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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정보사회의 윤리
작성자 펌맨
댓글 0건 조회 820회 작성일 200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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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칼럼]

정보사회의 윤리

‘초고속정보망’ ‘사이버공간’
‘지구촌’ ‘가상공동체’등의
은유(隱喩)적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 오늘의 정보사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는 산업사회와
여러 가지로 다르다.

경제·정치·문화적 구조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떤 특정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사회가 그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작년 말에 한국의 인터넷의 이용률이
국민의 70%를 넘어섰고
총인구 대비 세계최고의 ‘인터넷강국’이라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독일의 그것은 같은 시기 61%에 그쳤다.

인터넷매체는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속성을 본질로 한 이러한 매체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가정’과 같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시켜주는 측면도 있지만
음란과 폭력적 내용으로 인한 정보오염의 심각성,
개인정보의 불법유출,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범죄’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부정적 현상도 동반하고 있다.
이에 대비한 법률의 제정과 함께
새로운 정보문화 창출을 위한 시민운동,
나아가 정보사회의 윤리적 규범에 관한
철학적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기존의 인쇄매체와는 달리 인터넷매체에는
여러 사람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고
생산적인 논쟁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매체가 저질의 인신공격 속에
묻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
익명(匿名)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러한 매체 속에서
우리는 연령, 성, 직업, 출신지와 같은 요소들이
그 동안 제약해왔던 사회관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감은 종종 자기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심지어는 감정이입이 전혀 통제되지 않는
망상과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face to face)
세계의 윤리적 조건과
사용자인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시켜주는 장치인
‘인터페이스’(interface)의 세계의 그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 Levinas)는
먼저 지적된 세계의 윤리적 매체는
바로 인간의 ‘얼굴’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시간과 공간을 떠난
‘육체 없는 두뇌’가
새로운 윤리적 매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대비가 오늘날 극명하게
하나의 논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곧 ‘전자(電子) 민주주의’다.

앞의 견해는
민주주의는 우리들의 몸에 깃든 자기정체성,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연대성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후자의 견해는 새로운 매체를 통한
다양하고 평등한 여론형성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고 피력한다.

두 견해가 모두 정보사회의 명암,
그리고 이에 근거한 비관과 낙관을
나름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든지 정보사회의 미래는
새로운 정보통신의 기술적 특성에만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담론(談論)체계,
즉 사회성원의 힘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사이버공간’(Cyberspace)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공상과학소설가
윌리엄 깁슨(W Gibson)도 사이버공간은
결국 우리 사회의 재미있는 하나의 거울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가치,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때로는 과장하는
그러한 거울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정보사회의 윤리적 내용도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대방의 인격존중, 자율성, 책임감
그리고 연대성과 같은 덕목들이
바로 정보사회의 윤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테크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익명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러한 따뜻한 공동체의 정신을 잊지 않을 때
‘인터넷강국’도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송두율 -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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