합운동의 주체들이, 그리고 양 운동이 동시에 발전한 경우에는 양 운동의 주체들이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한다.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은 개별적이든 조직적이든 대부분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 존재하면서 노동조합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들의 제반 권리의 확보, 계급의식 및 정치의식의 강화, 정치적 계급투쟁의 강화 등을 위한 정치활동에 주력한다. 이러한 활동은 노동현장과 유리된 상태이거나 혹은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전개되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주요 동력은 정치 활동가 개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힘’이었다.

그런데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 노동현장의 노조간부, 노동자 대중들 간에는 많은 부문과 영역에서 괴리가 존재한다. 정치적 활동경험의 차이, 의식의 불균성, 정세인식의 불균등성, 투쟁의 전략․전술적 목표의 차별성, 노동현장에 대한 정치적 이해의 차별성 등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론가들이 지식인 출신의 급진적 정치활동가들을 ‘최대강령주의에 매몰되어 노동현장의 대중들과 동떨어진 정치활동에 주력했던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동춘, 최장집, 임영일이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다.

김동춘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노동자 대중들의 의식수준과 무관하게 최대강령주의적 노선에 입각한 전달벨트식 운동에 주력하였다고 하였다. “노동자 대중들은 대안적 사회의 비전과 정치적 계급의식은 아주 낮은 반면에 1970년대 이후 정치적 활동가(현장투신)들은 대체로 노사협조주의를 강하게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전투적 노선을, 개량주의적 노동조합주의를 반대하는 측면에서 혁명적 노동조합주의를, 편협한 경제적 이익추구를 반대하는 측면에서 정치적 조합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식인 출신의 노동운동가들과 노동현장의 노조간부․노동자들과 괴리가 존재했다.”11) 또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간의 분열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지체시켰다고 하였다. 1988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운동노선의 분열을 분석하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다음과 같이 네 그룹으로 구분하였다. “① 국제적 환경변화와 국제 노동운동의 답보 상태를 비판하면서 사업장 단위의 노조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정치조직 및 정당의 결성을 우선시, ② 정당의 결성에는 동의하나 그것이 합법정당일 경우에는 개량화될 것이므로 비합법적 전위정당을 통해 노동운동을 지도, ③ 정당의 결성보다는 대중투쟁의 활성화를 통한 계급조직화에 비중을 두는 경향, ④ 계급노선보다는 단위노조의 조직화와 정치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 개혁을 통한 노동자의 조직적 역량의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으로 분화되었다”12)는 것이다. 비제도적 정치운동가들이 최대강령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괴리되는 정치활동을 전개하였고, 정치활동가들간의 정파적 분열로 노동자 계급이 정치세력화에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일반적인 발전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떠한 운동이든지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개별적인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이 그 운동의 중심 주체로 존재한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운동에 대한 국가-자본의 탄압이 극심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김동춘은 지식인 출신 활동가들의 활동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비제도적 정치운동은 기본적으로 노동현장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강령과 정책들을 제시했었다. 노동조합의 건설이라는 목표에서부터 혁명적 변혁의 완수라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전위정당을 통한 혁명적 변혁을 도모했던 세력들은 당연히 혁명적인 강령과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그렇지 않은 세력들은 개혁적이거나 혹은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한다는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강령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주의주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또한 노동자 정치운동 주체들의 정책과 강령이 다양하듯이, 노동자 정치운동은 분화와 통일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최장집도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에 대해서는 김동춘의 입장과 비슷하지만, 비제도적 정치운동주체들의 ‘운동의 정치’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선도성을 인정하고 있다. 학생운동 출신의 지식인들이 비제도적 정치운동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도권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노동운동이 ‘운동의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서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1980년대 중반까지는 1985년의 구로노동자 동맹파업, 청계피복 노동자 투쟁, 대우자동차파업, 1986년의 5․3 인천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노학연대’를 통한 파업이나 시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1987년 6월 이전의 노학연대는 좁게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넓게는 재야 민주화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에 대하여 커다란 도덕적 지도력을 가졌다. 그리하여 현장에는 무수한 이념지향적 활동가들의 서클이 만들어지고, 이들 조직들이 노조 내로 삼투되었다. 민주화운동에서 노동운동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학출 노동자들이 지하서클조직, 서울노동운동연합, 인천지역노동자연합과 같은 반공개적인 노동운동단체들을 조직하여 정치성이 매우 강한 활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13)

그러나 최장집은 비제도적 ‘운동의 정치’가 급진적이고 분파적일 수밖에 없었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노동자 정치운동의 급진적 정향성과 분열성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있다. “비제도적 노동자 정치운동의 리더십은 변혁 또는 혁명 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급진적 정향이었다. 그런데 전노협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의한 측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급진적 활동가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된 측면이 보다 강함으로써, 활동가 중심의 급진적 노선을 통한 전국적 조직의 출현은 마치 탄압의 목표가 되기 위한 듯싶었다. 광범한 대중적 연대를 어렵게 하는 이념적 경직성과 분파주의는 고도의 강권력이 작용하는 조건 하에서 그러한 강력한 탄압에 맞서게 한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 지도의 이념을 강조함으로써 밑으로부터의 요구의 수용보다는 조직적․이념적 하향 경직성을 강화하고 조직간의 횡적․종적 연대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분열시켰다. 이러한 분열은 3․24 총선에서 드러난 노동자들의 투표행태 및 후보자 선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14)

최장집은 전노협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으며, 또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혁명적, 변혁적 리더십에 대해서고 김동춘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장집의 주장대로라면, 전노협은 급진적 인텔리가 주도적으로 조직하여 경직적이고 분파적으로 운영한 노동운동내 관료조직으로서, 광범한 노동운동의 대중적 연대를 어렵게 한 조직주체에 불과했으며 스스로 국가의 탄압을 원하는 운동주체였다. 그런데 전노협 결성의 주도적 주체들은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에 참여한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은 이들 노동조합의 전국조직 결성활동에 보조적인 수준에서 결합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고, 결성 초기에 대부분의 사무국 활동가들이 지식인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전노협의 실질적인 운영주체는 이들 활동가들이 아니라 노동조합이었다. 최장집 이외의 많은 논자들도 전노협의 운영방식이 내리꽂기 식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전노협에 대한 국가의 탄압을 고려하지 않는 절름발이식 평가에 불과하다. 전노협을 결성한 제조업 중심의 노동자들은 조직을 사수하기 위한 조직동원투쟁을 급박한 일정에 맞추어 전개해야만 했었고, 자유롭게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지도부를 구속하는 등 조직 내 민주주의를 유지할 최소한의 조건조차 허용하지 않는 국가의 탄압이 존재했었다.

지식인 출신의 활동가들과 전노협에 대한 비판에서도 파악할 수 있지만, 최장집은 비제도적인 운동의 정치를 표면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거부하고 제도적인 선거정치의 틀 내에서 전개되는 ‘민주적 시민정치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최장집은 “선거공간이 개방되기 이전의 노동운동은 운동의 정치라는 방법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였고, 지하서클조직과 반공개적인 노동운동단체들은 정치성이 매우 강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선거공간이 개방된 이후, 운동의 정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다.”15) ‘운동의 정치의 영향력’과 ‘지식인 출신의 개별적 활동가들의 영향력’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 확장된 선거공간에 참여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당을 급조했던 지식인 출신의 개별적 활동가들이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의 정치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1996년~1997년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에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굴복하였고, 2000년~2001년 민주노총의 정치적 총파업투쟁에 직면한 김대중 정권은 ‘국민의 정부 혹은 개혁정부’가 허상이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최장집의 개념을 빌어서 본다 하더라도, ‘운동의 정치’가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운동의 정치’를 지식인 출신의 개별적인 활동가들의 정치활동으로 이해하는 ‘엘리트주의적이고 편협주의적인 관점 때문에, 노동운동을 시민운동의 한 부문운동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경로를 다계급・다계층 연합으로서의 민중정당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의 정치와 중산층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노동운동이 더 이상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갈등과 모순의 중심에 위치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하나의 부문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뿐이다.”16) “민주적 조합주의(democratic corporatism)에 기반하는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 계급뿐만이 아니라 다계급・다계층 연합으로서의 민중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경로로 제시한다.”17)

그러나 최장집이 의미하는 민중세력의 정치적 진출은 ‘민주적 시민의 정치적 대동단결’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가장 효율적으로 정치적 역량을 통일시킬 수 있는 주체는 정당이다. 그러나 정당도 정당의 독자적인 성격(정치노선, 정강정책, 정치활동, 당원의 출신배경 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다계급․다계층 연합으로서의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이념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부르주아 대중정당(계급정당)에 불과하다. 부르주아 대중정당은 계급주체로서의 노동자 대중들을 몰계급적인 국민대중으로 우상화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부르주아 대중정당(계급정당)이야말로 다계급․다계층 정당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부르주아 정당의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노동자 대중들은 계급주체로서의 정치의식을 형성하거나 독자적인 계급정당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면, 노동자 대중들은 주기적으로 선거정치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투표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로부터의 고립성’, 감성적이고 즉자적인 이해에 매몰되는 ‘연고성’, 보수주의 정치체제에서 형성된 인물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존성’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대중들의 이러한 투표행태나 정치의식은 현재까지 쉽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투쟁이 활성화되지 않은 수준에서 아직도 진행형이고, 진보정당에 대한 노동자 대중들의 지지가 매우 일천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역량을 투표의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비제도적인 정치참여투쟁, 즉 민주노총의 정치적 총파업투쟁과 민중통일전선조직의 주체들의 반정부투쟁 등도 노동자 계급의 주요한 정치적 역량이다. 그런데 임영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조직화의 실패원인을 노동조합운동과 유리된 상태에서 개량적이고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한 급진적 인텔리 정치조직들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학생운동과 진보적 인텔리 정치조직들의 ‘과잉관념화’에 따른 ‘대중과 유리된 정치적 실천운동’의 과정에서 이들의 변혁적 담화와 언술효과가 극도로 증폭되어 가리워져 있었지만, 이러한 이념적(좌파적, 최대강령주의) 지향과 그 조직들이 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의 정치지향성을 결정지었던 것도 아니고 대중조직, 대중운동 혹은 노동자 대중 그 자체와 유의미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조직화의 실패는 노동운동 리더십의 그릇된 최대강령주의적 운동에서 초래된 실패가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 정치사회로의 정치적 진출이 노동운동 리더십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분리된 급진적(그러나 이미 빠르게 개량화된) 인텔리 정치조직들에 의하여 주도됨으로 인해 빚어진 실패였던 셈이다.”18) 정당의 결성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과정을 시민사회와 분리된 정치사회로의 진출로 간주하고 있으며, 또한 노동운동의 리더십과 노동운동을 지향했던 인텔리 정치조직의 급진적이고 최대강령주의적인 리더십을 분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주체를 노동운동과 인텔리 정치조직으로 분리하기 힘들다는 점이고, 또한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의 삼분론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당은 국가영역과 시민사회영역에 동시에 속하는 사회적 기구라는 점이다. 1987년 이전 노동운동의 정치적 리더십은 학생운동 출신의 인텔리 정치조직들에 의해 발현되었고, 이들의 헌신적인 투쟁의 성과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결집되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경인지역의 노동현장으로 침투한 학생운동 출신의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임영일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리더십이 노동조합운동의 리더십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정치조직의 리더십과 노동운동의 리더십을 작위적으로 구분하기 힘들다.

한편 임영일의 삼분론에 근거해서 본다면, 1987년 이전의 인텔리 정치조직의 주체는 시민사회의 영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형식과 내용 등을 정치사회의 영역으로 한정해서는 않는다는 의미를 제공한다. 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양 날개, 즉 정치사회에서는 진보정당의 건설과 시민사회에서는 집중적 노동조직의 대표적 형태인 산업별 노동조합의 건설을 통해서 달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모순적이라는 근거이기도 하다.

비록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임영일은 노동조합운동의 역량이 성장에 비례할만한 노동자 계급의 정치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민주적 대안들과 진보적 계급정치를 가능하게 할 대안이 집중적 노동조직의 형성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산별노조운동)에서 모색되고 있는데, 이는 거시적 계급정치와 노동정치의 모색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그것을 주창하고 요구할 정치단위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받아낼 계급주체의 형성조차 말하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이다.”19) 그러나 이 주장은 정치단위의 의미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정치조직의 상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계급정당을 결성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을 정치단위로 존재했었고, 역사적으로 이들 중에는 또한 거시적인 노동자 계급정치를 지향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또한 노동자 계급정치가 산별노조의 건설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혐의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임영일은 노동운동의 리더십과 주체를 분리하여 분석․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분리론적 모순을 답습하고 있다.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노동운동의 정치조직화의 주체를 노동운동과 정치조직운동을 작위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의 층위는 대중운동(노동조합운동), 활동가운동, 정치운동의 세 층위이고, 핵심적인 매개적 층위의 운동은 활동가운동이다. 통상적으로 활동가운동은 두 가지 조직을 동시에 가동하는데, 하나는 비공개적으로 유지되는 정치 활동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이나 현장의 노동자들과의 일상적 교류와 활동의 공간으로 배치되는 공개 활동조직이었다”20)라고 제시한다.

선진노동자 조직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운동의 매개적 주체로서의 성격과 이중적 조직주체로서의 활동방식을 규명한 점, 노동운동의 지도력이 노동현장에 관철되는 구조, 노동운동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 등을 규명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유의미하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운동의 리더십이 투쟁사안에 따라 리더십의 주체와 그러한 주체들의 활동내용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대중운동(노동조합운동), 활동가운동,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다양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노동자 계급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리더십이 구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현장의 선진 노동자 조직의 형성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던 노동자 정치운동과 연계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리더십의 주요한 주체를 노동현장의 선진 노동자와 활동가운동의 주체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급진적 인텔리 정치조직의 주체 혹은 노동자 정치운동조직의 주체와 분리시키는 것은 작위적이다. 만약 현 단계 노동자 정치운동의 국면을 독자적인 정당운동을 전개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정당운동을 전개하는 주체들은 급진적 정치조직의 리더십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그러나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해왔고, 현재에도 그러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세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1990년 민중당이 결성될 당시 울산의 주요 사업장의 선진적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을 상기하거나, 재창당 투쟁을 전개했던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재 노동현장에는 비합법적인 정치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현장활동가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주요 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청년진보당․노동자의 힘 등의 정치적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치조직뿐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5. 결론

기존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주요연구자들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이 글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노동자 정치운동론에 대한 재구성’의 단초였다는 점을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평가의 대상이 된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물론 노동자 계급정치는 정당한 이론의 공급만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이론가들의 자양분이 한국 노동운동의 실천을 뒷받침하거나 앞에서 선도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문제는 경우에 따라 이론이 실천의 방향을 흔들기도 하고, 실천의 방향에 피동적으로 끌려가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론이 노동운동의 실천적 방향을 뒤흔들 경우,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가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시키거나 혹은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에 기여하는 개혁의 정당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수레바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론적 기능을 담당하는 한 쪽의 수레바퀴가 찌그러진다면, 아무리 화려한 부속장치로 구성된 수레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진한다 하더라도, 몇 바퀴 구르다가 바퀴가 부셔지든지 마차 전체가 부셔지고 말 것이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의 자갈로 뒤덮인 길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운동은 형식적이고 계량적인 결과로 분석․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의 힘을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힘으로 전화시켜 내는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분석․평가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어느 한 이론으로 혹은 어느 한 대표적인 이론가의 인식의 잣대로 재단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역량을 형성하는데 미미한 역할을 했든 거대한 역할을 했든 그 자체가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1970년 이후 한국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 투쟁은 주체, 방식, 내용 등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았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행위주체, 투쟁의 방식, 투쟁의 목표, 투쟁의 성과” 등에 대한 기준에 따라 그 존재양태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활동가 수준의 주체, 정파적인 서클 수준의 주체, 연합적인 단체 수준의 주체, 그리고 정당 수준의 주체 등이다. 노동자 계급정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최고 수단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노동자 계급정당으로의 통일성을 이루어 낸 조직주체도 존재하고, 혹은 현재도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조직주체도 존재한다. 선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이론가들도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과정이야 어찌하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 혹은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여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을 받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이론가들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국면과 조건에 따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의 역사의식을 사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관련해서 그러한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체제강화적이거나 혹은 체제강화에 기여하는 체제개혁적’인 틀 내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담론을 희화화시켜 왔다. 특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면서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의 역사적인 활동과 역할을 배격하는 것은 ‘체제변혁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희석화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어떤 정치적 계급주체가 계급적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노동자 계급의 대안세력이거나 사회적 헤게모니 세력임을 자처한다고 해서, 혹은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결성한다고 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설사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 대중들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0년 전노협 결성투쟁 및 사수투쟁, 1991년 5월 전노협의 정치적 총파업 투쟁, 1996~97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2001년 5~6월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등의 예가 그렇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정형화된 형식과 내용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을 통일시켜 내는 지점만은 존재한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의 역량이다. 어떤 이론과 실천은 단기적으로는 노동자 계급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 역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이론과 실천은 노동자 계급의 힘을 강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엥겔스의 지적처럼 힘은 사회운동주체들의 주요 도구이며 이미 죽어 버린 그리고 화석화된 부르주아 정치형태를 분쇄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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