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 찍고 초라한 여관으로
작성자 스토리
본문
특급호텔 찍고 초라한 여관으로
[결혼 이야기 1] 신혼여행 때의 아픈 마음이 아직도 남아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희우(phwoo1445) 기자
어제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이 결혼 10주년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신 하자는 대로 하겠어요.”
우리 부부는 1995년 1월 8일에 결혼했습니다. 바로 어제가 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 속이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직장 후배가, 포항에서는 학교 후배가 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둘 다 꼭 만나야할 사람들입니다.
저는 잠시 1995년 1월 8일로 돌아갑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신혼여행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신혼여행은 궁색함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예식장에서 경주까지는 친구가 승용차로 태워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숫제 배낭을 매고 다녔습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번갈아 타기도 하고 때로는 먼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친구는 경주 보문단지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는 우리에게 특급호텔을 잡아주었습니다.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편안하게 몸을 눕힐 수 있을 정도의 여관이면 충분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읽었는지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야, 어쩌면 평생 한번이 될지도 모른다. 네가 언제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잠을 자 보겠니?"
친구의 말은 옳았습니다. 제가 특급호텔에서 잠을 자본 건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호텔 방은 우리 부부가 묵기에는 지나치게 컸습니다. 거실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한 잔 또 한 잔. 꽤 마셨다 싶었는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합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밤새 몸을 뒤척거렸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경주 유적지를 구경했습니다. 불국사도 보고 석굴암도 보았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오후에는 강릉행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동해안을 지나고 있습니다. 바다 풍경이 여간 시원한 게 아닙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위에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밤늦게 강릉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잠잘 곳을 골라야합니다. 그런데 호텔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아무 데서나 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고심 끝에 모텔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아내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강릉을 구경했습니다. 경포대며 오죽헌을 돌아보았습니다. 오후에는 속초를 향했습니다. 이제 저도 신혼여행에 이골이 났습니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성큼성큼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여인숙 비슷한 여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있지요, 그때 제 마음이라는 게 더없이 편하더란 겁니다. 꼭 제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날 밤 우리는 정말 맛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방바닥이 절절 끓는 게 온 몸이 다 녹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맛나게 잤냐하면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있더라고요.
그 날 설악산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답니다. 왜냐고요? 진짜 만리장성을 땀흘려 쌓은 건 바로 그 날 밤 여관에서였으니까요.
저는 다시 2005년 1월 8일로 돌아옵니다. 아내의 눈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후배냐, 가족이냐. 저는 어렵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신혼여행 때의 초라함이 지금도 아픔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신혼여행비를 아껴서 전세금에 충당하려 했던 저만의 말못할 부끄러움이 지금도 저를 괴롭히고 있답니다.
지금도 아내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답니다. 신혼여행 때의 궁색함을 제 검소한 성품 탓으로 돌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되니 새록새록 욕심이 생기는 거 있지요. 가족과 비행기도 타보고 싶고 호텔에서 잠도 자보고 싶고 그래요.
그래도 안되지요. 참아야지요. 아파트 중도금을 다 불입할 때까지는 근검, 절약해야 겠지요. 아내도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요.
- 이전글공정위의 두산 출자총액 위반 사전검토 방침을 환영함 05.01.11
- 다음글카,지,노게_임☆월드,카,지,노 10.12.08
댓글목록
레인맨님의 댓글
레인맨 작성일어떤분이 레인맨의 정체를 폭로 했듯이 저는 한동안 소위 노름의 세계에 폭삭 빠져 헤롱댄적이 있지요 호텔의 스위트룸 빌려서...몇날 몇일을 광기의 포카노름 활홀경에 빠진세월들 이글을 보니깐 지난 호텔에서 카드표 날렸던 생각이 떠오르네요 ㅎㅎ 엄튼 노름은 백해무익 하다 하겠습니다 ㅎㅎ
놀믐맨님의 댓글
놀믐맨 작성일헐~정신차려 이칭구야~ 이제 아란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