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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두중 현장조합원님 ...국보법 폐지 뭐가 문제인가요...? 펌 # 1/2
작성자 레忍맨 {펌]
댓글 0건 조회 980회 작성일 2004-12-21

본문


두중노조 어떤분께서는 펌질한 위 펌글을 보고 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립하자!는 취지로 펌질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위의 펌글과 아랫글을 전부 동의 하지 않습니다..위의 펌글 내역과 아래의 펌글 내역은 약간은 주관적인 시각 이다는 것입니다 ..추후 이와 정반대 논리의 글을 펌질을 한후 객관의 시야를 확보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분이 또 마눌 간수 잘하라고 하실런지 ㅎㅎ...네 잘하겠습니다)

-아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자주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립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89년까지 제기되었던 갖가지 반론들을 대상으로 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사상과 변혁론을 제대로 세우는 것은 혁명운동의 도상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실천적 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주사상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은 사상에 대한 고민과정의 깊이를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주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큰 범위에서 보면 사상을 정립하는 다양한 경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일소에 부치거나 도외시 할 성질이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간에 발표되었던 자주사상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보았을 때 이러한 사상정립의 합법칙적 과정으로서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사상투쟁을 빙자하여 자주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된 해석과 매도, 그릇된 이해가 횡행함으로써 사상운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부정적 측면이 큼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책임성과 명확성에 비추어보아 그간의 혼란스러움을 정리하는 하나의 획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독자들의 사상적 다짐과 혁신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989. 11.

차 례

제 1 부
창시시기와 역사적 배경

1. 1930년대 창시설과 1955년 창시설에 대해

현재 지식인들 속에서는 주체사상의 창시시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의견이 있다. 그것은 주체사상이 1930년에 창시되었다고 보는 주장과 1955년에 창시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부 사람들은 주체사상이 당시 북한이 처했던 불리한 상황에서 그 어떤 객관적 요인에 의해서 1955년에 정식으로 제기하면서 창시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주체사상이 1930년에 창시되었다고 하면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가지고 여러가지로 주장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를 그만큼 깊게 하고 있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객관적인 근거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놓고 이러니 저러니 한다면 그것은 즉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시 기에 관한 문제는 이미 독립적 문헌들과 저작들에서 명백히 밝혀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이 창시된 시기에 관해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주석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던 때로부터 1930년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화의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관해  주체사상에 대하여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일성주석님은 고루한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맑스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을 반대하고 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는 투쟁과정에서 주체사상의 진리를 발견하였으며 마침내 1937년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밝혔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노선의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  주체사상연구 , 태백, 1989, Pl76-177. )

본래 하나의 사상은 일조일석에 창시되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이념으로 된 사상이 어느 한시점에서 단번에 완성되어 나올 수 없듯이 혁명의 지도사상은 시대적, 역사적 조건에 기초하고 혁명투쟁 과정을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며 오랜 기간의 투쟁 속에서 내용이 풍부화되고 유일성이 검증됨으로써 유일적인 사상이론 체계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적 이념으로 되는 사상이 어느 해에 창시되었다 하고 단정해버림으로써 문제를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선행한 노동자들의 혁명사상으로서의 맑스주의도 그것이 일조일석에 창시되고 선포된 것은 아니다. 맑스주의는 1840년대에 창시되었다.

19세기 전반기의 프랑스, 독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했고 그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압박을 동반했다. 그래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는 투쟁에 궐기했다. 자본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은 그 앞길을 밝혀주는 혁명사상과 이론을 요청했고 이러한 요구는 맑스와 엥겔스가 노동계급의 계급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반영한 맑스주의를 창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국제노동계급의 첫 지도자였던 맑스와 엥겔스가 처음부터 혁명사상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혁명적 민주주의로부터 과학적 공산주의로, 관념론으로부터 유물론으로 점차 사상전환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사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 전찬 과정이 곧 맑스주의의 창시과정으로 된다.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전환 과정은 라인신문을 거점으로 해서 활동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그들은 관념론을 버리고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을 가지는 데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혁명적 민주주의로부터 과학적 공산주의에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독일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학설을 비롯한 당대의 선진적 사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분석한 데 기초해서 변증법적 및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를 밝히고 잉여가치학설을 내놓았고 자본주의 몰락의 불가피성과 공산주의 승리의 필연성을 밝혔다. 바로 이러한 오랜 기간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맑스주의는 하나의 전일적인 사상이론으로 체계화되었다.

주체사상도 또한 김주석이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에 대한 과학적인 통찰에 기초하고 당대의 세계혁명의 실패와 함께 우리나라 혁명운동의 교훈과 경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창시한 사상이다.

김주석이 주체사상을 창시하게 된 출발점으로 말한다면 두 가지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해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와 다른 하나는 혁명을 누구의 지시나 승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해 자신이 책임지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진리였다.

김주석은 1920년대에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운동의 실태를 깊이 헤아린 데 기초하여 이러한 두 가지 진리를 발견하였다. 김주석은 당시에 민족해방운동을 한다고 하던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하며 혁명투쟁에 불러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고 대중과 이탈되어서 주도권 싸움과 말싸움만 하고 있는 대중을 단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벌싸움으로 분열시키는 그릇된 현상을 헤아려보고 그들과는 다른 길, 민중 속에 들어가 대중에게 의거하는 참다운 혁명의 길을 가르쳤다. 그리고 여기에서 혁명의 주인은 민중이고 그들은 조직동원해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밝혔다. 바로 이것이 주체사상의 출발점의 하나이다.

김주석은 또한 당시의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해서 독립을 이룩해보려고 망상했고, 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당파를 만들어서 국제당의 승인을 받으러 다닌다거나 우리나라의 역사적 조건과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기성이론과 남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려고 하는 데서 심각한 교훈을 찾았다. 그래서 김주석은 혁명은 그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해서 자기가 책임지고 해야하며 혁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이고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밝혔다. 이것이 또한 주체사상의 다른 하나의 출발점이다.

이처럼 김주석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의 과정에서 사상적 진리를 발견하였고 마침내 1930년 6월 카륜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는 17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한 때로부터 1930년 카륜회의가 있었던 시기까지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주체사상이 이 시기에 창시되었다고 해서 주체사상의 모든 체계와 내용, 원칙들이 다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시대를 창조하는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은 오랜 기간의 역사적 기간을 거치고 여러 단계의 혁명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더욱 심화되고 발전되어 나간다. 레닌은 맑스가 서거한 이후에도 온갖 기회주의자들, 수정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맑스주의를 보위했고, 혁명실천의 심화발전과 자연과학의 성과에 기초해서 맑스주의를 더욱 심화발전시켰다.

주체사상은 김주석이 여러 단계의 혁명투쟁과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의 사업을 승리로 영도하는 과정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이를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발전 되었다. 김주석이 장구한 조선혁명의 앞길을 이끌고 온 역사는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독창적인 사상이론 체계로 완성시켜온 역사인 것이다.
1955년 창시설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인 근거가 부족한 입장이다. 1955년으로 말하면 이미 창시된 주체사살에 기초해서 북한에서 전후 복구건설을 진행하고 있던 때이다.

1955년 창시설의 주장자들은 아마도 1955년에 김주석이 발표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철폐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를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이 저서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이 제시된 것은 아니다. 김주석은 이 저작에서 사상사업에서 주체가 서지 못한 현상들에 대해 지적하면서 사상사업에서 주체는 바로 조선혁명이며 따라서 사상사업은 조선혁명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즉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반대함에 관해서, 민족주체의식, 민족자주의식을 확립함에 관해 강조한 것으로 해서 이 저작이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새로운 전환적 계기를 열어 놓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때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1955년으로 보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이다.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1955년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연구의 부족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끌어내려서 주체사상의 역사적 뿌리와 그 정통성을 부정하고, 주체사상의 사상이론적 힘을 왜소화하려는 것으로 객관적이어야 할 연구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개념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5년 12월 김일성이 당 선전선동일꾼들 앞에서 행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라는 연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일성은 주체가 없는 것이 시상사업의 가장 주요한 결함이라고 지적하고, 교조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진 일꾼들이 창조적으로 사업하지 않고 남의 것을 베껴다가 외운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라는 연설이 나타난 시점과 특정대상에 유의하여야 한다. 스탈린 사후 소련 내에서 후르시초프가 강자로 등장하자, 그는 1955년 5월말에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여 티토의 독자노선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유연한 정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소련의 정책변화가 김일성을 불안하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전인영,  철학의 근본문제 2-주체사상의 형성배경과 이론적 체계 -  , 대학신문 , 1988.9.5)

2. 특수한 환경에서의 창시설에 대해

서울대 부교수인 전인영씨는 창시문제와 관련하여 주장을 전개하면서 ≪주체사상은 북한이 처한 환경의 산물로 나타난 변용된 맑스-레닌주의≫라느니 ≪주체사상은 북한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나타난 것≫이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북한자료를 무조건 비판적으로 대하는 것도 극복되어야 하지만, 북한사회의 특수성과 문제점들을 이해함이 없이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주체사상도 북한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나타난 것이며, 아직 명료한 이론적 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북한이 처한 환경의 산물로 나타난 ≪변형된 맑스-레닌주의≫로 볼 수 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과정≫으로서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북한은 양국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자주성을 견지하면서 등거리외교를 수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중·소간에서 딜레마에 처한 북한 1957년 11월 16일의 ≪모스코바 선언≫과 1960년 11월의 ≪모스코바 회의≫에서 채택된 ≪교조주의 및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과 ≪맑스-레닌주의는 각국의 구체적인 여건에 맞게끔 사회주의혁명 및 건설의 일반원칙들을 창조적으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며, 타국공산당들의 정책이나 전술들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강조하면서 북한외 주체적인 입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전인영, 철학의 근본문제 2-주체사상의 형성배경과 이론적 체계 - , 대학신문 , 1988.9.5)] 전인영씨가 특수한 환경설을 극구 주장하는 것은 주체사상이 시대와 변혁운동의 합법칙적 요구, 철학사상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는 보편적 의의를 가지는 철학적 세계관이며 지도이념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른바 특수한 환경설을 주장함으로써 주체사상은 북한에서만 의의를 가지며 또 북한에만 국한되는 사상인 듯한 인상을 유포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특수한 환경이란 북한이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대국의 압력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은 북한이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대국의 가운데 끼어 있고, 또 양대국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이탈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로부터 주체사상을 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인영씨의 이러한 논리전개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타당성이 없는 것이고 현실을 완전히 왜곡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주체사상이 창시되게 된 것은 조선혁명의 현실적 요구를 떠나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단순히 조선혁명 발전의 요구만을 반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혁명 발전의 요구와 인류 철학사상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를 반영해서 창시된 보편적 의의를 가지는 철학이다.

오늘날 세계적 범위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이 활성화되고 있고 세계의 뜻있는 국가지도자들과 정치가들, 학자를 비롯한 각계 민중이 주체사상을 생활과 투쟁의 철학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어느 특정한 국가의 범위에만 국한되는 사상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적 본성을 옹호하고 운명개척을 위한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보편적 의의를 가지는 철학적 세계관이기 때문인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전인영씨가 말하는 특수한 환경에 대해 살펴본다면 진보적 사상의 창시는 그 사상이 나오게 된 나라가 처할 환경과 조건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보적 사상은 시대의 요구와 함에 그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적 여건, 계급적 관계에 기초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진보적 사상이 일정한 나라나 지역의 특수한 환경에 토대해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그러한 사상이 개별적 나라나 지역에 국한된 사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진보적 사상이 일정한 나라나 지역의 특수한 환경에 기초해서 나왔다 하더라도 시대의 혁명발전의 요구와 민중의 요구를 옳게 반영한 사상이라면 보편적 의의를 가지는 지도이념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맑스주의도 당대의 유럽 자본주의 나라들의 혁명실천의 요구를 반영해서 나왔다. 19세기 전반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했고 그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압박을 동반했다. 그래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는 투쟁에 봉기했다.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이 일어났고, 프랑스에선 리용 방직공들의 투쟁이 격렬했었고, 독일에서는 실레지온 방직공들의 봉기가 있었다. 1830, 40년대 유럽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건들은 드디어 노동계급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해서 자기들의 계급적 요구와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노동계급의 투쟁은 그 앞길을 밝혀주는 혁명사상과 이론을 요구했고 이것은 맑스가 엥겔스와 함께 노동계급적 지향과 이해관계를 반영한 맑스주의를 창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맑스주의는 유럽나라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유럽 노동계급의 요구를 반영해 창시된 사상이지만 그 내용의 과학적 진리성으로 해서 전세계 피압박 민중의 지도이념으로 되었던 것이다.

주체사상은 우리나라에 조성된 특수한 환경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세계혁명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해서 창시되었다. 주체사상이 창시된 역사적 환경에 대해 살펴보면 두 가지 문제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당시의 국제적 여건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적 여건이다. 여기에서 국제적 여건이 란 세계적 범위에서 지난날 착취받고 억압받던 근로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 역사적 전환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1930년대 조선의 항일무투시기에는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민중의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계무대에서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난 후 승리한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노동계급의 혁명투쟁과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 민중들의 해방투쟁이 급격히 앙양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이 근로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으며 저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근로민중에 대한 약탈과 폭압을 더욱 강화했고, 그래서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격화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오랫동안 자주성을 유린당해온 근로민중들은 계급적, 민족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이러한 역사적 환경은 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각 나라 노동계급과 근로민중들이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갈 것을 요구했고 바로 이것이 주체사상이 창시되게 된 국제적 환경이었다.

전인영씨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 더 명백히 하고 싶은 것은 주체사상이 창시되게 된 당시 동방 나라들의 혁명은 민족적 해방과 계급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제기되는 이론, 실천적 문제들을 새롭게 해명할 것을 특별히 중요한 요구로 제기했다는 것이다. 국제적 맥락에서 볼 때 당시 동방 나라들에서는 혁명을 분만할 수 있는 민족적 및 계급적 모순이 고도로 첨예화된 지역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동방 나라들은 세계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로 분할되었고 아시아 대륙은 세계 자본주의 열강의 원료원천지, 자본수출지, 잉여상품 판매시장으로, 제국주의의 광대한 후방으로 바뀌게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봉건사회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적지 앓게 싹트고 있던 동방 나라들의 경제가 자기발전의 정상적인 길을 크게 저 지당했다. 동방나라들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압박과 착취의 강화, 아시아 나라들의 사회경제 발전의 억제는 불가피하게 제국주의 열강과 이 지역민중들 사이의 민족적 모순을 첨예화시켰다. 또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동방에 대한 침략의 강화와 아시아 나라들의 식민지, 반식민지화 과정의 촉진은 이 지역에서 계급적 모순도 극도로 첨예화시켰다.

식민지 이권과 세력권을 쟁탈하려는 제국주의 열강들과 독점자본가 집단들 상호간의 모순도 이 지대에서 심하게 충돌되고 있었다. 참으로 이 지역은 혁명을 분만하는 여러가지 모순의 집결처였고, 제국주의 전선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고, 세계 정치투쟁의 결전장이었다. 동방은 식민지 민족문제의 중심지로 되었다. 동방 민중들은 세기적 잠에서 깨어났으며 아시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자유와 독립을 위한 민중들의 혁명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레닌도 동방이 각성하는 시기에 들어섰다면서 동방 민족은 실제로 행동하며 매개 민중마다 전인류의 운명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가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레닌은 식민지 민족해방에 관한 문제를 종주국의 혁명의 승리에 관한 문제와 결부시켜 제기했다. 다시 말해서 레닌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은 식민지 예속국 민중들의 민족해방투쟁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성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상을 제기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동방이 세계적으로 놓고 보아도 여러가지 모순의 집결처이자 세계 정치투쟁의 결전장이었고, 식민지 민족문제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러한 역사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과학적인 사상과 이론을 창시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레닌의 견해를 살펴보면 레닌은 종주국의 노동계급의 혁명투쟁과 결부시켜 설명을 했으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다만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혁명의 후비군으로만 간주했다. 이로부터 레닌은 식민지 나라들에서의 민족적 해방을 종주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할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종주국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곧 식민지 나라 민족들의 해방과 독립을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민족적해방과 독립에 관한 문제도 종주국인 일본 내의 혁명의 승리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서는 벌써 그때에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을 종주국 혁명에서가 아니라 식민지 나라 민중들의 투쟁 자체에서 찾는 독창적인 혁명노선이 제기되어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은 동방 식민지 나라 혁명에서도 새로운 지도 이념의 창시가 성숙된 문제로 제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음으로 주체사상이 창시되게 된 국내적인 구체적 여건에 관해 말한다면 여러가지 중요한 문제를 들 수 있다. 그것은 1920년대 우리나라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근로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화해서 혁명투쟁에 불러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대중과 이탈해서 영도권 싸움과 말공부만 한 사실과 당시 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제가끔 당파를 만들어 가지고 국제당의 승인을 받으려고 다녔고, 우리나라의 역사적 조건과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기성이론과 남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려고 한 사실이다. 김주석은 우리나라 민족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서 나타난 이러한 두 가지 그릇된 편향을 심각하게 분석, 총괄한데 기초하여 ≪혁명의 주인은 근로대중이며, 그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해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와 ≪혁명은 그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해서 자기가 책임지고 해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밝혔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창시를 선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들은 주체사상이 이미 현시대의 혁명실천, 우리나라 혁명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해서 1930년대에 창시된 것이지 결코 소중(蘇中)이라는 양대국 사이에 놓인 특수한 환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인영씨는 물론 다른 학자들도 종종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소련이나 중국의 그 무슨 의견차나 압력과 결부시키고 있는데 그러한 주장은 시대적으로도, 역사적 사실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다.
주체사상이 사대주의나 교조주의를 반대할 것을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단순히 소련이나 중국의 그 무슨 압력이나 반대하고 그 나라들의 경험이나 이론을 반대하기 위해서 제기된 사상인 듯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주체사상은 그 어떤 대국들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단순한 처방이나 정치전략으로부터 나온 사상이 아니라 현시대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의의를 가지는 철학적 세계관이고 지도 이념인 것이다.

3. 개인우상화를 위한 창시설에 대해

새롭고 진보적인 사상이 나오면 그것을 반대하는 사상조류와 반대파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러한 사실은 혁명운동의 과정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요즈음 북한 바로알기운동과 함께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주체사상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이 비판부터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 한사람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 전인영씨라고 할 수 있다. 전인영씨는 주체사상에 관한 논의를 지도의 문제와 결부시켜 주체사상은 개인우상화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데올로기다라는 요지의 주장을 하였다.

전인영씨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진보적인 사상은 그 어떤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서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출현했던 위대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위대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내놓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처럼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위대한 사상을 내놓기 때문에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위대한 학자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그가 고대 이집트 천문학자의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계승하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과 지구가 지구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지동설과 태양중심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전의 반동학자들이 제창했던 지구중심설을 부인한 것이었고 그것으로 해서 코페르니쿠스는 위대한 인간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지동설이나 태양중심설이 코페르니쿠스라는 인간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 레닌이 국제노동계급의 위대한 지도자로 높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그 몰락의 합법칙성을 밝혔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역사적 필연성을 해명했기 때문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0년대 유럽 노동계급의 투쟁발전의 요구와 당시에 이룩된 자연과학의 성과에 기초해서 유물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을 창시하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사상사 발전과 피압박 민중의 계급적 해방, 그리고 역사적 전진운동에 불멸의 업적을 이룩했다. 레닌은 맑스주의를 제국주의 시대의 요구에 알맞게 발전시켜 레닌주의를 내놓음으로써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창립을 선포했었고 역사적 전환의 대시기를 펼쳐놓았다. 맑스나 레닌이 있었기 때문에 맑스와 레닌주의가 창시될 수 있었고 맑스와 레닌이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을 지도했기 때문에 전세계 피압박 민중들이 그들을 향도적 사상이론가로, 혁명의 위대한 스승으로 높이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위대한 사상이 그 어떤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위대한 지도자에 의해 위대한 사상이 창시되게 되며 그로 인해 그러한 사람이 만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지도자로 높이 추대되게 된다는 것을 실증해준다.

개인우상화설에 관하여 살펴보면 그것은 원래 역사적으로 권력과 재물을 탐낸 정치적 사기꾼들에 의해서 조작유포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에 아부해서 자기들의 더러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기꾼들 속에서 군주와 같은 독재자의 몸값을 올려주는 놀음이 벌어지면서부터 개인우상화가 성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인우상화는 원래 그 자체가 바과학적이고 착취사회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독재자들이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어용매문가들을 끌어들이고 자기들에 대한 환상은 퍼뜨리게 했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한때 헤겔은 나폴레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었다. 나폴레옹을 우상화한 나머지 나폴레옹이 예나를 점령하고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세계의 정신이 말에 앉아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헤겔은 또한 18세기 중엽에 프러시아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독일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새기원을 열어 놓은 위인으로 찬양했다. 헤겔은 객관관념론 철학자로서 일련의 긍정적 기여를 한 학자였으나 사회역사관에서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입장에 서 있었고 역사의 반동들을 우상화하는 명수였다.

반동적이고 반민중적이며 무능하고 부패타락한 황제나 군주와 같은 독재자들을 극구 찬미하고 환상을 유포시키는 행위는 다 개인우상화이고 비과학적인 것이다.

역사는 또한 개인우상화 척결이라는 구실 밑에 역사에 커다란 공적을 쌓은 것으로 해서 민중으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권력찬탈을 위해 무모하게 날뛰었던 정치적 사기꾼들의 죄행을 잊지 않고 있다.
진보적 사상을 내놓고 대중을 지도해서 민중 중심의 새사회를 세워놓은 지도자는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 마련이고 민중들이 그러한 사람을 높이 추대하고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민중들이 객관적인 업적에 대한 발로로서 자연스럽게 지도자를 높이 추대하고 따르는 것은 개인우상화로 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공산주의운동 안에서 나타났던 개인우상화설은 노동계급의 지도자에 대한 권위와 인식을 낮게 하여 권력찬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실용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꾸며낸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사상에 대해 살펴보면 그것은 세계 철학사상 발전의 합법칙적 소산이고 현시대 진보적 인류의 지향과 요구를 과학적으로 수렴해서 정립된 인간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다. 맑스-레닌주의가 밝힌 유물변증법적세계관을 전제로 하면서 그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정립된 세계관이 바로 주체사상인 것이다.

주체사상이 창시됨으로써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입장이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새롭게 정립되게 되었고 인간이 자기운명을 올바르게 개척해나갈 수 있는 사상이론적 방도가 마련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지도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은 바로 김주석에 의해 창시되었다. 김주석은 항일무투시기에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그에 기초해서 여러 단계의 혁명을 효과적으로 지도하였고 또한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북한에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를 세움으로 해서 제 3세계와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높이 추대받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들은 주체사상이 그 어떤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서 조작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창시된 과학적인 철학이자 세계관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개인우상화에 관해 살펴보면 그것은 현재 한국에서 성행되는 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70년대에 한국 철학계에서는 엘리트론을 제창하면서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선택된 엘리트로 우상화하면서 그러한 엘리트들이 이 나라에 군정을 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외친 사실들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희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희극이 지금 학계에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종종 전파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보통사람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사람이요, 보통사람의 시대요 하는 말을 잘 따져보면 그것은 그에 아부굴종하기 위해 어용학자들이 만들어낸 교묘한 개인우상화로 대통령감도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보통사람이라는 명칭을 붙이면서 그의 몸값을 올려주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위대한 사상을 창시한 지도자는 그가 이룩한 사상이론적 및 실천적 업적으로 해서 시대가 인정하는 지도자로 스스로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기 마련이다. 전인영씨는 편견을 버려야 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없이 비판부터 하는 옳지 못한 관점을 시급히 극복해야 할 것이다.

4. 사회주의 건설시기 창시설에 대해

요즈음 일부사람들 사이에서는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놓고 주체사상이 1930년대가 아니라 1957년에 창시되었다느니, 중·소 양대국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로 나왔다느니, 또 그 무슨 개인우상화를 위해 제시되었다느니 하는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또한 가지 주목을 돌려야 할 문제는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사회주의 건설시기로 보면서 주체사상이 마치 당시 부족한 노동력,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던 실천적 요구를 반영해서 창시된 듯이 주장을 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왜곡하는 여러 가지 그릇된 시도들의 하나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사연구가 한홍구씨는 1989년 1월호  신동아  별책부록에 실린 좌담기사에서 주체사상이 나을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한다고 하면서 ≪식민지의 반봉건상태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북한의 경우 자본주의적 발전이 대단히 낙후하고 제한되어 있었고 이런 물질적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가기 위해서는 역시 기존의 물질적 자원보다도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사상을 이런 배경과 연결시키는 것이 저들이 말하는 주체사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객관적인 자세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초기 인민민주주의혁명 단계에서는 중국이든 동구라파 국가든 북한이든 모든 공산 국가가 서로 유사성을 갖게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혁명 단계로 넘어가면 그 이전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 정도가 어느정도였느냐 하는데 따라서 각 나라의 물적 토대, 생산력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각 나라마다 민주혁명을 추가해나가는 과정에 노선의 차이가 나오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북한에서 독자성이랄까, 주체사상이 나을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식민지의 반봉건상태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거쳐 사회주의정권이 수립된 북한의 경우, 자본주의적 발전이 대단히 낙후되고 제한되어 있었고 이런 물질적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이런 배경과 연결시키는 것이 저들이 말하는 주체사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객관적인 자새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북한현대사와 북한자료률 어떻게 볼 것인가 ,  신동아 ,1989.1)]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잘 살펴보면 명색이 현대사연구가라는 사람이 사회발전의 주·객관적 조건이 어떻게 성숙되고 발전하는가에 대해서 초보적으로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북한통이라는 그가 실제로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창시된 시기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시기도 구분할 줄 모르는 연구가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그의 사고방식이 속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먼저 그가 말하는 주체사상이 나을 수밖에 없는 배경설에 관해 논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시기에 나온 것도 아니고 또 부족되는 인적 자원을 메꾸기 위해서 창시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이미 1930년대에 창시되었고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북한에서는 민주주의혁명 과업과 사회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했다.
주체사상이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수행의 기초로 되었다는 것은 두 단계의 혁명은 다같이 북한의 당과 근로민중 자체의 힘으로 북한사회 발전의 실정에 맞게, 근로민중의 자주성 실현의 합법칙성에 맞게 독창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것 역시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기본노선과 자립적 경제건설노선을 확고히 세우고 진행해 나간 것이었다.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경제건설노선을 확고히 세우고 사회주의 건설을 전략적 단계의 요구에 맞게 수행해나가는 것이 바로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실정이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1930년대에 창시되었던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사회주의 건설이 북한의 실정에 맞게 독창적으로 수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홍구씨가 주체사상의 창시시기를 사회주의 건설시기와 연관시켜 고찰하려고 한 것은 참으로 무지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흥구씨가 주체사상을 창시하게 된 객관적 조건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대단히 낙후했고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선 부득불 물적 자원보다도 사람들의 힘, 다시 말해서 인적 자원이 필요했다는 문제를 들었는데 그의 이러 한 주장도 역시 옳은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한홍구씨의 주장이라는 것을 놓고 보면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려고 하니 많은 인적 자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주체사상이 나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주체사상이 사람중심의 세계관이고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강조하는 사상이라고 해서 결코 인적 자원을 강조하거나 사람의 힘을 동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본질이나 그 창시문제를 인적 자원의 동원문제나 사람들의 힘을 계발시키는 문제와 결부시켜 논의하는 것은 말 그대로 속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밝힌 철학적 세계관이고 또한 그것은 철학사상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와 현시대의 혁명실천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해서 창시된 과학적인 사상이고 학설이다. 때문에 주체사상은 그 어떤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단순한 관제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그 무슨 대중동원 이데올로기와 같은 이론도 아니다.
주체사상이 사람들의 힘을 발동시키기 위한 요구로부터 창시되었고 또 그에 봉사하는 사상으로 보는 것은 주체사상을 대중동원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며 또 그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한홍구씨의 이러한 주장은 노동계급의 당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활동의 원칙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러한 당을 노동자만의 당이라고 비방중상하는 기회주의자들, 개량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름이 없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보아도 사람의 수가 결코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상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이와 유사한 이론들이 나타났었지만 그것들은 비과학성으로 해서 여지없이 논박되었다.
사회발전에서 갖는 인류의 역할에 관한 문제는 이미 봉건제가 와해되고 자본주의 사회가 수립되는 시기에 사회사상 앞에 제기되던 문제였는데 그때 봉건귀족제도의 옹호자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 사이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부르조아 사상가들은 인구의 밀도가 사회발전의 결정적 조건이라는 것, 인구의 증가가 빠를수록 사회발전도 빨라진다는 것을 주장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경제학자 월리엄 멜더스였는데 그는 인구증가가 물질재부의 기초라고 했다.
물론 인구의 증가나 사람의 수가 사회발전의 속도를 일정 정도 촉진 또는 지연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 역학을 하는 젓은 아니다. 이는 봉건제 사회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도 분업이 보잘것없었으나 자본주의적 산업에서는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들에서 분업이 널리 발전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스탈린이 이론적으로 명백히 밝힌 것이 있는데 그는 자기의 저서에서 ≪물론 인구의 증가가 사회발전에 영향을 주며 사회발전을 용이하게 하거나 혹은 실현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발전의 결정적 요인으로는 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인구가 많거나 적은 것이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서 일정한 영창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들을 둘러봐도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 다 발전된 나라들로 되었거나 인구가 적은 나라들이 다 뒤떨어진 나라로 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고찰해보면 한흥구씨가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전진이 사람들의 힘을 많이 요구했다거나 또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체사상을 내놓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 얼마냐 근거없는 주장이고 오판이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만약 한홍구씨의 주장대로 사회역사 문제들을 고찰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멜더스주의적, 또는 신멜더스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자기운명의 주인이라는 진리를 밝혀주고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서 사람이 견지해야 할 근본관점과 근본입장을 밝힌 사상이지, 결코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람의 육체적 힘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거나 사람의 수적 우세를 강조하는 사상이 아니며 또 그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체 사상에 대한 이해와 그 창시에 대한 견해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과학적이고 왜곡된 주장들에 대해 경각심을 높여야 하고 그러한 경향들과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격파하기 위한 이론전을 광범히 벌여야 한다. 한홍구씨는 주체사상의 본질과 그 창시문제에 대하여 왜곡된 해석을 할 것이 아니라 현대사연구가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현시대의 인류와 철학사상 발전과 필연적 요청에서 창시된 주체사상의 진수와 그 창시가 가지는 시대적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응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5. 국제공산주의운동 발전의 필연적 요구를 반영


주체사상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와 그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현시대의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이다.
오늘날 현시대는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 범위에서 승리하며 제국주의가 종국적으로 멸망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이다. 이 규정에 이어서 나오는 문제는 그렇다면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 가 선행단계와 구별되는 특징들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들을 들 수 있다.
첫째로 현시대에 와서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전례없이 그 규모가 확대되고 주체적인 혁명역량이 훨씬 자라났다. 지난 시기 공산주의운동은 주로 구라파의 일부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과 아시아의 일부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어느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수행되고 있는 범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와는 달리 현시대의 공산주의운동은 큰 나라나 작은 나라, 자본주의적으로 발전한 나라나 뒤떨어진 나라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나 식민지예속 국가나 할 것 없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대륙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오늘날 국제공산주의운동은 그전시기에 비할 바 없이 규모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혁명의 주체적 역량, 특히 지도역량의 성장면에서도 전시기와 현실이 다르다. 전 시기는 아직 매개의 나라들에서 주체적 혁명역량이 오늘날과 같이 그리 장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의 주체적 역량이 장성강화된 조건하에서 세계적 범위로 전개되고 있다.
둘째로 현시대에 와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앞에 나서는 혁명과업들은 전시기에 비할 바 얼이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노동계급에게 혁명을 준비시키던 지난날에는 자본주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이 국제공산주의 앞에 나선 공통적인 과업이었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결과 한 나라의 범위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과업이 선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세계혁명운동의 규모가 커지고 매개 나라가 처한 역사적인 조건, 혁명발전 단계 등이 서로 다른 데로부터 이미 정권을 쟁취한 사회주의 인민 앞에는 사회주의 건설의 과업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또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당들 앞에는 정권쟁취의 과업이 제기되고 있으며, 아직 제국주의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는 식민지민중들 앞에는 혁명 적 민족해방의 과업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지난날에는 이론적 예측의 테두리에서 머물러 있었거나 전혀 예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현시대의 혁명과 건설에서는 새길을 요하는 역사의 일정에 오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바로 이러 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는 지난시기에 제기된 과제 이외의 새롭고 근본적인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가 제기하는 근본요구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는 매개 나라의 혁명가들, 공산주의자들이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울 것을 보편적 요구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발전에 따라 국제당이 해산된 후 각국의 혁명투쟁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은 더욱더 절실한 문제로 남아 있다.
혁명운동이 전세 계 적 규모에서 다양성과 복잡성을 띠면서 벌어지게 되고 많은 나라들에서 맑스-레닌주의를 자기나라들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해서 각계의 혁명노선과 전략전술을 세우고 대중을 혁명투쟁으로 조직동원하는 것이 당연한 과업으로 나서는 지금에 와서는 매개 나라의 투쟁을 그 어떤 중앙이 획일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매개의 나라에서 혁명역량이 자라난 조건에서 그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되었다. 매개의 혁명은 오직 그 나라의 현실을 잘 알고 실제로 그 나라 민중 속에서 뿌리박고 활동하는 그 나라의 당과 변혁운동가들만이 옳게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매개 나라의 당과 변혁운동가들이 자기나라의 혁명을 책임지고 독자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새로운 역사적 조건은 남에 대한 의존심을 버리고 자기나라의 혁명에 대해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질 것을 실질적인 요구로 제기하였다.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주체를 세워야 할 필연적 요구는 지난시기에는 예견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론실천적 문제들이 제기된 사정과도 연관된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규모가 커지고 그 과업이 다양하고 복잡해짐에 따라서 지난시기에는 일반적으로밖에 예측할 수 없었거나 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이 연이어 제기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나서는 새로운 문제들을 비롯해서 현시대의 혁명과 건설이 재기한 복잡한 문제들은 기존 공식에 교조주의 적으로 매달리거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주체를 세워야만이 매개 나라 당과 변혁운동가들이 자기나라의 실정과 자기민중의 지향에 맞는 창조적인 노선과 정책을 세울 수 있으며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로의 전인미답의 길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는 새로운 문제들을 옳게 풀어나갈 수 있다. 또한 주체를 세우는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반대해서 싸우는 식민지 민중들과 신생독립국가 민중들의 반제민족해방운동에서도 중요한 요구로 나서고 있다. 간고한 민족해방투쟁의 역사적 경험은 반제반식민지투쟁에서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할 때에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민족적 독립을 달성한 다음에도 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에 의해서 또다시 독재의 길로 들어설 수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주체를 세우는가, 못 세우는가 하는 것은 현시대에 있어서 혁명과 건설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적 문제이며 우리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인 것이다.



제 2 부
맑스-레닌주의와의 관계



1.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원리를 계승한 사상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원리에 전적으로 맞는 것이며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와 그 필연적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것이다.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원리와 전적으로 맞는다는 것은 주체사상이 맑스 -레닌주의의 필연적 결과로써 발전하였으며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철저히 실현하고 있는 사상이라는 것을 말한다.
주체사상은 그 본성과 사면에 있어서 철저히 노동계급적인 사상이며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원칙과 혁명적 진수를 고수하고 있는 사상이다.
주체사상이 맑스 -레닌주의의 근본원리에 전적으로 맞는다는 것은 또한 맑스-레닌주의를 현시대의 요구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사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사상의 모든 내용과 그 원리들은 맑스 -레닌주의의 혁명적 진수를 고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 원리들을 현시대의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원리에 전적으로 맞는다는 것은 결국 주체사상의 기본으로 되는 모든 원리들이 그 본질과 내용에 있어서 철두철미 맑스-레닌주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그 몇가지 중요한 점을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에서 노동계급성을 지킬 것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의 원리에 전적으로 맞는 사상이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입장을 철저히 고수하여 그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혁명사상이다.
원래 주체사상은 노동계급의 이익과 지향을 적극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 있음으로 해서 나온 사상이다. 이것은 우선 주체사상이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자체 내에 집중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나라의 변혁운동가들이든지간에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나라 혁명과 건설에 대하여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한다. 자기나라 혁명과 건설에 대한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만이 나라의 실정에 맞는 옳은 노선과 정책, 전략전술을 세울 수 있으며 불요불굴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기풍을 남김없이 발양해서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수행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또한 노동계급의 이익을 해치는 온갖 반동적이며 반혁명적인 사상조류들을 반대하며 그것을 성과적으로 이겨낸 사상이라는 점에서도 노동계급성을 철저히 견지할 것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의 원리에 전적으로 맞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사상이 온갖 반동적이며 반혁명적인 사상조류들과 근본적으로 대립되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반동적이며 반혁명적인 사상들을 극복하는 유일한 옳은 길이 밝혀진 혁명사상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가 가르치고 있는 공산주의운동의 원칙에서 직접 흘러나온 것이며 노동계급의 혁명투쟁과 그 승리의 합법칙성에 맞는 것이다.
혁명은 매개 나라의 내부모순에 기초해서 일어나고 혁명의 주인은 그 나라의 당과 민중이며 따라서 혁명승리의 결정적 요인도 그 나라 자체의 주체적인 힘이다. 매개 나라의 혁명에 대해서는 그 어떤 다른 나라들이 처방을 내릴 수 없고 그 주인을 대신해서 다른 나라 사람이 혁명과 건설을 해줄 수도 없다. 물론 매개 나라 혁명은 세계 혁명의 뗄 수 없는 한 고리이며 따라서 세계혁명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인 만큼 국제혁명역량의 지원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부적 요인은 혁명발전에 일정정도의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주체적 역량이 수행하는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혁명의 운명은 오직 그 주체적 역량의 준비정도에 의해서 좌우되려 주체적 역량이 튼튼히 준비되었을 때에는 비록 혁명의 국제적 환경이 불리 할 경우에도 혁명투쟁을 주체적으로 조직 전개해서 불리한 정세를 유리한 정세고 전환시킬 수 있으며 결국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주체사상은 혁명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과 민족적 특수성의 통일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의 원리에 전적으로 맞는 사상이다. 혁명의 일반적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나라의 구체적 조건과 민족적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발전시키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의 원리가 제시하는 중요한 요구의 하나이다. 주체사상은 바로 이 요구를 가장 정확하게 해결한 지도사상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창조적 입장을 철저히 견지할 데 대한 주체사상의 원리는 혁명과 건설에서 좌우기회주의적 편향들을 엄격히 배격하고 맑스 -레닌주의의 일반적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면서 매개 나라의 구체적 조건과 민족적 특성에 맞게 그것을 창조적으로 적용발전시키는 지도적 지침으로 되고 있다.
주체사상은 우선 나라의 구체적 조건과 민족적 특성을 무시하고 맑스-레닌주의의 개별적 명제나 공식을 교조주의적으로 옮겨놓으려는 그러한 경향을 반대하였다. 주체사상은 또한 교조주의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면서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원칙을 거세하려는 수정주의도 철저히 반대하였다. 교조주의나 수정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좀 먹으며 맑스-레닌주의를 혁명실천과 분리시키고 그 생활력을 단전시키는 그릇된 사상조류들이다. 그러므로 혁명과 건설에서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반대하고 맑스-레닌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민족적 특성과 구체적 조건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고 나서는 것이자.
주체사상은 바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하고있다. 따라서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사상을 확고부동한 지도사상으로 삼고 그에 튼튼히 의거할 때만이 수정주의와 교조주의를 성과적으로 극복하고 맑스-레닌주의적 원칙과 민족적 특성을 결부해서 혁명과 건설의 문제들을 옳게 풀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주체사상의 기본을 이루는 모든 원리들은 그 본질과 내용에 있어서 철두철미 맑스-레닌주의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원리에 적으로 맞는 현시대의 맑스-레닌주의의 지도적 지침으로 되는 것이다.



2.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이다. 오직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함으로써만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원칙을 고수하고 현시대의 혁명투쟁의 요구와 자기나라 실정에 맞게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옳게 풀어나갈 수 있다.
주체사창이 혁명과 건설을 확고히 담보하는 맑스 -레닌주의적 지도사상으로 되는 주요내용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체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 체계로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에서 선결적인 문제인 사람들의 사상관점과 사고방식 문제를 가장 옳게 풀어주는 지도사상이라는 데 대하여 살피겠다.
혁명과 건설에서 선결문제는 사람들의 사상관점, 사고방식 문제인데 이 문제를 가장 옳게 풀어주는 지도사상은 바로 주체사상이다. 사람들의 사상관점, 사고방식 문제가 혁명과 건설에서 선결문제로 나서는 것은 혁명과 건설사업이 그 주인인 사람들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성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은 그들의 행동을 좌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과 건설을 잘해나가자면 우선 그 주인인 사람들이 옳은 혁명적 체계를 가지고 투쟁하는 힘있는 존재로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옳은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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