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중앙파의진로- 사실을 밝힌다!!
작성자 펌맨
본문
오늘의 이사태는 예견된것이었다.
- 중앙파의 배신과 금속운동의 몰락
1. 금속연맹의 현실
금속산업연맹은 민주노조운동의 적통을 계승한 조직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서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속연맹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최근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사태에서 보듯이 중심조직을 징계해야만
하고 조직상태는 의무금 걷기도 힘든 상태이고 금속노조라는 산별노조
건설을 했으나 대부분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철연맹이 아니라
양철연맹이라는 참담한 동담도 떠돌고 있습니다. 왜 금속연맹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 이제 제조업 중심의 운동에서 공공중심의 운동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산업이 변하면서 그렇게 된다.” 과연 이런 일반적인 이유로
설명될까요? 여전히 유럽이든 혹은 심지어 미국이든 제조업의 노조들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답은 아닙니다.
“ 구조조정과정에서 깨졌다. 그 패배의 후유증 때문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구조조정투쟁을 한지 몇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몇 년을
보내왔습니다. 패배 이후 어떤 노력이 있었으며 없었다면 왜 그랬는가가
중요합니다.
“ 과거의 임단협 중심의 투쟁을 했고 조합주의 때문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적을 한지 지금 몇 년이 되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극복방안을 만들고 있다면 금속연맹은 결코 양철연맹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품은 조직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또한 구체적인 답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2. 금속연맹의 역사적 논의
한국 노동운동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극악한 노예상태에서 쌓인 대중적 분노가 그 힘이 되어 발생했습니다.
대중적 분노는 현장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해서 구심이 세워지고
조직되면서 비로소 조직된 운동으로 민주노조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노조가 없을 때는 노조건설이나 민주화 추진위원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조건설의 힘이 되었고 노조가 건설된 후에는
집행부로 또는 현장조직으로서 활동을 함으로서 내외적인 도전에 맞서
왔습니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이야 말로 한국노동운동의 힘이자
현장중심적인 특징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장조직들은
전국적 차원에서 의견그룹으로 조직되어 왔으며 금속연맹이야 말로
이러한 운동구조를 가장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조직이 살아 있고 발전하는 이유는 바로 조직내부의 다양한 견해와
견해그룹들의 논쟁, 상호를 견제하고 이끌어 가는 실천들에 있습니다.
이런 원리처럼 금속연맹은 조직 내 견해그룹들의 논의과정이 대중조직의
원리 속에서 구현되면서 건설되고 발전되어 온 역사입니다. 따라서 이런
견해그룹간의 논의는 금속연맹의 역사를 바라보는 창입니다.
1) 금속연맹의 첫번째 역사적 논의 - 연맹의 탄생
민주금속, 자동차연맹, 현대그룹총연합. 누구나 알 듯이 금속연맹은 이
세 개의 조직이 뭉쳐서 탄생하였습니다. 민주금속은 다양한
금속사업장을
포괄한 조직으로서 대산별을 주장했습니다. 자동차연맹은
자동차노조들의
조직으로서 자동차소산별을 주장했습니다. 현총련은
재벌그룹노조조직으로서 한국적 재벌구조에서는 그룹단일노조가 맞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들은 결정적으로 금속연맹의 탄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단 해소되었고 98년 한국 최대의 산별연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2) 두번째 역사적 논의 - 산별노조건설
연맹의 탄생 이후 구조조정을 지나면서 연맹은 확실히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로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조직의 이견은 산별건설을
둘러싸고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중앙파는 연맹의 지도부를 장악하여
산별노조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현장파는 제대로 된 산별을
만들자면서
조직형태변경식의 산별건설에 반대했습니다. 국민파는 기업지부인정을
포함한 조건을 내걸면서 산별노조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우여곡절을 통해 국민파와 중앙파의 기업지부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타협을 이뤄냈고 결국 산별전환결의 대대에서 산별건설이
결정되었습니다. 한편 현장파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의원대회장에서 퇴장하였습니다.
물론 타협에 동의한 국민파 내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현실속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한 반론이 있었고
따라서 국민파가 온전하게 산별전환에 동의하고 참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장파라고 하더라도 일부는 단위노조차원에서 노골적인
산별전환반대를
선동하기도 했으나 일부는 산별전환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구조조정 투쟁의 한복판에서 현장동력을 확실하게
조직하지 못하고 연맹내부의 견해차를 분명하게 매듭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한 금속노조는 겨우 2만8천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어려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지도부도 꾸리기 어려운 상황들과 꼭 이런
식으로 시작해야 하는 반론들이 교차하는 어려운 출발을 한 것입니다.
3) 세번째 논의 - 금속노조의 탄생이후 발생한 혼란과 해결책 모색
구조조정투쟁에서 이렇다할 성공 없이 전반적인 후퇴로 인한
침체분위기가 저변에 흐르는 것이었지만 금속노조의 탄생과 함께 발생한
혼란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현장과 지역에서는 금속노조로 전환한 사업장과 미전환 사업장 사이에
감정적 갈등까지 발생하였고 금속노조와 연맹으로 이중화된 연맹의
조직질서로 인한 혼란, 연맹의 전반적인 지도력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는
연맹의 중앙에서부터 특단의 대책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2001년 연맹의 중앙에서는 정책실 등에서 조직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을 위하여 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실시하기도 하고 현재
나타나는 조직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논의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제출된 것은 우선 산별노조의 탄생을 둘러싸고
‘옥동자’나 혹은 ‘사생아’로 규정하지 말고 금속연맹의 모든
의견그룹들이 공동의 한계로 인해 탄생한 ‘미숙아’로 미완성의
산별노조를 완성하는 것을 공동의 과제로 안고 가야한다는 기본인식을
같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핵심적으로는 당시와 같은 산별노조를 둘러싼 이견대립을 넘어서 제
조직들의 참여를 통해 공동으로 산별완성을 위하여 지도부임기를
단축하고 조기선거를 실시하되 지도부를 합의 추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연맹의 임원 수련회 및 중집수련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2001년10월?)중앙위에서는 최종적으로
이 방안을 결의하기로 안건을 상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안은 완전히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매우
비정상적으로
폐기됩니다.
4. 배신과 은폐의 출발
1) 금강휴게소 회합과 중앙파의 배신
연맹 중앙위원회가 개최되기 전날이었습니다. 연맹의 핵심지도부들
일부와 단위노조 및 지역의 일부 중앙파에 속하는 동지들은
금강휴계소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이 회합에서 중앙파는 기존의
조기선거 및 3기 지도부를 단일 지도부로 추대하는 문제를 완전히
뒤집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초에는 현대차와 기아차 등의 선거를 앞두고 중앙파는 비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현대차에서는 국민파의 실노회가 당선될 것이고
기아차에서는 역시 국민파인 기노회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중앙파는 심각한 연맹의 상태와 대공장 지도부가
국민파가 들어설 것을 예상하고 향후 연맹의 지도부를 일정하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이 과정에서 연맹중앙에서는 문성현 당시
위원장이 국민파의 일원으로 알려진 이00부위원장에게 사실상 차기
연맹위원장 자리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거결과 현대차에서는 중앙파에 가까운 민노투 집행부가
당선되었습니다. 기아차에서는 기노회가 아닌 현장의 힘이
당선되었습니다. 예상은 바뀌었고 중앙파는 이 상황에서 조기선거를
통해
권력을 넘겨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합의사항은 번복됩니다.
하지만 연맹의 임원수련회와 중집회의를 통한 만장일치로 결정한
합의사항을 연맹중앙파지도부들이 스스로 번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은 다름 아닌 현대차 새 집행부였습니다. 당일 연맹
중앙위에서는 현대차 신임집행부중 일부가 노동법개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투쟁을 해야 하는데 굳이 조기선거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조기선거론에 쐬기를 박기 시작했습니다. 연맹 지도부들은 이미
금강휴게소의 배신회의를 통해 결정한 작전대로 현대차 간부들의
반대발언을 허용하면서 결정이 자연스럽게 번복되도록 하였습니다.
만장일치의 결정사항인 만큼 누구보다도 위수사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습니다. 중앙파를 제외한 다른 중집위원들은
상황을 모르고 결정이 갑자기 번복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2) 3기 연맹지도부선거에서 중앙파의 단독출마
조기선거와 통합지도부 구성안은 금속노조의 탄생에 대한 냉정한
비판적 평가에 기초하여 산별완성이라는 과제를 공동의 과제로
합의함으로서 분파적 질서를 통합의 질서로 바꾸려는 강력한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중앙파의 배신은 금속노조 탄생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통해
완전히 3분된 연맹내부의 견해를 새로운 상황에서 일정하게 통합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01년 사업평가를 둘러싸고 논의과정에서 중앙파의 입장은
돌변합니다. 처음에는 산별노조 미완성의 문제를 공동의 한계로
인정하자고 했지만 중앙파는 점점 산별노조 건설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이었다고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논의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조기선거가 폐기되고 난 후 원래의 일정에 따라 지도부 선출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일후보추대 논의는 시작되었지만 이미
중앙파가 배신한 상황에서 성사될 리 없었습니다. 후보추대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중앙파 혼자서 단독 출마하였던 것입니다.
국민파와 현장파는 통합지도부 선출이라는 방침에 근거하여 마지막까지
후보출마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앙파가 추대한 3기지도부에 대하여 국민파와 현장파는 반대표를
던지기로 방침을 굳혔지만 이미 상황은 중앙파의 주도권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단독 출마한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은 출마하지 않은 집단에게는 힘에
겨운 일이었으며 결과는 백순환 - 전재환 - 김호규의 위수사와 오종쇄
부위원장 등 중앙파의 지도부가 찬반투표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순간 금속연맹의 상황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 그래 니들끼리 해 처먹어라”
중앙파를 제외한 그룹들이 가진 분위기는 이것으로 압축됩니다.
결국 중앙파의 배신은 금속노조를 둘러싼 정파적인 논쟁을 수습하는
과정이 아니라 최악의 상태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3) 배신은 은폐되고 범인은 뒤바뀌다.
그러나 이런 중앙파의 배신적 행위는 그 자체로 평가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산별노조’라는 깃발 때문입니다. 산별노조건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노조운동의 목표로 공유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산별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하는 질문 앞에서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곧 바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파는
바로 이런 점에서 산별이라는 화두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연맹권력이라는 두 개의 무기를 들고 상황을 마음껏 유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현장파, 국민파 그놈들은 산별에 반대하는 놈들이다.”
“ 산별전환 결정 사항도 지키지 않는 놈들이다. ”
“ 현장파 꼴통들과 말도 안되는 국민파 놈들이 반대해서 이
모양이다”
바로 이런 논리로 자신의 배신적 행위와 파벌적 행위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졸지에 현장파나 국민파를 분파주의자로 낙인찍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금속운동 내에서 횡횡했으며 지금도 떠도는 중앙파식
메카시즘의 악령입니다.
4) 잘못 처방된 보약은 극약이 됩니다.
중앙파를 중심으로 한 산별운동은 철저히 왜곡된 과정으로서 다른
한편에서 수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킵니다.
첫째로 산별추진 과정은 현장의 상태와 현장의 문제를 배제한 채
‘지도부 낚아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단위노조 집행부가 올라오면 친 중앙파적인 집행부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집행부에 대해서도 산별전환이라는 당위를 앞세워 전환총회를 밀어
붙였습니다. 반대 견해를 가진 대우조선 현민투 출신의 김정곤 집행부
또한 조선분과의 대표자회의에서 강력한 밀어붙이기에 밀려 결국은
산별총회를 붙였습니다.
이런 식의 상층차원의 정치게임으로 진행된 산별전환에의 집착으로
인해
현장상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뤄질 수 없었습니다.
둘째로 한창 진행 중이던 구조조정 투쟁도 ‘산별노조 이후’ 또는
‘산별이 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속노조가 탄생한 이후 금속노조의 구조조정 대응은
어땠는가요? 오리온 전기에서 직권조인 논란과 징계를 비롯하여 두산과
세원과 한진 등등.... 나중에 열사가 탄생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를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후퇴는 계속되고 극단적
상황들이 속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손 놓고 있다가 사람이 죽으면
싸우는 것은 다시 평가되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산별이 되면 해결된다고 했는데 과연 아산과 울산
등의
비정규직 노조는 금속노조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특히 2001년에 이미 연맹의 조직진단을 통해 구조조정에서의
연속된 후퇴로 인한 현장의 분위기가 개별화되고 실리주의적 경향들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의
상황을
바꾸기 위한 대책은 실종되었습니다.
‘산별 만능론’에 빠져 있는 3기 백순환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역시
당장의 전환총회가 중요하지 이런 문제는 관심밖으로 밀려 있었거나
그런
문제도 ‘산별이 되면 해결된다’는 식이었습니다.
‘보약은 극약이 되었습니다’
보약도 잘못 쓰면 극약이 됩니다. 산별노조라는 계급적 단결을 위한
무기는 중앙파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서 그들의 권력유지용
보약은 되었을지 몰라도 금속운동에는 극약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5. 금속연맹의 내리막길
1) 간부와 활동가들의 마음이 연맹에서 떠나다.
연맹의 핵심적인 운영원리는 공적 조직으로서 질서를 갖지만 동시에
현장의 의견과 다양한 견해가 현장조직을 통해 수혈됨으로서 활력을
갖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무너졌습니다.
그 이전에도 파벌간의 대립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의 두번의
역사적인 논의에서 처럼 타협 가능하고 조율 가능한 것이었으며 연맹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중앙파의 배신은 이견그룹간의 열린
논의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중앙파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이 극단적인 반발속에서 연맹의 상당수 활동가와 간부들을
연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고 철저하게 권력과 파벌의 논리에
기초하여 활동하도록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것입니다.
연맹에 대한 애정이 모두 사라진 다음, 연맹의 회의는 늘 성원걱정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성원이 되지도 않은 중앙위나 중집에 대리사인으로
성원을 채운다고 합니다.
사태파악을 아직도 못하고 모두들 연맹에 등 돌리니 자기천하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까요? 연맹의 중앙에서는 소위 중앙파 지도부의 독단적
운영을 꼬집어 ‘독수리5형제’라는 아주 극단적인 용어까지 나돌았다고
합니다.
2004년에는 사무처 재편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들이 있었고 중앙파의
지도력이 바로 코 앞의 사무처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제는
용감하게도
백순환 위원장이 사무처를 ‘당신들은 직원이다’ 는 식으로 규정하고
회사의 사장처럼 경쟁 논리를 들이대면서 질서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묘소 앞에서....
이게 무슨 기초질서 지키기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는 공장이란
말입니까!
2) 계속되는 추악한 권력 지키기
산별만이 살길이라고 난리를 치던 중앙파가 초기에 금속노조에서
절대적인 지도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금속노조에서 더 이상 지도적인 다수파가 아닙니다. 그들의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렸습니다.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완전히 밀려나는 것보다는 귀퉁이라도
움켜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역시 교활한 그들은 예전에 써먹던
‘통합지도부’ 구성을 떠들면서 결국 3파 연합지도부를 출범시키지만
지금 금속노조위원장은 그들의 뜻에 따를 사람이 아닙니다.
도대체 중앙파는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왜? 불과 몇 년 사이에 지도력이 악화되었는지를
평가라도 해 보는 것일까요? 혹시 지들이 고생할 때 국민파 놈들이
바닥을 훑어서 조직사업만 해 가지고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될 뿐입니다.
금속노조에서 주도권을 뺏긴 중앙파에게 또 다른 계기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민주노총 선거입니다. 중앙파는 갑자기 좌파를 자처하고 나섭니다.
소위 ‘좌파연합’론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파가 들고 일어선다. 그들이 집권하면 노무현 하고 아삼육이 되서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이수호 후보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 문제의
그 협박정치의 수법을 씁니다.
“노동자냐, 노무현이냐”
이 아주 전투적으로 보이는 구호속에서 순진한 좌파들은 비록 여러
가지로 찜찜함이 있었지만 대안부재의 한계를 느끼면서 중앙파의
좌파연합론에 쏠려 들어갑니다. 물론 이 좌파연합은 이미 중앙파를
경험한 금속의 상당수 좌파 현장활동가들은 지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에서. 이런류의 노골적인 협박정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병호 지도력 시대,
중앙파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민주노총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금속연맹의 중앙파
지도부들의 행태입니다.
연맹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사무처를 지휘해야할 사무처장이라는 사람은
소위 좌파선거연합의 중앙파 대표로 참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맹의 수석은 보직을 팽개치고 직접 민주노총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게다가 연맹의 위원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선대본부장을
맡아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대중조직의 원리는 잊은 지 오랜 옛날이고 이제는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대중조직의 위수사 핵심지도부들이 내놓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고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온 노조의 간부는
한국노총을 보는 것 같다는 실망을 얘기하고도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기풍이 살아 있는 금속연맹이었다면 이것은 완전히
난리가 날 일이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짓거리 입니다.
6. 배신의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1) 두 번째 배신과 은폐
금속노조를 잃고 민주노총마져도 잃어버린 중앙파는 어떻게 할까요?
이 노련한 정치꾼들이 주저앉을 리 없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 째의
화려한 배신을 감행합니다. 산별노조가 생명이요 길이라고 주장했던
중앙파는 정당운동으로 급격히 중심을 이동합니다.
“ 000들, 언제는 산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뭐야
단00이나 심00이나 전부 민주노동당으로 가서 국회의원 하겠다는 것
아냐? 지금 금속노조는 엉망이 되어 가고 연맹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
전면적이지 않지만 어떤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현장간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얘기입니다.
진정한 활동가라고 한다면 산별노조의 카드를 꺼낸 이상 그것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핵심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심00을
비롯하여 중앙파는 다른 길로 빠져나갔습니다. 그것도 금속노조가 불과
3년 여 만에 조직적 자부심과 결속력이 한계에 이르러 가장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야 하는 고난의 길에 들어선 시점에서 발빠르게 몸을 뺀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창당시점에 중앙파의 상당수는 당에 중심을 싣지 않고
있었습니다. 산별노조가 완성되어야 정치세력화도 가능하다고
떠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산별은 위기에 처했는데 자신들은 민주노동당으로
중심을 옮기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에 입성하는 과정과 자리를
잡아나가는 방식입니다.
금속연맹에서 들이댔던 카드 “산별이냐 반산별이냐”는 협박카드는
민주노총선거에서 “노무현이냐 노동자냐”라는 카드로 바뀌었고
민주노동당에서는 “ 민족주의냐 사회주의냐” 혹은 “우파냐
좌파냐”하는 카드로 바뀌었습니다.
소위 우파의 당 장악에 맞선 전면적인 전선을 선언하며 운동내부의
긴장을 최대화하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좌우대립을 이끌 주인으로
자기들을 내 세웁니다.
이제 한동안 그들은 ‘민족주의자로부터 당을 지키자! 사회주의자여
결집하라!’는 구호로 금속운동에서 갈고 닦은 정치력을 새로운 장에서
맘껏 펼칠 것입니다. 역시 대단한 정치력입니다. (사실 중앙파가
사회주의자라고 하면 얼마나 신뢰가 갈까? 의문입니다.)
노동운동의 현장은 바닥으로 내려앉고 산별노조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구조조정은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앙파의 정당운동으로 중심이동은 분명
또 하나의 배신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은폐될 것입니다.
‘산별노조’의 쌍둥이인 ‘정치세력화’가 바로 그들에게 새로운
보약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보약을 심지어 노선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들이 드디어 스스로의 정파를 만들고자 제안한
‘평등회의 건설제안서’에는 이제는 ‘노조의 시대’에서 ‘당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분명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기대감은
분명
정당운동의 위상을 엄청나게 격상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류의
사고방식에서 정당운동을 지속한다면 불과 10년도 안되어 금속연맹의
몰락을 보았듯이 진보정당운동 또한 새로운 장벽에 부딪칠 것입니다.
2)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집착
그렇다면 중앙파는 완전히 노조운동에서 발을 뺀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노조운동을 장악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입니다.
그간 금속노조도 뺏기고 민주노총도 뺏긴 그들은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 거듭나기보다는 더욱 강화된 권력게임을 시작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그들에게는 다행이지만) 두 가지의 무기가 있습니다.
첫 번 째의 무기는 단과 심이라는 주목받는 진보정당의 두 명의 의원,
두 명의 금뺏지입니다.
이제 수많은 관심이 여기에 집중될 것이며 단과 심은 톡톡히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상당수 활동가들을 줄 세우게 될 것이며
여기에 수많은 간부들이 빨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국회에 집중될 수많은 청원과 노동조합운동에
등장할
금뺏지의 영향력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중앙파가
스스로 선언하고 조직하고 있는 ‘평등회의’라는 조직을 통해서 강화될
것입니다. 최근 평등회의를 최대한 조직원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
돌입해 있습니다. 금뺏지와 조직을 적절히 융합시키면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입니다.
두 번 째의 무기는 낡은 것이자 동시에 무원칙한 것입니다.
중앙파는 2004년 하반기 선거를 앞두고 벌써 ‘산별에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는 강력한 논의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답니다.
3기 지도부가 산별을 완성하겠다고 했는데 전환총회방식으로 된 게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없이 “산별노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내년에 전 조직이 산별전환을
붙이자”고 하면서 이를 위해 4기 지도부를 합의해서 추대하자는 식으로
주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동시에 중앙파는 아주 무원칙하게 년 말 선거를 노리고 대공장에 대한
감싸안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박일수 열사 분신과
관련하여 현중을 징계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중앙파 다수는 누구보다도
미온적이고 그것을 넘어서 오히려 현중 집행부와 뒷거래를 하고 있다는
상황들이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또한 K노조, I노조 같은
집행부와도 끝없이 뒷거래를 한다고 합니다. 구체적 사례를 말하는 것은
이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는 현장간부들의 명예를 위해 참지만 언제까지
중앙파들의 권력을 위한 단위노조 집행부에 대한 낚시질이 이어질지
걱정
스럽습니다.
7. 새로운 역사를 위해
1) 한 파벌에게 책임을 씌울수 있나?
충분히 제기될 반론입니다. 모든 문제를 중앙파의 권력욕과 그에
기초한
정치력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구조조정투쟁에서의
실패나
현장상태의 급속한 우경화를 비롯하여 현장파나 국민파의 문제 등을
함께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파의 배신은 노동운동, 혹은 금속운동의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논의하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불가능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따라서 결코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권력을 중심에 두고 금속연맹에서 “산별과 반산별”로 모든
문제를 왜곡했고,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무너진 현장상태에 대한 처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무현이냐 노동자냐”는 식의 협박정치로
권력유지를
꿈꾸고, 이제는 진보정당운동에서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는 식으로
당내정파를 활용할 더욱 확대된 권력게임을 하는 이 숨겨진 중앙파의
망령을 분명히 걷어 내야 합니다.
중앙파는 그간 권력의 중심에서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화려한
정치기술로 현장의 활동가와 간부들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동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상층의 중앙파들에 이런 게임에 의해 동원된 현장의 친 중앙파
성향의 활동가와 간부들을 싸잡아서 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중앙파를
지지하는 많은 현장의 간부들은 단지 상층의 숨은 정치적 의도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며 현장에서는 늘 열심히 활동을 하는 간부들이
다수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이제 현장 간부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 운동내부의 작은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자에겐 중앙파의 권력은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운동이고 문제는 대중입니다.
이렇게 중앙파가 휩쓸고 간 자리에 도대체 어떤 역사적 성과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까?
최대 산별연맹 금속연맹의 몰락, 금속노조의 점증하는 위기,
민주노총의 끝없는 실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현장의 몰락과 그에
대한 어떤 처방도 없이 모든 문제를 운동내부의 권력게임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파의 경우도 일부는 이런 중앙파에 감성적 대립속에서 중앙파에
맞선 권력게임에 말려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파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 현장활동가들은 운동의 기풍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장파의 경우도 매번 중앙파에 활용당하면서
축소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무슨파를 떠나서 이런 잘못된 권력 게임에 놀아나지 않고
극복해야 합니다.
2) 중앙파의 망령을 걷고 진실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앙파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통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해결에서 큰 진전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투명한
눈으로 현실을 보기보다는 중앙파에 의해 덧 씌워진 색안경이 그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가서는 이제야 말로 산별노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그간의 왜곡된 과정을 씻어 내고 중앙파들이 단물만 빼먹고
버린
산별노조의 미완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토론과
대안이
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금속운동의 진정한 복원을 위하여 이제 잘못 설치된 색안경을 제거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냉소주의를 버리고 왜곡된 파벌정치의 망령을 넘어서
열린 논의의 광장을 열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금속운동을 살리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입니다.
- 중앙파의 배신과 금속운동의 몰락
1. 금속연맹의 현실
금속산업연맹은 민주노조운동의 적통을 계승한 조직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서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속연맹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최근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사태에서 보듯이 중심조직을 징계해야만
하고 조직상태는 의무금 걷기도 힘든 상태이고 금속노조라는 산별노조
건설을 했으나 대부분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철연맹이 아니라
양철연맹이라는 참담한 동담도 떠돌고 있습니다. 왜 금속연맹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 이제 제조업 중심의 운동에서 공공중심의 운동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산업이 변하면서 그렇게 된다.” 과연 이런 일반적인 이유로
설명될까요? 여전히 유럽이든 혹은 심지어 미국이든 제조업의 노조들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답은 아닙니다.
“ 구조조정과정에서 깨졌다. 그 패배의 후유증 때문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구조조정투쟁을 한지 몇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몇 년을
보내왔습니다. 패배 이후 어떤 노력이 있었으며 없었다면 왜 그랬는가가
중요합니다.
“ 과거의 임단협 중심의 투쟁을 했고 조합주의 때문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적을 한지 지금 몇 년이 되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극복방안을 만들고 있다면 금속연맹은 결코 양철연맹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품은 조직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또한 구체적인 답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2. 금속연맹의 역사적 논의
한국 노동운동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극악한 노예상태에서 쌓인 대중적 분노가 그 힘이 되어 발생했습니다.
대중적 분노는 현장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해서 구심이 세워지고
조직되면서 비로소 조직된 운동으로 민주노조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노조가 없을 때는 노조건설이나 민주화 추진위원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조건설의 힘이 되었고 노조가 건설된 후에는
집행부로 또는 현장조직으로서 활동을 함으로서 내외적인 도전에 맞서
왔습니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이야 말로 한국노동운동의 힘이자
현장중심적인 특징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장조직들은
전국적 차원에서 의견그룹으로 조직되어 왔으며 금속연맹이야 말로
이러한 운동구조를 가장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조직이 살아 있고 발전하는 이유는 바로 조직내부의 다양한 견해와
견해그룹들의 논쟁, 상호를 견제하고 이끌어 가는 실천들에 있습니다.
이런 원리처럼 금속연맹은 조직 내 견해그룹들의 논의과정이 대중조직의
원리 속에서 구현되면서 건설되고 발전되어 온 역사입니다. 따라서 이런
견해그룹간의 논의는 금속연맹의 역사를 바라보는 창입니다.
1) 금속연맹의 첫번째 역사적 논의 - 연맹의 탄생
민주금속, 자동차연맹, 현대그룹총연합. 누구나 알 듯이 금속연맹은 이
세 개의 조직이 뭉쳐서 탄생하였습니다. 민주금속은 다양한
금속사업장을
포괄한 조직으로서 대산별을 주장했습니다. 자동차연맹은
자동차노조들의
조직으로서 자동차소산별을 주장했습니다. 현총련은
재벌그룹노조조직으로서 한국적 재벌구조에서는 그룹단일노조가 맞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들은 결정적으로 금속연맹의 탄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단 해소되었고 98년 한국 최대의 산별연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2) 두번째 역사적 논의 - 산별노조건설
연맹의 탄생 이후 구조조정을 지나면서 연맹은 확실히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로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조직의 이견은 산별건설을
둘러싸고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중앙파는 연맹의 지도부를 장악하여
산별노조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현장파는 제대로 된 산별을
만들자면서
조직형태변경식의 산별건설에 반대했습니다. 국민파는 기업지부인정을
포함한 조건을 내걸면서 산별노조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우여곡절을 통해 국민파와 중앙파의 기업지부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타협을 이뤄냈고 결국 산별전환결의 대대에서 산별건설이
결정되었습니다. 한편 현장파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의원대회장에서 퇴장하였습니다.
물론 타협에 동의한 국민파 내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현실속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한 반론이 있었고
따라서 국민파가 온전하게 산별전환에 동의하고 참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장파라고 하더라도 일부는 단위노조차원에서 노골적인
산별전환반대를
선동하기도 했으나 일부는 산별전환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구조조정 투쟁의 한복판에서 현장동력을 확실하게
조직하지 못하고 연맹내부의 견해차를 분명하게 매듭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한 금속노조는 겨우 2만8천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어려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지도부도 꾸리기 어려운 상황들과 꼭 이런
식으로 시작해야 하는 반론들이 교차하는 어려운 출발을 한 것입니다.
3) 세번째 논의 - 금속노조의 탄생이후 발생한 혼란과 해결책 모색
구조조정투쟁에서 이렇다할 성공 없이 전반적인 후퇴로 인한
침체분위기가 저변에 흐르는 것이었지만 금속노조의 탄생과 함께 발생한
혼란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현장과 지역에서는 금속노조로 전환한 사업장과 미전환 사업장 사이에
감정적 갈등까지 발생하였고 금속노조와 연맹으로 이중화된 연맹의
조직질서로 인한 혼란, 연맹의 전반적인 지도력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는
연맹의 중앙에서부터 특단의 대책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2001년 연맹의 중앙에서는 정책실 등에서 조직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을 위하여 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실시하기도 하고 현재
나타나는 조직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논의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제출된 것은 우선 산별노조의 탄생을 둘러싸고
‘옥동자’나 혹은 ‘사생아’로 규정하지 말고 금속연맹의 모든
의견그룹들이 공동의 한계로 인해 탄생한 ‘미숙아’로 미완성의
산별노조를 완성하는 것을 공동의 과제로 안고 가야한다는 기본인식을
같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핵심적으로는 당시와 같은 산별노조를 둘러싼 이견대립을 넘어서 제
조직들의 참여를 통해 공동으로 산별완성을 위하여 지도부임기를
단축하고 조기선거를 실시하되 지도부를 합의 추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연맹의 임원 수련회 및 중집수련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2001년10월?)중앙위에서는 최종적으로
이 방안을 결의하기로 안건을 상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안은 완전히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매우
비정상적으로
폐기됩니다.
4. 배신과 은폐의 출발
1) 금강휴게소 회합과 중앙파의 배신
연맹 중앙위원회가 개최되기 전날이었습니다. 연맹의 핵심지도부들
일부와 단위노조 및 지역의 일부 중앙파에 속하는 동지들은
금강휴계소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이 회합에서 중앙파는 기존의
조기선거 및 3기 지도부를 단일 지도부로 추대하는 문제를 완전히
뒤집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초에는 현대차와 기아차 등의 선거를 앞두고 중앙파는 비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현대차에서는 국민파의 실노회가 당선될 것이고
기아차에서는 역시 국민파인 기노회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중앙파는 심각한 연맹의 상태와 대공장 지도부가
국민파가 들어설 것을 예상하고 향후 연맹의 지도부를 일정하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이 과정에서 연맹중앙에서는 문성현 당시
위원장이 국민파의 일원으로 알려진 이00부위원장에게 사실상 차기
연맹위원장 자리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거결과 현대차에서는 중앙파에 가까운 민노투 집행부가
당선되었습니다. 기아차에서는 기노회가 아닌 현장의 힘이
당선되었습니다. 예상은 바뀌었고 중앙파는 이 상황에서 조기선거를
통해
권력을 넘겨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합의사항은 번복됩니다.
하지만 연맹의 임원수련회와 중집회의를 통한 만장일치로 결정한
합의사항을 연맹중앙파지도부들이 스스로 번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은 다름 아닌 현대차 새 집행부였습니다. 당일 연맹
중앙위에서는 현대차 신임집행부중 일부가 노동법개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투쟁을 해야 하는데 굳이 조기선거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조기선거론에 쐬기를 박기 시작했습니다. 연맹 지도부들은 이미
금강휴게소의 배신회의를 통해 결정한 작전대로 현대차 간부들의
반대발언을 허용하면서 결정이 자연스럽게 번복되도록 하였습니다.
만장일치의 결정사항인 만큼 누구보다도 위수사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습니다. 중앙파를 제외한 다른 중집위원들은
상황을 모르고 결정이 갑자기 번복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2) 3기 연맹지도부선거에서 중앙파의 단독출마
조기선거와 통합지도부 구성안은 금속노조의 탄생에 대한 냉정한
비판적 평가에 기초하여 산별완성이라는 과제를 공동의 과제로
합의함으로서 분파적 질서를 통합의 질서로 바꾸려는 강력한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중앙파의 배신은 금속노조 탄생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통해
완전히 3분된 연맹내부의 견해를 새로운 상황에서 일정하게 통합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01년 사업평가를 둘러싸고 논의과정에서 중앙파의 입장은
돌변합니다. 처음에는 산별노조 미완성의 문제를 공동의 한계로
인정하자고 했지만 중앙파는 점점 산별노조 건설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이었다고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논의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조기선거가 폐기되고 난 후 원래의 일정에 따라 지도부 선출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일후보추대 논의는 시작되었지만 이미
중앙파가 배신한 상황에서 성사될 리 없었습니다. 후보추대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중앙파 혼자서 단독 출마하였던 것입니다.
국민파와 현장파는 통합지도부 선출이라는 방침에 근거하여 마지막까지
후보출마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앙파가 추대한 3기지도부에 대하여 국민파와 현장파는 반대표를
던지기로 방침을 굳혔지만 이미 상황은 중앙파의 주도권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단독 출마한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은 출마하지 않은 집단에게는 힘에
겨운 일이었으며 결과는 백순환 - 전재환 - 김호규의 위수사와 오종쇄
부위원장 등 중앙파의 지도부가 찬반투표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순간 금속연맹의 상황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 그래 니들끼리 해 처먹어라”
중앙파를 제외한 그룹들이 가진 분위기는 이것으로 압축됩니다.
결국 중앙파의 배신은 금속노조를 둘러싼 정파적인 논쟁을 수습하는
과정이 아니라 최악의 상태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3) 배신은 은폐되고 범인은 뒤바뀌다.
그러나 이런 중앙파의 배신적 행위는 그 자체로 평가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산별노조’라는 깃발 때문입니다. 산별노조건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노조운동의 목표로 공유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산별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하는 질문 앞에서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곧 바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파는
바로 이런 점에서 산별이라는 화두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연맹권력이라는 두 개의 무기를 들고 상황을 마음껏 유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현장파, 국민파 그놈들은 산별에 반대하는 놈들이다.”
“ 산별전환 결정 사항도 지키지 않는 놈들이다. ”
“ 현장파 꼴통들과 말도 안되는 국민파 놈들이 반대해서 이
모양이다”
바로 이런 논리로 자신의 배신적 행위와 파벌적 행위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졸지에 현장파나 국민파를 분파주의자로 낙인찍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금속운동 내에서 횡횡했으며 지금도 떠도는 중앙파식
메카시즘의 악령입니다.
4) 잘못 처방된 보약은 극약이 됩니다.
중앙파를 중심으로 한 산별운동은 철저히 왜곡된 과정으로서 다른
한편에서 수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킵니다.
첫째로 산별추진 과정은 현장의 상태와 현장의 문제를 배제한 채
‘지도부 낚아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단위노조 집행부가 올라오면 친 중앙파적인 집행부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집행부에 대해서도 산별전환이라는 당위를 앞세워 전환총회를 밀어
붙였습니다. 반대 견해를 가진 대우조선 현민투 출신의 김정곤 집행부
또한 조선분과의 대표자회의에서 강력한 밀어붙이기에 밀려 결국은
산별총회를 붙였습니다.
이런 식의 상층차원의 정치게임으로 진행된 산별전환에의 집착으로
인해
현장상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뤄질 수 없었습니다.
둘째로 한창 진행 중이던 구조조정 투쟁도 ‘산별노조 이후’ 또는
‘산별이 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속노조가 탄생한 이후 금속노조의 구조조정 대응은
어땠는가요? 오리온 전기에서 직권조인 논란과 징계를 비롯하여 두산과
세원과 한진 등등.... 나중에 열사가 탄생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를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후퇴는 계속되고 극단적
상황들이 속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손 놓고 있다가 사람이 죽으면
싸우는 것은 다시 평가되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산별이 되면 해결된다고 했는데 과연 아산과 울산
등의
비정규직 노조는 금속노조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특히 2001년에 이미 연맹의 조직진단을 통해 구조조정에서의
연속된 후퇴로 인한 현장의 분위기가 개별화되고 실리주의적 경향들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의
상황을
바꾸기 위한 대책은 실종되었습니다.
‘산별 만능론’에 빠져 있는 3기 백순환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역시
당장의 전환총회가 중요하지 이런 문제는 관심밖으로 밀려 있었거나
그런
문제도 ‘산별이 되면 해결된다’는 식이었습니다.
‘보약은 극약이 되었습니다’
보약도 잘못 쓰면 극약이 됩니다. 산별노조라는 계급적 단결을 위한
무기는 중앙파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서 그들의 권력유지용
보약은 되었을지 몰라도 금속운동에는 극약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5. 금속연맹의 내리막길
1) 간부와 활동가들의 마음이 연맹에서 떠나다.
연맹의 핵심적인 운영원리는 공적 조직으로서 질서를 갖지만 동시에
현장의 의견과 다양한 견해가 현장조직을 통해 수혈됨으로서 활력을
갖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무너졌습니다.
그 이전에도 파벌간의 대립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의 두번의
역사적인 논의에서 처럼 타협 가능하고 조율 가능한 것이었으며 연맹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중앙파의 배신은 이견그룹간의 열린
논의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중앙파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이 극단적인 반발속에서 연맹의 상당수 활동가와 간부들을
연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였고 철저하게 권력과 파벌의 논리에
기초하여 활동하도록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것입니다.
연맹에 대한 애정이 모두 사라진 다음, 연맹의 회의는 늘 성원걱정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성원이 되지도 않은 중앙위나 중집에 대리사인으로
성원을 채운다고 합니다.
사태파악을 아직도 못하고 모두들 연맹에 등 돌리니 자기천하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까요? 연맹의 중앙에서는 소위 중앙파 지도부의 독단적
운영을 꼬집어 ‘독수리5형제’라는 아주 극단적인 용어까지 나돌았다고
합니다.
2004년에는 사무처 재편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들이 있었고 중앙파의
지도력이 바로 코 앞의 사무처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제는
용감하게도
백순환 위원장이 사무처를 ‘당신들은 직원이다’ 는 식으로 규정하고
회사의 사장처럼 경쟁 논리를 들이대면서 질서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묘소 앞에서....
이게 무슨 기초질서 지키기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는 공장이란
말입니까!
2) 계속되는 추악한 권력 지키기
산별만이 살길이라고 난리를 치던 중앙파가 초기에 금속노조에서
절대적인 지도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금속노조에서 더 이상 지도적인 다수파가 아닙니다. 그들의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렸습니다.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완전히 밀려나는 것보다는 귀퉁이라도
움켜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역시 교활한 그들은 예전에 써먹던
‘통합지도부’ 구성을 떠들면서 결국 3파 연합지도부를 출범시키지만
지금 금속노조위원장은 그들의 뜻에 따를 사람이 아닙니다.
도대체 중앙파는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왜? 불과 몇 년 사이에 지도력이 악화되었는지를
평가라도 해 보는 것일까요? 혹시 지들이 고생할 때 국민파 놈들이
바닥을 훑어서 조직사업만 해 가지고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될 뿐입니다.
금속노조에서 주도권을 뺏긴 중앙파에게 또 다른 계기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민주노총 선거입니다. 중앙파는 갑자기 좌파를 자처하고 나섭니다.
소위 ‘좌파연합’론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파가 들고 일어선다. 그들이 집권하면 노무현 하고 아삼육이 되서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이수호 후보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 문제의
그 협박정치의 수법을 씁니다.
“노동자냐, 노무현이냐”
이 아주 전투적으로 보이는 구호속에서 순진한 좌파들은 비록 여러
가지로 찜찜함이 있었지만 대안부재의 한계를 느끼면서 중앙파의
좌파연합론에 쏠려 들어갑니다. 물론 이 좌파연합은 이미 중앙파를
경험한 금속의 상당수 좌파 현장활동가들은 지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에서. 이런류의 노골적인 협박정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병호 지도력 시대,
중앙파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민주노총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금속연맹의 중앙파
지도부들의 행태입니다.
연맹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사무처를 지휘해야할 사무처장이라는 사람은
소위 좌파선거연합의 중앙파 대표로 참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맹의 수석은 보직을 팽개치고 직접 민주노총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게다가 연맹의 위원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선대본부장을
맡아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대중조직의 원리는 잊은 지 오랜 옛날이고 이제는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대중조직의 위수사 핵심지도부들이 내놓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고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온 노조의 간부는
한국노총을 보는 것 같다는 실망을 얘기하고도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기풍이 살아 있는 금속연맹이었다면 이것은 완전히
난리가 날 일이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짓거리 입니다.
6. 배신의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1) 두 번째 배신과 은폐
금속노조를 잃고 민주노총마져도 잃어버린 중앙파는 어떻게 할까요?
이 노련한 정치꾼들이 주저앉을 리 없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 째의
화려한 배신을 감행합니다. 산별노조가 생명이요 길이라고 주장했던
중앙파는 정당운동으로 급격히 중심을 이동합니다.
“ 000들, 언제는 산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뭐야
단00이나 심00이나 전부 민주노동당으로 가서 국회의원 하겠다는 것
아냐? 지금 금속노조는 엉망이 되어 가고 연맹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
전면적이지 않지만 어떤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현장간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얘기입니다.
진정한 활동가라고 한다면 산별노조의 카드를 꺼낸 이상 그것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핵심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심00을
비롯하여 중앙파는 다른 길로 빠져나갔습니다. 그것도 금속노조가 불과
3년 여 만에 조직적 자부심과 결속력이 한계에 이르러 가장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야 하는 고난의 길에 들어선 시점에서 발빠르게 몸을 뺀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창당시점에 중앙파의 상당수는 당에 중심을 싣지 않고
있었습니다. 산별노조가 완성되어야 정치세력화도 가능하다고
떠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산별은 위기에 처했는데 자신들은 민주노동당으로
중심을 옮기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에 입성하는 과정과 자리를
잡아나가는 방식입니다.
금속연맹에서 들이댔던 카드 “산별이냐 반산별이냐”는 협박카드는
민주노총선거에서 “노무현이냐 노동자냐”라는 카드로 바뀌었고
민주노동당에서는 “ 민족주의냐 사회주의냐” 혹은 “우파냐
좌파냐”하는 카드로 바뀌었습니다.
소위 우파의 당 장악에 맞선 전면적인 전선을 선언하며 운동내부의
긴장을 최대화하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좌우대립을 이끌 주인으로
자기들을 내 세웁니다.
이제 한동안 그들은 ‘민족주의자로부터 당을 지키자! 사회주의자여
결집하라!’는 구호로 금속운동에서 갈고 닦은 정치력을 새로운 장에서
맘껏 펼칠 것입니다. 역시 대단한 정치력입니다. (사실 중앙파가
사회주의자라고 하면 얼마나 신뢰가 갈까? 의문입니다.)
노동운동의 현장은 바닥으로 내려앉고 산별노조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구조조정은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앙파의 정당운동으로 중심이동은 분명
또 하나의 배신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은폐될 것입니다.
‘산별노조’의 쌍둥이인 ‘정치세력화’가 바로 그들에게 새로운
보약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보약을 심지어 노선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들이 드디어 스스로의 정파를 만들고자 제안한
‘평등회의 건설제안서’에는 이제는 ‘노조의 시대’에서 ‘당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분명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기대감은
분명
정당운동의 위상을 엄청나게 격상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류의
사고방식에서 정당운동을 지속한다면 불과 10년도 안되어 금속연맹의
몰락을 보았듯이 진보정당운동 또한 새로운 장벽에 부딪칠 것입니다.
2) 잃어버린 권력에 대한 집착
그렇다면 중앙파는 완전히 노조운동에서 발을 뺀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노조운동을 장악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입니다.
그간 금속노조도 뺏기고 민주노총도 뺏긴 그들은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 거듭나기보다는 더욱 강화된 권력게임을 시작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그들에게는 다행이지만) 두 가지의 무기가 있습니다.
첫 번 째의 무기는 단과 심이라는 주목받는 진보정당의 두 명의 의원,
두 명의 금뺏지입니다.
이제 수많은 관심이 여기에 집중될 것이며 단과 심은 톡톡히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상당수 활동가들을 줄 세우게 될 것이며
여기에 수많은 간부들이 빨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국회에 집중될 수많은 청원과 노동조합운동에
등장할
금뺏지의 영향력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중앙파가
스스로 선언하고 조직하고 있는 ‘평등회의’라는 조직을 통해서 강화될
것입니다. 최근 평등회의를 최대한 조직원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
돌입해 있습니다. 금뺏지와 조직을 적절히 융합시키면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입니다.
두 번 째의 무기는 낡은 것이자 동시에 무원칙한 것입니다.
중앙파는 2004년 하반기 선거를 앞두고 벌써 ‘산별에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는 강력한 논의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답니다.
3기 지도부가 산별을 완성하겠다고 했는데 전환총회방식으로 된 게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없이 “산별노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내년에 전 조직이 산별전환을
붙이자”고 하면서 이를 위해 4기 지도부를 합의해서 추대하자는 식으로
주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동시에 중앙파는 아주 무원칙하게 년 말 선거를 노리고 대공장에 대한
감싸안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박일수 열사 분신과
관련하여 현중을 징계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중앙파 다수는 누구보다도
미온적이고 그것을 넘어서 오히려 현중 집행부와 뒷거래를 하고 있다는
상황들이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또한 K노조, I노조 같은
집행부와도 끝없이 뒷거래를 한다고 합니다. 구체적 사례를 말하는 것은
이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는 현장간부들의 명예를 위해 참지만 언제까지
중앙파들의 권력을 위한 단위노조 집행부에 대한 낚시질이 이어질지
걱정
스럽습니다.
7. 새로운 역사를 위해
1) 한 파벌에게 책임을 씌울수 있나?
충분히 제기될 반론입니다. 모든 문제를 중앙파의 권력욕과 그에
기초한
정치력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구조조정투쟁에서의
실패나
현장상태의 급속한 우경화를 비롯하여 현장파나 국민파의 문제 등을
함께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파의 배신은 노동운동, 혹은 금속운동의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논의하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불가능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따라서 결코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권력을 중심에 두고 금속연맹에서 “산별과 반산별”로 모든
문제를 왜곡했고,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무너진 현장상태에 대한 처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무현이냐 노동자냐”는 식의 협박정치로
권력유지를
꿈꾸고, 이제는 진보정당운동에서 “사회주의냐, 민족주의냐‘는 식으로
당내정파를 활용할 더욱 확대된 권력게임을 하는 이 숨겨진 중앙파의
망령을 분명히 걷어 내야 합니다.
중앙파는 그간 권력의 중심에서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화려한
정치기술로 현장의 활동가와 간부들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동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상층의 중앙파들에 이런 게임에 의해 동원된 현장의 친 중앙파
성향의 활동가와 간부들을 싸잡아서 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중앙파를
지지하는 많은 현장의 간부들은 단지 상층의 숨은 정치적 의도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며 현장에서는 늘 열심히 활동을 하는 간부들이
다수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이제 현장 간부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 운동내부의 작은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자에겐 중앙파의 권력은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운동이고 문제는 대중입니다.
이렇게 중앙파가 휩쓸고 간 자리에 도대체 어떤 역사적 성과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까?
최대 산별연맹 금속연맹의 몰락, 금속노조의 점증하는 위기,
민주노총의 끝없는 실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현장의 몰락과 그에
대한 어떤 처방도 없이 모든 문제를 운동내부의 권력게임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파의 경우도 일부는 이런 중앙파에 감성적 대립속에서 중앙파에
맞선 권력게임에 말려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파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 현장활동가들은 운동의 기풍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장파의 경우도 매번 중앙파에 활용당하면서
축소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무슨파를 떠나서 이런 잘못된 권력 게임에 놀아나지 않고
극복해야 합니다.
2) 중앙파의 망령을 걷고 진실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앙파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통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해결에서 큰 진전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투명한
눈으로 현실을 보기보다는 중앙파에 의해 덧 씌워진 색안경이 그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가서는 이제야 말로 산별노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그간의 왜곡된 과정을 씻어 내고 중앙파들이 단물만 빼먹고
버린
산별노조의 미완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토론과
대안이
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금속운동의 진정한 복원을 위하여 이제 잘못 설치된 색안경을 제거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냉소주의를 버리고 왜곡된 파벌정치의 망령을 넘어서
열린 논의의 광장을 열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금속운동을 살리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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