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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단결투쟁 당당하게 현장속으로
두중 현장조합원님 ...국보법 폐지 뭐가 문제인가요...?
작성자 레忍맨
댓글 3건 조회 1,304회 작성일 2004-12-19

본문

최근 열린당의 이철우  의원에 대한 색깔 논쟁과 민노당 내부에서 조차
국보법 폐지문제로 연말연시의 어수선함을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 두산중 필명 현장조합원님이 말씀하신 김정일 기뿜조 운운하신
주체사상은 다른 말로 김일성 주의(Kimism)라고 합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고 합니다.

(좌파는 약 1백여개의 사적소유를 극렬하게 폐지하는  강경파에서부터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좌파등등 ...한국의 민노당은 대강령에 계획경제와 사적소유를
폐지 한다는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들의 대강령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는 민노당  일부세력을 지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은 3대 핵심 즉 당, 수령, 인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주체사상에 대해 백안시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수령론'에 있습니다.
 
주체사상에서 수령은 '뇌수'입니다.
'뇌'가 없으면 인간은 다른 생물과 구분되지 않는 생물일 뿐이라는 관점이죠.
수령이라는 뇌수가 존재하여 당과 인민을 하나로 집결시킨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을 담고 있는 '총서'는 이것 - 수령이 왜 중심에 서야하는가? - 을 설명합니다.
매우 많은 분량을 수령론의 당위성을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할애합니다.

저는 주체사상이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리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주체사상은 정통적인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게도 비난을 받습니다.
주체사상은 결국 김일성의 독재와 김정일로 이어지는 부자세습을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정치경제적 특성을 고려하여 김일성의 장기독재를 인정하고  김정일로 이어지는
권력 이양을 용납하더라도  여전히 비난받을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은 하나의 사상체계로 받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미치광이 광신도 빨갱이라고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통일을 조금이라도 원한다면 상대방이 믿고 의지하는 사상과 대립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이해가 필요하며, 그 이해는 협력을 할 수 있는 수준 정도면 됩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없고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리면 누구와 대화를 합니까요.?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라고 생각하든, 종교라고 생각하든, 독재의 논리라고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북한의 대부분 민중들이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정치인들과  지식먹물등의  식자들의  천박한 행태는 지식의 천박함보다는
지성의 천박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고
말하며 자연인으로써 그들은 사상적 자유를 갖고 있는 듯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누가 볼테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이권의 대립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역겹게 포장하는 정치인들과 식자들 그리고 '민주'와
열사를 팔아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설쳐대는  운동꾼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가운 12월의
바람에 기댈 언덕 하나  없는 우리네 노동자만 불쌍하게 느껴 집니다.

하긴, 우리가 언제는  잘난 정치인들과 각종 운동꾼들에게  뭘 기대했었던가요???
레忍맨 http://3w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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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님의 댓글

새길 작성일

  18놈아 국보법을 왜여기서논해 니마누라 단속이나잘해라

펌님의 댓글

작성일

  펌]진보누리 김지은 수령론의 몰이해(비판글 포함)
글번호 : 20922  올린이 : 현미녹차  등록일 : 2004년 06월 21일 11:51:35
김지은  (2004-06-17 12:52:09, Hit : 285, 추천 : 2)


제목      수령론의 몰이해 (주체사상 학생토론회 발제문)
부제: 이북 민중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김일성 주석
고려대 총학생회장 김지은

1. 수령제를 모르고 이북을 알 수 없다.
민족의 절반을 올바르게 이해하자는 주장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솟아나고 있으며, 학생은 물론이요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심지어는 재벌들이나 정부단체에서도 `이북바로알기`는 하나의 시대적 선풍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볼라치면 예전같은 악의적 왜곡이나 비방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는 않으나, 제한된 정보와 빈약한 연구성과를 나열하거나 겉으로 드러난 몇가지 현상들에 대한 소개에 그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또한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의 잣대 또한 `객관`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이나 `효율`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철학이 그 바탕이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같은 일방적 비난은 줄어들었으나 현황과 전망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가장 첫 번째로 이북사회를 비방하는 또는 왜곡하는 측면인 `수령제 중심의 사회`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북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끌어가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정치집단의 최고정점에 수령이 서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북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도 이것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바로 `수령제`이다.
과연 이북은 봉건 절대왕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 사회적 효율이 극도로 억제되고 있는 사회인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2. 적어도 그들에게는 진심을 다해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다. - 우리에게는 있는가?
우리 국민만큼 `정치`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국민도 드물다. 멀리는 고대와 중세의 절대왕정에서부터 가장 근래로는 군사독재에 이르기까지 이 땅위에 존경받을 만한 정치체제가 성립되었던 기억은 도무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역사적 시점이 현재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상황은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하지 않다.
당연히도 온 국민, 전 민족의 존경과 신뢰, 애정을 받았던 정치적 지도자는 참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에 있어 `정치`라는 단어는 `폭력과 독재`나 `사기와 협잡`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으며, 전국민적 공분의 대상 1호에는 언제나 부패한 정치권이나 정치인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우리의 입장에서 한 정치지도자가 서거한 지 불과 17시간동안만에 수도로 30여만, 전국의 도소재지들에 각각 20여만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어 조의를 표시한 현상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온국민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그 정치지도자의 동상에 하루 220만이 모여 10여 일에 가까운 시간동안 대성통곡을 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집단 히스테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튀어 나왔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있었던 수많은 놀라운 소식들을 김주석에 대한 우리의 색안경을 벗고 상식적으로 대한다면, 그 국민적 추앙만을 놓고 볼 때, 사실 인도의 `간디`나 가깝게는 `김구`선생 정도가 비교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정치가 불안한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김주석의 사망이 반대파나 그를 추종하는 다수 민중의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졌는가 했을 때, 사실은 그 정확한 반대였다. 이북은 3년 동안 흡사 전국이 상가인양 보였고 김주석에 대한 추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있음은 제한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상황으로 보았을 때 사실은 김일성 주석이 진정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김일성 주석에 대한 이북 민중들의 정치적 지지는 우리의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사전이든 사후든 공고한 그 어떤 지반위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전국민이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강압과 조작에 의해 그 존경이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사실 정치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첫 번째로는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도대체 얼마만한 탄압과 조작이 있어야 한 지도자에 대한 2천만명의 한결같은 존경을 50년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만약 김주석에 대한 지지가 그런 조작과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이북에서 정권과 지도자에 반대하는 조직적인 민중행동이 김주석 사전이나 사후에 있었을 법도 한데, 그런 징후는 별로 발견할 수 없다. 완전한 통제사회여서 그렇다는 이야기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행동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서는 역사상 봐온 많은 독재의 경우에 그러하듯이 상상을 초월하는 철권통치와 대량학살이 자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북에서 `킬링필드`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이북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미 중앙정보국 조차도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이북이 싫어서 도망 나온 탈북자들 - 이북이 싫어서 나온 소수의 정치적 의미의 탈북자가 아닌 식량난으로 인해 중국으로 나온 다수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장군님에게 죄송하다"며 울먹인다고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2천만 이북민중 모두가 바보이거나 아니면 실제 김주석의 업적이 2천만 민중을 감동시켰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2천만 이북민중 모두가 정치지도자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할 수 없다는 쪽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인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들은 전국민이 존경할만한 지도자를 가졌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북민중들의 김일성 주석에 대한 이러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바탕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우리의 이러저러한 부정적 경험에 근거해 이북 민중들의 진심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을 잠시라도 중단하고, 이 질문에 진지하게 접근해 보자. 진실은 무엇인가?

3. 그들이 말하는 김주석 1 - 민족독립의 영웅, 사회주의적 근대화의 선구자
좀더 말해 보자. 우리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에 대해 전국민적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총을 들고 일제와 싸웠던 독립군의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처럼 우리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 만약 그런 경력을 가진 이가 정치를 한다면? 남한 지배층의 근원을 이루는 친일파나 지주출신이 아닌 농민출신의 독립군 사령관이 정치계에 나섰다면? 답은 뻔하다. 사실 김구선생에 대한 전국민적 존경은 우연한 어떤 것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이 10년 넘게 멀리 상해가 아닌 백두산 근역에서 진행되었으며, 보천보 전투같은 국내 진공의 경우 일제당시 언론통제하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음은 학계의 공인된 사실이다.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한 남북의 극적대비는 이북 민중들의 김주석에 대한 존경심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만 그친다면 이북의 동포들이 과거의 추억만을 먹고사는 사람이란 말이 되는데 그것만은 아니다. 그럼 그런 김주석이 이북사회주의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 이점 역시도 명약관화하게 밝혀져야지만 50년의 통치를 설명할 수 있다.
해방 후 식민통치로 낙후할 대로 낙후한 조선 땅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경제의 면에서는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일 것이고, 정치적 면에서는 `근대적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수립`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면만 보면 이북에서는 이것을 `이밥에 고깃국먹고 기와집에서 사는` 문제로 이야기한다. 남한의 `잘살아보세` 역시 앞서 말한 이북의 근대화 목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럼 많은 부작용들이 지적되고 있는 남한의 근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북의 근대화 과정을 이해해 보자.
남한의 근대화 과정은 무엇보다 유혈적인 민중착취를 그 바탕에 두고 있었다. 토지개혁은 농업의 근대화를 이루었다기 보다 많은 농민층을 분해해 도시로 유입되게 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이촌향도의 행렬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투입되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함으로써 남한자본의 원시축적의 길을 열었다. 수많은 `전태일과 그 어린 친구들`, `YH의 여공들`, `원풍모방의 여성노동자들`, `원진레이온의 희생자들` 이 그 적나라한 표현이다.
두 번째 남한의 근대화 과정은 철저히 외세종속적이었다. 철강, 조선, 자동차, 중공업 등의 시설들은 당시 설비노후, 이윤율저하, 공해의 심화 등을 이유로 버려지다시피 맡겨진 미국과 서유럽의 설비들이었다. 자본, 기술, 시장 등 값싼 노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산요소들을 외세에 의존한 근대화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들이 철저한 정치적 폭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정보통치, 제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 민중항거에 대한 유혈진압 등으로 이런 왜곡된 근대화에 대한 민중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이에 비해 이북의 경우 농업을 희생시켜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중공업발전을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남한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농업과 경공업을 발전시켜면서 이를 위한 설비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기술로 해결하는 독특한 경제노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농업 기계화를 위해 외제 트랙터를 들여와 손으로 부품을 일일이 깎아서 만든 트랙터가 뒤로만 가더라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북한은 58년 1정보당 3대의 트랙터를 갖춘 농업기계화 국가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미 60년대에 이북의 경제는 남한을 능가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농업의 협동화과정에서 여느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자원성의 원칙에 따라 본인들이 원할 경우에 개인농을 협동농장으로 망라하는 방식을 취했고 공업화의 과정에서 8시간 노동을 비롯한 노동보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고가 유독 잦아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원산의 용광로를 폭파한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일화의 하나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북 민중들은 김주석을 식민지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10여년 동안 동만주의 북풍한설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민족독립의 영웅이며 사회주의적 근대화를 민족자주와 민중중시의 이념에 기초해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불굴의 정치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해방후 미완의 역사청산과정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남한사회의 정치적 낙후성이나 부패성이 이런 첫출발부터 잘못되어서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한번쯤은 다 가져보았으리라. 게다가 그런 정치적 정통성의 부재나 그로 인한 낙후성을 가려줄 구실이 되곤 하던 경제발전도 사실 위에서 본대로 요모조모 따져보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21세기를 맞이하는 오늘 외국자본이나 기업의 작은 움직임에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매일 불안해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이에 비해 이북 민중들은 비록 경제적 어려움을 좀 겪을 지 모르나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갈 결정권을 가진 자주강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망국의 설움에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며 정치적 박해에 시달린 서러운 민족에게, 민중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회주의 자주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는 이북민중의 절실한 염원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또한 민중의 염원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민족자체의 창조적 열정을 발휘하게 하는 김주석의 뛰어난 지도력이 바로 이북 민중들의 김주석에 대한 유다른 애정과 신뢰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4. 그들이 보는 김주석 2 - 인생의 스승, 영원한 벗
식민지 민족해방의 과정에서, 사회주의 근대화의 과정에서 이북민중들 스스로 신화로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일화들은 쌓이고 쌓여 이북민중들의 집단적 가치관의 원형질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이 김일성 주석 개인의 성공담이나 건국신화로만 그친다면은 그것은 누군가 대신 꾸어주는 꿈이나 누구를 동경하는 마음일 뿐이며 자기자신의 신화로 집단전체의 신화로 승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북민중들의 김일성 주석에 대한 흠모와 존경은 그 이상의 것이다. 92년 북송된 이인모 노인의 이야기는 이런 것과 관련해 우리에게 하나의 고려점을 던져주고 있다.
"... 만약 장군님(김주석을 존경하는 이들은 김주석을 이렇게 부르곤 한다)이 나를 조국광복의 성전으로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망국의 비애를 간직한 식민지 청년학생에 불과했던 내가 어떻게 도꾜와 중국, 조선을 넘나들며 조국광복을 위한 성업에 몸을 바칠 수 있었겠는가..."
또 하나, 휴전협정당시 북측대표로 나왔던 한 장성의 기자회견록의 일부는 더욱 깊이있는 통찰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 인간은 침략자의 가혹한 만행을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서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김일성 동지가 높이 추켜든 인간해방, 민족해방의 위대한 리념의 정당성을 생활을 통해 체험한 우리 민중은 가렬한 전쟁 속에서 불굴의 거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렇듯 독립운동의 과정으로 시작해 간고한 사회주의 근대화로의 전진을 향한 길에서 이북민중들은 김주석이 자신들에게 가장 위대한 승리의 고지를 제시했고 그 길로 가는 가장 위력한 방법, 가장 빠른 첩경으로 그들을 안내했으며 그 길에서 예전에 하나의 통치의 대상, 생산의 도구에 불과하던 노동자와 농민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경제의 담당자로 우뚝 세워 불굴의 사상으로 무장한 혁명가로 성장시킨 스승이요, 동지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초된 것이 민중의 요구만이 세상을 변혁할 꿈을 주며, 민중의 힘만이 세상을 바꿀 힘이 될 수 있다는 주체사상이고, 그 사상적 진군의 길에 언제나 자신을 가장 먼저 던짐으로써 민중을 역사의 주인으로 세운 지도자로서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지도자와 민중의 정치조직인 당과 민중전체가 하나로 융화된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구성이라고 말한다. 즉, 지도자가 전체 국가와 사회의 나아갈 길을 민중과 밀접히 결합한 상태에서 목표로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주도적 정치집단이 가장 헌신적으로 그 성공을 위해 앞장서며, 그 과정에서 민중들은 지도자와 공고히 결합된 정치집단의 지도에 따라 열정적으로 나섬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실질적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것을 그들은 수령과 당과 대중이 사회정치적으로 공고히 결합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는 민중을 주인으로 세우며 민중은 지도자를 그 과정의 최선두 지휘자로서 신뢰하는 지도자와 민중간의 유기적 결합은 이런 사회정치적 생명의 전제조건이다. 
이런 독특한 사회적 집단에 대한 해석과 그것이 가져오는 정치적 통합력의 극대화가 이북을 현재로서 몇 년의 경제적 고립과 군사적 압박에도 굴함없이 자신들만의 노선을 지켜온 힘이라는 평가는 이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유례없는 경제적 고난과 군사적 압박 속에서 고립에 가까운 상황을 자신들의 힘으로 별탈없이 타개해온 저력이 사실은 수령제 사회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외부 관측 통들도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그 체제의 정치적 결합의 공고함만은 혀를 내두르며 인정하고 있다. 그 과정상의 난관은 이북 민중들과 지도자 사이의 굳건한 신뢰를 의심케 할만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그들의 신뢰를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는 편이 맞는 말일 것이다.

5. 존경할만 한 지도자를 가진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정권형성 과정에서의 정통성에서나 이후 사회주의 근대화의 과정에서나, 또한 그의 정치적 능력과 업적에서나 인간적 면모에서나 이북 민중들의 가슴에 적어도 김일성 주석의 이름이 강렬하게 새겨져 있음은 무엇으로도 부인하기 어렵다. 김주석은 적어도 이북민중에게 있어서는 민족독립의 영웅이요, 사회주의 근대화의 기수이며, 이 과정에서 가장 민중과 가까이 함께 한 절친한 벗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한사람의 정치지도자가 그가 이룩한 업적에서 뿐만아니라 일생을 통해 전민중의 인생의 스승으로 영원한 동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지도자 개인에게도 무한의 영광이겠지만 그런 지도자를 가진 민중의 입장에서도 뿌듯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김주석에 대한 이북민중들의 신뢰와 존경에는 이러한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제는 지도자와 민중간의 그 인간적 관계의 진실됨에 대해서 유독 `김일성`이라는 이름하나를 이유로 상식에 기초한 판단을 왜곡하는 것은 남북화해를 위해서라도 없어야 한다. 사실 온 국민이 존경할만한 이를 가졌다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이북의 수령제 사회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런 정서와 사고체계에 대한 실사구시적 접근을 우선시 해야 하며 그 과정에 밝혀진 이러저러한 상식에 대해서는 폭넓게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나 더나은 정치 지도자상을 정립하고 그런 지도자를 민중의 힘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노력들은 시급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수령제 사회의 진실에 대해 이제 두려움 없이 다가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일 시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 장기집권은 필히 독재로 이어진다?
오래 된 것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은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과일이나 채소는 오래되면 썩게 되지만 친구나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듯 같은 말도 세상만사의 적용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그럼 정치인의 임기와 관련해서는 어떤가? 우리의 상식은 오래된 정치는 부패하기 마련이고 장기집권은 독재와 동등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장기집권자는 독재자가 되지만 국민의 염원을 반영한 오랜 집권자들은 오히려 그 오랜 집권기간 자체가 국민의 지지를 대변해주는 영광의 선사물과 같은 것이 되며 그런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대개는 국부나 국민적 지도자로 칭해지기 마련이다. 장기집권이 필히 독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민중의 뜻을 거스른 정권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한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굳이 장기집권이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는가? 억지 춘향식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너절한 권력다툼보다는 오히려 안정적 통치의 기반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정치권력에 대한 민중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그것이 지금같은 불신이 아닌 신뢰에 바탕이 된다면 질낮은 정치권들의 나눠먹기식 선거놀음보다는 더 나은 무엇이 될 수도 있다. 

2. 후계자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그렇다고 어떻게 한사람이 천년만년을 이어갈 것인가?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결국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치지도자의 등장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명석한 두뇌와 아버지의 업적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로 일찍부터 후계자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아들에 의한 정권이양이요 결국은 봉건적 세습이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 민주화의 기수는 남편의 뒤를 이은 아내였으며 버마의 아웅산 수지여사는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며 인도의 명 여수상 간디는 초대수상 네루의 딸이었다.
사실 부모의 후광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핸디캡이 되기도 한다. 봉건유제에 대한 정치간부들과 인민들의 반발감이 심한 사회주의사회에서 아들이라는 것이 꼭 장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노동당 정치위원으로 임명하는 것을 김일성 주석은 반대하였다고 한다. 아들이든 딸이든 정치적 품격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이러저러한 말들이 나게 마련이며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권력투쟁으로 휘말리는 경우들도 많지 않은가? 현대사회에서 역시 정치적 신뢰의 기본은 당자의 정치적 품격과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3. `주체형 혁명의 계승` - 3대 혁명 운동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이북 사회주의
무엇이 이북의 인민들로 하여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사회주의 사회의 2세대 지도자로 선택하게 하였는가?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도 존경해 마지 않는 김일성 주석의 민족자주, 민중중시의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위대한 정치이념을 계승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일 터이다. 좀더 단순화하자면 주체사상의 계승발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된 업적으로 주체사상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이북사회의 통치이념으로 공고화한 것을 가장 먼저 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3대혁명 운동 과정을 보자. 보통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공업화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나면 당간부들은 관료주의로 세도를 부리게 되고 인민들 사이에서  풍족한 물질문화 생활에 젖어 어려웠던 시기의 혁명적 정신이 퇴색하게 되면서 생산이 정체되고 정치적 통합력이 떨어져갔던 예들은 비일비재하다. 나중에 이런 과정들이 사회주의 사회의 붕괴로까지 발전했다. 이북의 70년대가 이런 위험을 예고할 수 있는 시기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산량이나 배급량의 많고 적음같은 이기적 물질적 동기에 의해 사회주의가 건설된 것이 아니라 전체사회, 전체 민중의 발전을 바라는 인간의 높은 사상적 지향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이런 것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수록 당간부들이나 민중들이나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나서게 된다는 것을 주체사상의 혁명적 원리로 체계화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적 경제토대가 확립되고 정치제도가 수립되었다 할 지라도 더 높은 수준의 민중의 요구는 낡은 사회의 사상적 낙후성, 기술적 낙후성, 문화적 낙후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더욱 발전해 가게 되고 이를 위한 계속혁명 계속전진이 사회주의 사회를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게 한다는 3대 혁명이론을 내놓았다. 우선은 당 간부들과 인민들 사이의 보수주의, 소극성, 관료주의 등을 타파하는 전국적 운동을 벌임으로서 사상의식상에서의 정체를 타개하였다고 평가되며 여기에 사회주의의 공고한 발전을 위한 물질기술적 토대를 현대화 과학화하는 작업이 더해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화, 음악, 혁명가극 등의 문화운동의 고양이 합쳐져 사회주의 사회의 계속혁신 계속전진이 일어났다고 그들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70년대부터 경제적 정체를 면치 못하고 정치적으로 후퇴해간 중국과 소련에 비해 이북은 권력을 탐하는 당간부를 배척하며 물질적 이기적 동기로 움직이는 민중의 부정적 측면을 억제하고 민중에 대한 당간부들의 헌신성과 민중들의 전체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주력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사상사업의 강화`이다. 이런 것이 수다한 사회주의의 붕괴가 연이었던 때에도 이북만은 그 흐름에서 비껴서 자신들의 독특한 사회주의를 고수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닦아 왔으며 이 최선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있었다고 평해 진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북 민중들 사이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우게 되었다. 

4. 고난의 행군 그후의 북, 그리고 동북아시아 - 김정일 시대의 개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요한 업적들은 사상, 기술, 문화 혁명 즉 3대 혁명으로 이야기되는 주체사상의 노선에 따라 이북사회를 사회주의 단계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단계로 끌어올린 것이 가장 많이 이야기되었지만 근년에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김일성 주석 사후의 이북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왔느냐 하는 것이다. 이전의 문제는 사실 김일성 주석이 아직 살아있을 때여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정확히 밝혀주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었고 김주석 사후 미국의 대북압박과 식량난이라는 외우내환을 맞아 이북의 행보를 예측함에 있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버지만한 카리스마가 없느니 온실의 화초나 다름없는 존재니 하는 구구한 억측들이 많았다. 이런 예측들은 필연코 이북붕괴론과 그 궤를 같이했다.
그러나 김주석 사후 6년이 된 지금에서 이북은 식량난을 어떤 정치적 타협없이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압박에 맞선 자주외교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실력, 군사적 실력의 바탕이 되는 인공위성개발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상의 도약으로 일약 동북아의 작은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은 물론이요 일본과 서유럽 제국들이 앞다투어 이북과의 수교를 희망하는 현실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북은 98년 인공위성의 발사로 최강 군사대국 미국의 위협에 맞서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몇되지 않는 국가로 떠올랐다.  이는 그동안 이북사회주의를 고립압살의 대상으로 보고, 중국을 견제의 대상으로 여기며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화해 끊임없이 자신의 군사적 패권을 확장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켜온 미국의 구도에 대한 큰 충격이었다. 결국 이런 과정은 남북정상회담과 맞물리면서 이북에 대한 미국의 타협, 일본의 인정, 남한의 접근이라는 상호인정과 호혜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창출할 출발을 열어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런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기초에는 남북화해를 바탕에둔 조국통일의 진전이라는 민족적 열망이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이 놓여져 있다.
이 과정에서 서방언론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여준 군부에 대한 확고한 장악, 인민들의 변함없는 지지, 아버지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담대한 기획력과 추진력 등으로 표현되는 정치력 등을 김국방위원장의 성공요인으로 꼽고 있다. 혹자들은 21세기 한반도에는 통일한반도와 동북아 신질서를 주축으로 하는 김정일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서방의 언론들은 매일매일 북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각종 기사를 내놓기에 분주하다.
고난의 행군으로 함께 해온 이북민중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반세기 겨레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할 민족의 지도자로, `미제국주의`의 고립압살 위협을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으로 무력화시킨 국제적 정치가로 인식시키게 되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극심한 자연재해와 식량난, 김주석의 사망이라는 내우외환들을 이북민중들과 함께 공고히 단합해 오히려 `복`으로 바꾸어 놓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이북 민중들의 지지는 매우 공고한 수준의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바탕해 이북민중들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향해 자신감있게 나아가고 있다.

5. 글을 마치며
앞서 밝힌 사회주의의 정체와 붕괴의 외부적 요인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군사적 압박, 경제적 봉쇄, 사상문화적 침투가 손꼽힌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회주의 국가를 그 대상으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세계적 범위에서 이들 서방국가에 의존하던 - 좀더 정확하게는 식민화되어 있던 -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는 이런 서방제국의 무차별적 침략 아래 무참히 짓밟혀 왔다. `빈곤의 세계화`라는 악명으로 불려온 IMF를 필두로 한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은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을 기아선상으로 떨어뜨려 놓았으며, 풍부한 자원부원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인플레와 외채의 천국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중동과 중남미에서 이런 세계화와 결별하고 독자적 노선을 고수해온 나라들의 경우 예외없는 봉쇄와 압박, 그리고 그것으로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직접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실로 지난 20여년 동안 서방을 제외한 전세계 국가들은 기아와 빈곤이 아니면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왔다.
그나마 정치적 이유로 이런 직접적 경제침략이나 전쟁놀음으로부터 제외되었던 동남, 동북아시아 국가들마저도 제국주의 경제의 모순이 폭발한 90년대 후반에는 직접적인 경제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고 국제투기자본의 도박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대신 주어진 것은 제국주의 문화산업의 찌꺼기이거나 말그대로 `모험`에 불과한 벤처산업이라는 것이다. 국적없는 세계화에 자본은 통제불능의 속도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삶의 안정도 풍요로움도 모두 한때의 백일몽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이런 자본의 무한대의 세계화 앞에서 이북사회가 택한 길은 조금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민족의 주체적 결정권이나 민족적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세계화는 미국식의 일체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자립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상황자체는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거의 `고립`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이북의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었다. 이북의 식량난, 경제난을 접한 수다한 소식통들은 그들의 무모함을 조소하기에 바빴다. 결국 약소국 민족의 운명은 `세계화, 일체화`의 횡포 앞에 아무런 방어막 없이 내던져지는 것이거나, `주체성과 민족성`을 주장하며 실제로는 `고립`을 면치 못하고 고사해 가는 것이거나 둘중의 하나인가라는 절망적 물음이 팽배했다.
그러나 인공위성 발사의 1차 충격, 남북 정상회담의 2차 충격, 연이은 북미, 북일간의 접근, 남북관계의 쾌속의 진전 등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하루의 시대적 변화가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뿐이다. 서방의 언론들은 이런 과정을 두고 `김정일의 화려한 국제무대 데뷔`라며 연일 감탄을 연발해 내고 있다. 현실은 이북민중들이 주장한 `주체성과 민족성의 고수`는 위기에 몰린 폐쇄국가의 자기 보호와 위장을 위한 발언이 아니라 서방국가 중심(사실은 미국중심의)의 `일체화, 세계화`가 아닌 나름의 `자기식`, 그들이 말하는 `우리식`의 내외적 발전 모델이 헛된 망상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민중의 생존과 경제를 희생한 채 정치군사적 자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국민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적절히 국제사회와 교류협력해 가는 `자주에 바탕한 호혜평등`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이북사회가 `세계화`된 오늘에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민족 주체적 발전 경로는 과거 식민지 시절의 독립으로부터 자체 민중의 요구와 능력에 바탕한 사회주의적 근대화를 거쳐 독특한 주체성과 민족성이 구현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향해 가고 있다고 이북 민중들은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민족자주, 민중주체의 발전 경로의 고비마다 민중과 공고히 결합된 지도자와 당이라는 하나의 정치적 결합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어디까지가 실체적 진실인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많은 모색과 탐구의 나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에 대한 이북민중의 신뢰는 공고한 것이며 그 힘이 동북아의 작은 사회주의 국가 이북을 위기마다 자신나름의 항로를 따라 난파하지 않고 헤쳐나온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민중들의 신뢰의 바탕에는 민중의 힘을 신뢰하고 그들의 힘을 극대화시킨 독특한 지도방식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에 대한 일방적 매도는 이제 중단되어야 하고 적극적 접근과 철저한 실사구시가 요구된다 하겠다. 메마르고 몰인정하기 짝이 없는 비정한 세계화의 흐름앞에 민족의 갈길은 무엇인가? 우리의 반쪽이 걸어온 길, 그리고 그 경로의 원동력인 수령제에 대한 전반적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북의 군사 철학에 대하여
부시 정부의 북한 위협론을 시작으로 잠시 종결된 듯 했던 미국과 이북의 대 회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NMD 폭풍을 한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이북과 미국의 대회전은 벌써부터 군사 전략가를 비롯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세계가 그 의미 이상으로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내는 것은 겉으로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은 두 나라의 대결 양상 때문이다.
과연 제3세계 나라들이 열광하고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이북의 군사력, 세계 최강 미국에도 주눅들지 않는 이북의 군 사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 기회에 이북의 군 사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미사일이 없었다면..
이북의 군 사상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55년 동안 이북 민중들이 겪어 왔던 고통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호전성으로 덧칠된 이미지나 편견이 아닌 진정한 이북의 군 중시 사상의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이북의 사회주의 건설사는 눈물로도 다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길이었다. 그들의 고난은 그들이 누구를 침략하려 했기때문이 아닌 오로지 사회주의라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미국과 구미 열강의 의사에 반하여)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나 이북에 대한 정보가 극도로 통제되어 남한 사회의 현실상 10년 째 미국에 의해 봉쇄를 당하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을 통해 이북의 처지를 유추해 보자. 이라크는 걸프 전쟁 이후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 의해 경제 봉쇄를 당해 왔다. 그 10년의 기간 동안 동안 이라크에서는 매 달 4500-6000여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갔고. 10년 동안 60-70만명의 5살 미만 어린이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학살 당했다. 거의 모든 품목의 약품 반입 미국에 의해 봉쇄 되었고 부모는 눈 앞에서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악마적 행위는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만들 만일의 하나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명분 아래 이루어 졌다.
10년의 봉쇄를 당한 이라크의 처지가 이럴진데 55년을 봉쇄 상태로 살아온 이북의 민중들이 미군의 폭격에 의해 단 한 채 건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평양 시가지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면서 감수해야 했을 고통과 고난은 어떤 것이겠는가? 이북 민중들에게 자주국방이란 단어는 생존을 뛰어 넘는 그 어떤 절박한 요구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미사일이 없었다면 지난 유고 전쟁에서 미제의 대포밥이 되는 것은 유고가 아닌 한반도였을 겁니다."라는 섬뜻한 말에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이북 인민들의 고난과 희망이 담겨져 있다. 한반도에서 핵참화를 막아내기 위한 담보, 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최소한의 삶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절박한 조건, 그것이 바로 이북 인민들의 가슴 속의 군대인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총대를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시적인 위협속에서 사회주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객관적 현실에서 나오는 이러한 요구로 이북의 군 사상을 다 해설할 수 있는가? 아니, 그것만으로 이북인민들이 군대를 대하는 자세를 모두 다 해설할 수는 없다.
고난의 행군 실록과 식량원조를 위해 이북에 같던 선교사들의 방북 기록은 자식들이여 미래를 위해 싸우라고 말하며 노부모들이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죽음을 택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미래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죽어도 군량 창고를 열지 않는가? 이북의 군 사상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무수한 고통을 감내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남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것이 바로 이남 사회와 이북 사회가 가진 가장 중요한 정신과 사상의 차이이다.
한 군사학자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민족을 이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산에서 혈투를 벌이며 살아오던 "이리"족 중 일부가 산을 내려 "개"가 되었고 일부는 이리족으로 남기를 각오했다. "개"가 된 이들에겐 "이리"로 살기 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로운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의식주가 확보되었다. 미국쇠고기가 듬뿍 들어간 먹이가 주어지며 제네럴 앨랙트릭사의 에어콘이 갖추어진 우리가 주어졌고 미제의 화려한 개목걸이도 주어졌다. 그러나 산에 남아 저항을 계속하는 "이리"족의 잔당들에게는  겹 쌓이는 난관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감도 없어 배고픔을 견뎌야 할때도 있었으며 눈속에서 어깨를 서로 모아 참아야 할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그들에게 "이리"로 남아서 저항을 계속하는데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롭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배가 고파도 제마음대로 살수 있으며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백두산의 광대한 원시림과 광야가 성역으로 되어 자유롭게 날아 다닐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비유처럼 북한은 애초부터 이리와 같은 강진한 자유의사를 가진 국가이며 어떤 역경도 이겨 내고 살아남는다. 투항을 거부하고 끝까지 무장을 놓지 않았던 항일 무장 투쟁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리"족, 이북 사회에서 항일혁명군의 강건한 저항정신은 온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거대한 사상이며 항일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 내었던 군민 일치의 경험은 사회를 운영하는 거대한 운영원리로 되었다. 이북 민중들에게 군대는 이미 스스로의 제도를 지키기 위한 자위력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사상이며 도덕이요 가장 친근한 벗이 되었다. 그래서 이북 민중들은 어려울수록 군에 의지했으며 굶어 죽어도 총대를 놓지 않았다. 이북에서 군대는 이북 인민들의 최소한의 삶과 자유를 지키는 보루이며 동시에 하나의 사상이다. 군대는 인민의 사랑속에 자라며 안경 쓴 자는 군대에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도 군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는 뜨겁기만 하다.
미국의 힘에 의거해 나라를 찾겠다고 해외를 전전하던 자를 초대 대통령으로 모시고 일본 관동군 소좌를 대통령으로 떠 섬겼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남 사회 사상으로 분명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다. 군부란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민중을 학살하는 데에서나 제 역할을 했을 뿐 정작 민족의 자존을 유린하는 외세 앞에서는 한없이 측은하기만 했던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또한 생각할 수 없는 군 사상이다.
뚱뚱하게 살은 쪘으나 개목걸이를 목에 걸쳐 줄에다 묶여있는 "개"와 배는 고프나 자유롭게 다니는 "이리"의 어느쪽이 더 좋은가? 이북의 민중들이 미국과 맞서 싸우면서 우리 민족 전체에 던지는 이 메시지는 일본 교과서로 우롱 당하고 미국의 nmd 계획으로 바보 취급 당하는 이남의 처지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남침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식의 이분법 적인 논리를 떠나 진정한 이북의 군 중시 사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때가 되었다. 그리고 성찰의 결과는 오늘 우리 민족 남밤부가 처한 예속적 현실에 대한 저항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도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위해 55년을 싸워 왔던 이북 민중들에게 무어라 내어놓을 말이 있어야지 않겠는가?

레忍맨 {펌]님의 댓글

레忍맨 {펌] 작성일

  아랫글은 200년 11월경 자유기고자 필명 정진이라는 사람이 쓴글입니다...이글에는 "손석형님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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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자주화를 실현하고 참다운 민주사회를 세우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 바로 한국민족민주운동이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이어 온 한국사회변혁운동은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일소하기 위한 투쟁으로서 지난 기간 적지 않은 난관과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발전의 올바른 궤도를 따라 전진해 오고 있다.

민족민주운동의 핵심역량인 노동자계급이 운동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매김되었으며 일부 부문을 제외하고는 운동의 대중화가 실현되어 나가고 있고 대중의 정치의식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00년 한해만 보더라도 총선시민연대의 활동, 세 차례의 민중대회와 5월 총파업, 나날이 고양되고 있는 여러 갈래의 반미자주화투쟁 등 각계 민중의 투쟁이 꾸준히 힘있게 전개되었다.

특히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이남의 민족민주운동과 통일운동에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의 현실은 동유럽 사회주의의 좌절과 이북의 일시적인 경제적 난관으로 인해 ≪한국의 운동권이 지리멸렬되고 있다≫고 주장하던 일부 ≪운동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 운동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실증해 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운동진영 일각에서 사회의 자주화를 실현하고 참다운 민주주의적 변혁을 이룩해야 할 한국민족민주운동의 당면한 기본과제를 외면하고 사회주의를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함으로써 운동발전에 적지 않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변혁운동가들이 민족과 민중을 위해 올바른 길로 매진하기를 바라는 충정으로부터 운동진영 일각에서 사회주의를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몇 가지 의견을 밝히려고 한다.



1. 일부 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함으로써 한국사회변혁운동에 끼치고 있는 부정적 영향



고대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중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류는 어제도 오늘도 자유, 평등, 풍요를 꿈꾸며 그것을 이상으로 간주해 오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인류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단 없이 투쟁해 왔으며 지금도 역시 투쟁하고 있다.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역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긴 것이 한때 ≪유럽을 떠도는 유령≫으로 불리기도 했던 마르크스주의였으며 그것을 현실로 전환시키려 했던 것이 동유럽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모색과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 절차와 방법에서는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자간의 모순이 사회의 기본모순, 주되는 모순이었던 유럽의 자본주의 나라들은 자본주의 단계로부터 사회주의 단계로 이행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나라들에서는 각기 다른 단계를 거쳐 사회주의체제를 수립했다.

1953년 7월 26일 카스트로가 이끈 100여명이 청년들이 몬카다병영을 습격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쿠바혁명은 상당한 기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전개했으며 바티스타독재정권을 전복하고 정권을 세운 다음에도 계속해서 민주주의혁명과제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쿠바민중은 미국의 전면적인 경제봉쇄에 맞서 마침내 사회주의노선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북에서도 해방 후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이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제를 수행하다가 1955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계기로 사회주의혁명노선(일명 55년 4월 테제라고도 한다 - 필자)을 선포하고 그 실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염원이고 이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실현방도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을 수 있고 특히 해당 사회의 구체적 현실과 민중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사회의 경위에는 어떠한가.

이에 관한 한 우리는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엄밀히 직시해야 한다.

우리 민중은 아직 주권자로서의 응분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미국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에 싸구려로 팔려나가고 있으며 수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무더기로 도산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미국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우리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기 군대에 대한 통수권마저 갖지 못한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언어와 미풍양속은 미국, 일본 등 서구 자본주의의 저질퇴폐문화가 제한 없이 유입됨으로써 퇴색, 변질되다 못해 이제는 사회전체가 양풍왜색으로 완전히 도배된 상태이다.

실로 정치도, 경제도, 군사도, 문화도 철두철미 미국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이처럼 그릇된 현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민중은 투쟁에 떨쳐나서고 있으며 그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민족민주운동이다. 이로부터 한국민족민주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참다운 민주사회를 세우는 것을 근본과제로 제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운동가들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한국사회변혁운동의 근본과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고의적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민족민주운동의 현 주소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려도 없이 당장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오늘 이남 민족민주운동과 통일운동의 발전에 적지 않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변혁운동에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중들을 조직동원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를 현 시기 민족민주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자는 주장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 외에는 한국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할 수 없게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사회변혁운동은 그 기본과제로부터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된다.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적 변혁을 이룩하기 위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이며 양심적인 민족자본가와 종교인 등 실로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그 실현에 이해관계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사회변혁운동이다. 이로부터 그 동력이 최대화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족자주권의 확립과 민주주의적 변혁을 반대하는 세력은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내용해석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근에는 집권자들까지도 ≪자주≫를 내놓고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자주를 최우선순위에 내세운 6.15공동선언이 나왔는가 하면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이라는 유엔총회 공동결의안까지 채택되고 있다.

현실투쟁을 살펴볼 때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경실련과 같은 단체들은 주로 중산층 또는 사회중간층을 대변하는 단체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근 이들 단체들은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소파(SOFA)개정문제, 노근리양민학살사건, 매향리문제, 한강독극방류 및 춘천, 인천 폐유방류사건 등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을 위한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섬으로써 반미자주화투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반 사실은 자주화투쟁이 여타의 투쟁들에 비해 그 민중적 지반이 넓고 사회계급적 기초가 광범위하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한편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그 투쟁대상을 최소화한다.

주체적인 변혁운동이론에 따르면 민족의 자주권 확립과 민주주의적 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서 투쟁대상은 주한미군을 핵심으로 하는 외세와 그에 야합하고 있는 반동적인 관료집단 그리고 매판자본가와 매판지주계급이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등 민족적 자주권 확립과 사회의 민주주의적 변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대다수 민중들을 제외한 극소수 사대매국세력만이 극복해야 할 투쟁대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변혁운동의 동력은 최대화하고 투쟁대상은 최소화하게 한다는 여기에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근본과제로 하는 우리 운동의 과학성과 정당성이 있고 그 승리의 필연성이 있다.

그런데 만일 사회주의를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는 경위에는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 보자.

이미 알고 있다시피 사회주의혁명은 착취 받는 기층민중을 착취와 압박에서 완전히 해방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혁명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어떤 형태,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계급으로서의 착취계급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이로부터 사회주의혁명의 동력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도시빈민, 근로인텔리들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투쟁대상, 극복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민족적 양심을 가진 자본가도, 도시와 농촌의 소자산가들도 모두 타도대상으로 되고 만다.

더구나 군 통수권이 미국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미국의 지배와 간섭 아래 놓여 있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세계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이며 과거 냉전시기부터 반공세력의 선두주자를 자처해 온 미국이 과연 우리더러 어서 사회주의혁명을 하라고 팔짱끼고 앉아서 구경만 하겠는지 의문이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도시빈민들만의 힘으로 강대한 투쟁대상인 미국침략세력과 사대매국적인 관료집단, 매판자본가와 지주 세력, 도시와 농촌의 소자산계급까지 모두 청산해 낼 수 있겠는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느 모로 따져봐도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를 민족민주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벌이자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궤변이며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비현실적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 실현≫은 오늘 한국 민중에게 있어서 당면투쟁과제로 제기될 수 없는 구호이다.

게다가 동유럽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 이후 한국민중들 속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다.

해방직후 김일성주석은 이북에서 일제의 악선전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북민중들의 인식이 극도로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무리하게 서둘러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은 1945년 10월 3일 평양노농정치학교 학생들 앞에서 한 강의에서 당시 ≪소비에트≫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민주주의혁명을 추진해 미국식 ≪민주주의≫도 아니고 소련식 소비에트사회주의도 아닌 조선식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며 민주주의적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당면과제로 제시해 압도적인 지지찬동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변혁운동의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한다는 것이 도대체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만약 현 시점에서 변혁운동의 당면과제로 사회주의혁명을 제기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그 뒤를 따라오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날의 실천적 경험을 보더라도 사회주의혁명을 하자는 주장에 동조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89년 11월 12일에 결성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하 ≪사노맹≫)은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조직≫, ≪정치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 사회적으로 소수의 독점재벌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조직≫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당시 ≪사노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백태웅은 잡지 ≪말≫1991년 10월호에 기고한 ≪사노맹의 21세기 사회주의구상≫이라는 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회주의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며 나날이 사회주의운동의 영향력은 확대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실제상황은 어떠했던가. 절대다수의 운동가들과 민중들은 ≪사노맹≫에 대해 무시하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태웅의 주장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사회주의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되었던가. 서글프게도 ≪사노맹≫은 1992년 4월을 기점으로 조직적으로 완전히 와해붕괴되고 말았다.

변혁운동은 반변혁세력의 탄압에 의해 소멸되는 법이 없다. 일시적으로는 반변혁세력의 파쇼적 탄압으로 다 소멸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들불처럼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이 변혁운동이다. 그러나 어떤 운동도 광범위한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에는 3년이 아니라 1년 또는 한달, 심지어 하루아침에도 소멸돼버릴 수 있다.

백태웅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노맹≫대열에 합류했다면 ≪사노맹≫은 어째서 3년이라는 단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는가. ≪사노맹≫이 당시 반공이데올로기의 폭압 속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밝힌 것만큼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겠지만 광범위한 민중들의 지지를 모아내지 못해 붕괴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노맹≫의 사례에서 우리는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성격과 근본과제를 무시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해 나설 때 각계층 민중들을 광범위하게 조직동원할 수 없게 되고 민중들에게 실망감만을 안겨주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사회주의를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족민주운동에 미치고 있는 부정적 영향은 둘째로, 반변혁세력에 비해 아직은 미약한 변혁운동역량을 분열,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지금 민족민주운동진영 안에는 사회주의혁명을 하자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일부 노동운동가들을 비롯해서 일정정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부분은 노동자들로서 이들은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자주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진보적인 사회라는 것만 보면서 미국침략세력과 그에 추종하는 사대매국세력을 먼저 척결하지 않으면 사회주의혁명을 한 걸음도 전진시킬 수 없다는 엄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혁명 제창자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혁명을 당면과제로 제기하자는 주장은 전체 변혁운동대오를 분열시킬 뿐 아니라 매개 운동단체 내부에서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그 한 실례로써 최근 민주노총 내부의 의견대립을 들 수 있다.

지난 9월 18일 민주노총은 근 1년간의 진지한 논의를 거쳐 작성된 ≪노동운동발전전략검토초안≫이라는 것을 공개했다. 이것은 민주노총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0여 년간의 노동운동을 분석평가하고 변화하는 세계정세, 한국노사관계를 분석한 데 기초해서 새로운 노동운동방향을 제시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초안에서는 기존 자본주의체제와 국가사회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사회를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임금, 고용, 경영, 정책참가, 사회복지 등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개선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측을 비롯한 민주노총내의 다른 일각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으면서 ≪사회주의를 이념적 지향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제시한 ≪풍요로운 평등사회≫와 그 실현을 위한 과정 및 방도로서 제시된 ≪경영참가≫, ≪정책참가≫ 등의 내용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한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적 발상≫에 대해 비판하면서 ≪사회주의를 이념적 지향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나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나 다 같이 한국사회변혁운동의 기본과제와 성격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그릇된 견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또다시 의견상이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진보적이고 정당한 제안이라고 찬동하면서 현 집행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면서 대오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불순한 의도마저 감지되고 있다. 극히 좌경적인 언행을 앞세워 자파세력의 ≪변혁성≫을 과시하면서 헤게모니 쟁탈을 시도하는 것은 파쟁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런 편향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기본역량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주화와 민주주의적 변혁을 지향하고 그것을 근본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부 인사들이 한사코 사회주의 구호를 들고 나옴으로써 아직은 건실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분열, 약화시키고 있는데 그런 폐단은 주로 창당준비과정과 창당직후시기에 많이 나타났고 현재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 창당준비과정에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손석형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민주노동당은 이념적 측면에서 사회주의적이고 변혁적인 노선을 분명히 포함시켜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적 입장이 확고하고 사회주의이념이 명백한 당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 등 사회주의적인 주장들을 공공연하게 고집했다.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당의 진로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민주노동당은 정강을 밝힌 주요 문서들에 ≪노동자의 해방을 목표로 했던 사회주의이념과 전통을 계승한다≫는 문장을 비롯해 사회주의적인 주장들을 일부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상당수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자주화, 민주화 운동의 견지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창당준비 당시에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기대와 관심을 갖고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사업에 합류했었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이 사회주의적 주장을 강변하고 그에 맞게 당을 구성해야 한다고 고집함으로써 자주화, 민주화의 의지를 갖고 합류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창당전야에 대거 떨어져나가 결국 당이 초기의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역량으로 조직되었고 당의 대중적 지반도 협소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위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주의를 당면투쟁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변혁운동역량을 분열, 약화시키는 심각한 부정적 작용을 한다.

어떤 변혁운동에서나 출발적 단계,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는 변혁운동역량이 반변혁세력에 비해 열세에 놓이게 된다. 한국사회변혁운동에서도 현 단계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세력과 자주화, 민주화 운동을 지향하는 세력을 다 합쳐도 반변혁세력에 비해 볼 때 아직은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아직은 미약한 변혁운동역량을 사회주의혁명을 하자는 세력과 자주화, 민주화 운동을 하자는 세력으로 갈라놓는다면 결국 이도저도 다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즉, 현 시점에서 사회주의혁명을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는 것은 반변혁세력에 비해 아직 미약하며 성장단계에 있는 변혁운동역량을 분열, 약화시키는 것으로서 운동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를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족민주운동에 미치고 있는 부정적 영향은 셋째로, 반변혁세력에게 변혁운동을 탄압할 빌미를 제공해줌으로써 변혁운동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에서 사회의 자주화를 실현하고 민주주의적 변혁을 이룩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성스러운 과업이다. 그것은 자주화, 민주화 운동이 현 단계에서 광범위한 근로민중의 근본지향과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 이남당국자들도 남북사이의 화해분위기에 떠밀려 공개적으로는 자주, 민주에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당국이 제정한 현행법에도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자주화, 민주화 운동을 함부로 막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자주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려는 민중들의 정당한 요구를 내놓고 탄압하며 억누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광범위한 민중에게 그 당위성이 인식되어 있지 못하며 사회주의적인 주장은 미국의 식민통치를 떠받들고 있는 한국의 수구기득권세력과 집권세력에 의해 유지, 온존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불법≫으로 매도당할 수밖에 없고 정권의 탄압마저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만에 하나 우리 운동진영이 사회주의 실현을 당면투쟁과제로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면 수구기득권세력들은 때를 만난 망나니들처럼 쏟아져 나와 반공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북한과 연계된 체제전복세력, 사회주의제창세력을 일망타진한다≫는 허울좋은 구실 밑에 한국판 매카시선풍을 또다시 일으키고 자주화, 민주화 운동세력 즉, 변혁운동세력 전반에 대한 광기 어린 탄압을 마음내키는 대로 자행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시기 우리는 그런 경우를 한두 번만 당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애국민중들이, 얼마나 많은 우수한 변혁운동가들이 폭압무도한 탄압광풍에 휘말려 아까운 목숨을 잃거나 그도 아니면 육체적으로 혹은 사상정신적으로 불구자의 신세가 되어야 했던가.

≪사노맹≫사건 하나만으로도 500여 명이 구속되었고 형량을 다 합치면 2천년이 넘는 가혹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밖에도 ≪해방노동자통일전선≫(1991년), ≪전국학생정치연합≫(1994년), ≪8백만 노동자와 함께 하는 노동청년회≫(1996년), ≪서울대학생연대≫(1997년), ≪국제사회주의자그룹≫(2000년) 등등 수많은 사회주의운동단체들이 탄압을 받아 와해됐고 그 과정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혁운동가들이 운동대열에서 제거되거나 희생당하고 말았다.

물론 어느 단계에서든지 변혁운동은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수구반동세력을 타파해야 하는 심각한 투쟁이므로 그 과정에 반변혁세력과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하며 어느 정도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변혁운동발전의 합법칙성에 맞지도 않는 사회주의혁명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불필요한 희생까지 자초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노맹≫관계자 80여명이 지난 8월 ≪사노맹관련자동우회≫를 결성하고 또다시 ≪조직재건≫을 시도하고 있으니 이들의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민족과 민중을 향한 진실로 뜨겁고 순결한 사랑과 열정에서가 아니라 관성적으로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외치는 사회주의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이고 이제 또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만족하겠느냐고.

모든 변혁운동가들은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비록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의 자주화를 실현하고 민주주의적 변혁을 이룩하기 위한 현 단계 이남의 민족민주운동에 엄청난 장애물로 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2. 운동진영 일부에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오게 되는 근원



운동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변하고 나오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마디로 반변혁세력의 집요하고 교활한 사상모략책동과 일부 운동가들 속에 역병처럼 만연되어 있는 공명주의 또는 패권주의, 기성이론에 대한 교조적 태도에 그 원인이 있다.

편의상 한가지씩 나누어 고찰해 보기로 한다.

그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선 미국과 집권세력을 비롯한 반변혁세력의 사상모략책동에 한 원인이 있다.

한국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성장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세력은 미국과 그에 아부굴종하는 친미사대매국집단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민족민주운동의 성장은 곧 저들의 명줄을 조이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된다. 이로부터 그들은 언제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해 왔다.

그러나 과거 폭압일변도의 강경탄압은 오히려 변혁에 대한 민중의 지향과 투쟁의욕을 더욱 고취시키고 민족민주운동의 정당성을 보다 뚜렷이 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러자 식민통치세력은 군부독재통치를 ≪민간≫통치로 바꾸는 교활한 기만술책을 부렸으며 이 과정에 민족민주운동세력을 고립, 약화시키려는 저들의 의도를 일정정도 실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날로 각성되어 가는 민중들의 진출을 원천봉쇄할 수 없었고 또다시 민중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통치세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운동진영을 내부로부터 분열, 와해시키기 위한 사상모략책동을 파쇼적 탄압에 배합해 적용하는 것이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핵심은 ≪프락치활용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82년 12월 20일 내무부훈령 제764호 ≪좌경의식화정보망 운영규칙≫에 따라 식민통치세력은 대학가, 종교계, 노동계, 민주인사들 속에 ≪진보적 인물≫로 위장된 프락치들을 은밀히 잠입시키고 계통적으로 내부분열와해책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또한 노태우의 6공 시절에도 기존의 프락치망을 활용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FR(오륜)작전≫을 고안하고 재야에 184명, 학원에 289명, 노동계에 368명 등 도합841명의 ≪특수요원≫들을 ≪운동권≫으로 위장시켜 활용해 왔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수법을 보면 저들의 끄나풀로 하여금 한국사회현실과 민중들의 지향에 잘 맞지도 않는 사회주의혁명 등 과격한 구호를 제창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어 그 주위에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한 다음 그들을 한 그물에 건져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양심선언사건≫, ≪치사사건≫, ≪양심선언번복사건≫, ≪자살기도사건≫ 등 프락치관련 사건들이 연발했고 김영환, 김쾌상, 백태웅 같은 인물들이 그 대표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오늘 당장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주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단순히 운동가들 상호간의 견해차이로부터 비롯된 것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민족민주운동이 발전할수록 반변혁세력의 탄압수법도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운동진영의 일부에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은 또한 일부 운동가들의 공명주의, 패권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 운동의 현 단계가 사회주의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공명주의,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들고 나옴으로써 사람들을 자기 주위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지나온 민족민주운동사를 돌아볼 때 운동의 대하 속에는 언제나 거품과 같은 공명주의자, 패권주의자들이 존재해 왔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일제강점 초기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 안에서는 ≪화요≫파요, ≪엠엘≫파요 하는 각종 파쟁꾼들이 공명과 출세에 혈안이 되어 자파세력확장과 패권확보를 추구하면서 양보 없는 파벌싸움을 벌였다. 1930년 만주지역에서 벌어졌던 5.30폭동은 파쟁꾼들이 불순한 목적 밑에 좌경모험주의적인 투쟁을 인위적으로 조직하고 수많은 군중을 무모한 투쟁으로 내몰아 일제군경의 총칼에 무참히 학살당하게 만듦으로써 항일독립투쟁발전에 막심한 피해를 안겼던 사건으로 파벌주의의 해독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많은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것처럼 항일투쟁 전기간 그리고 8.15해방 이후에도 올바른 사회역사발전을 위해 좌경모험주의자들과 파벌분자들의 책동을 극복하는 데 많은 힘을 돌렸다고 한다.

우리 한국사회변혁운동의 어제와 오늘의 실태를 조금만 헤쳐보더라도 5.30폭동과 유사한 양상의 투쟁들이 적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운동진영의 일부에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은 다음으로 우리 민중들이 반세기 이상에 걸치는 투쟁역사에서 창조하고 체계화한 주체적인 변혁운동이론을 체득하지 못하고 기성이론에 대한 교조적 입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일부 운동가들이 강변했던(혹은 지금도 강변하고 있는) ≪당장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저에는 대체로 지난 시대의 이론,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대부분은 자본의 철폐와 계급해방에 관한 주장들로 일관되어 있다.

물론 운동이념과 방도, 전략전술을 모색하는 과정에 다른 나라의 경험과 이론을 통해 우리 운동의 해법을 찾는 연구도 필요하며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롯해 지난 시대의 변혁이론에는 식민지적이며 전근대적인 요소,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우리 나라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라들에서의 변혁운동에 관한 이론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이론을 절대화하면서 한국사회변혁운동에 교조적으로 적용해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불합리하고 이론적 타당성이 없는 견해이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미 이론실천적으로 그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지 오래이다.

단적인 예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변혁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노자간의 모순이 첨예화되어 그것은 마침내 사회혁명으로 폭발한다고 했는데 그같은 이론을 가지고는 생산력이 지난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오늘의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어째서 변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어디까지나 지난 시대에,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나라들의 환경에서 필요했고 합당했던 이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대의 발전은 사상이론의 발전을 동반한다. 오늘의 현실은 오늘의 잣대로 보아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의 잣대가 주어져 있다.

우리 민족, 민중은 장구한 기간 시련에 찬 변혁운동발전과정에 자신의 고유한 운동경험을 얻었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고 체계화한 지극히 정당한 변혁운동이론을 갖게 됐다. 우리 민족, 민중 스스로 창조한 주체적인 이론에 의거해야지 남의 경험과 이론을 여과 없이 교조적으로 우리 운동 토양에 직수입하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도 있고 운동의 단계를 뛰어넘는 주장과 같은 좌경적인 언사들도 나오게 되며 그런 경우 운동발전에 커다란 저해를 주게 된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또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초혁명적인 구호를 남발하던 사람들의 이면을 투시해보는 과정에 신념의 부재를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이에 대한 ≪민≫지 박세길 편집부장의 지적을 겸허하게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민≫ 2000년 10월호에 실린 ≪세상을 바꾸는 열쇠는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사노맹≫은 맥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사노맹≫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노맹≫은 ≪적의 탄압에 의해 무너졌다기보다는 내부로부터 허물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사노맹≫ 맹원들이 수감되었을 때 흔히 보여준 모습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처럼 자기의 신념체계에 대해 완고(?)했던 ≪사노맹≫ 맹원들이었건만 감옥 안에서의 모습은 혼란에 빠진 채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이다.≫

교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보니 맹목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의 구호를 들고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토록 요란스러워 보이던 ≪신념≫이란 폭압세력의 회유와 고문 앞에서 사상누각처럼 너무도 맥없이, 너무도 쉽사리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사노맹≫의 백태웅이 보인 비참한 행태도 그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3. 한국사회변혁운동의 현 발전단계에 맞지 않는 좌편향의 극복



민족민주운동발전에 적지 않은 장애로 되고 있는 좌편향을 극복할 방도는 무엇인가.

우선 운동가들이 우리 민족, 민중의 사회변혁운동과정에 창조된 주체의 변혁운동 이론과 전략전술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

우리 민족, 민중이 장구한 민족해방투쟁역사 속에서 창조한 주체의 변혁운동 이론과 전략전술은 실천투쟁과정을 통해 그 과학성과 정당성, 생활력이 유감없이 검증된 현 시대의 유일무이한 변혁운동이론이며 전략전술이다. 주체의 변혁운동 이론과 전략전술로 무장해야 반변혁세력의 사상모략책동을 타파해나갈 수 있고 교조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공명출세주의적, 패권주의적 행태도 일소할 수 있다. 이로부터 주체의 변혁운동 이론과 전략전술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 변혁운동가들 앞에 제기되는 선결적 과제로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주적인 변혁사상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민중들은 자주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같은 요구를 포함해 오랜 변혁운동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우리 민족, 민중 자신의 지향과 의지를 일반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바로 자주적인 변혁사상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다시피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민족의 자주권확립과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각계 민중의 참다운 삶을 위해 투쟁할 것을 주장하는 민족, 민중의 지도이념이다.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개량이 아니라 변혁적 투쟁으로 외세의 예속과 전근대성을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각계각층 민중들의 제반 요구를 철저히 실현해나갈 것과 민족자주와 범민족적 대단결에 기초한 통일조국을 건설할 것을 지향하는 애국애족애민의 사상이다.

또한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민중의 자주성 실현에 이해관계를 갖는 모든 계급, 계층, 정당, 단체들과의 연대연합을 실현하며 세계적 범위에서 민족적 독립과 평화를 수호하자는 자주, 평화의 사상이다.

우리 운동의 현 단계에서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근본적인 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정당한 지도적 지침이다.

지난 2000년 2월 미국의 센 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노동자공개포럼≫에서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주의적 권리를 주장한 것을 놓고 보더라도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국제적인 흐름에도 모순되지 않는다.

자주적인 변혁사상은 민족민주운동과정에 우리 민중 자신에 의해 정립되고 민중의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장구한 민족해방투쟁 역사에서 축적되고 전수된 위대한 사상과 과학적 노선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 박세길 ≪민≫편집장의 지적을 우리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우리 변혁운동가들은 오로지 자주적인 변혁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삼을 때 한국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높은 책임을 다할 수 있으며 변혁운동을 올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 운동가들은 선행이론에 대한 교조주의를 반대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선행이론에 대한 교조적 태도는 정상적이던 사람도 머저리로 만들며 변혁운동을 실패와 좌절로 몰아넣게 한다. 지난 시기 일부 운동가들이 교조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쿠바혁명의 이론과 경험, 중공의 모순론과 그 실천경험, 남미의 종속이론,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등 많은 변혁이론과 경험들이 수입되었지만 어느 하나도 우리 운동에 자그마한 기여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변혁운동에 그 어떤 고정불변한 공식이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변혁실천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우리 민중의 이익과 이 땅의 풍토에 맞게 탐구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공식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의 좋은 경험도 배워야 하겠지만 다른 나라의 경험이 우리 나라의 실정과 우리 혁명의 이익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을 씹어보고 ≪위≫에서 받으면 삼키고 받지 않으면 뱉어버려야 한다≫는 명언은 오늘의 이남 민족민주운동실천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선행이론을 교조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진정한 운동가라고 볼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은 사이비운동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발은 이 땅에 붙이고 있으면서 머리는 영국이나 독일 혹은 러시아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운동을 우리 실정에 맞게 벌여나갈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운동가들은 선행이론에 대한 교조적 사고방식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철두철미 한국의 토양에 발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사회변혁운동이 탈선과 실패를 모르고 승리적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다.

다음으로 민족민주운동진영에 적지 않게 만연돼 있는 분파주의,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참다운 단결을 이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운동은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치유해야 하는 거창하고 복잡한 대업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론실천적 문제들에 직면할 수 있으며 운동가들의 준비정도가 서로 다른 여건에서 이견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견상이를 원칙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운동가들 상호간의 반목과 질시를 부채질하고 전체 운동발전에 적지 않은 장해를 조성하게 된다는 데 있다. 사회주의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식민통치세력이 풀어놓은 끄나풀들처럼 근본적으로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변혁운동 이론과 전략전술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설익은 발상을 주창하거나 유식을 뽐내며 겉멋을 부리는 것을 운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없지 않다. 이들은 방법상 견해와 주장이 다를 뿐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근본입장에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들과 사사건건 대립해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결속시켜야 변혁운동이 발전한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이다. 또 정말로 몰라서 덤비는 사람들의 경위에도 바른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주의주장의 차이를 가지고 서로 반목질시하면서 자기소모적인 불화와 분쟁에 끌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와 단합을 우선시하고 그 다음에 투쟁할 것은 투쟁하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이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우리 민족, 민중의 운명을 두고 나름대로 고심하는 사람들간의 의리문제이기도 하다. 서로의 견해와 주장에서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워놓은 투쟁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먼저 힘을 쏟고 그 과정에서 의견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이 참다운 운동가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반변혁세력의 사상모략책동에 경각성을 높이고 그것을 짓부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한 운동은 그를 저지하려는 반변혁세력의 악랄한 도전에 상시적으로 위협받게 된다. 나날이 성장해 가는 각계 민중의 변혁운동에 제동을 걸고 압살하려드는 이들 세력의 선두에는 언제나 정보기관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은 프락치활용전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의 운동권은 과거처럼 소수 지하운동가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프락치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 다만 분파간 갈등이 프락치의 활동범위를 넓혀주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평한 어느 일간지의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변혁운동가들은 민족민주운동을 탄압말살하려는 정보기관의 눈초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번뜩이고 있으며 운동대오에 자그마한 틈새라도 보이면 프락치공작과 같은 간교한 모략책동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일부 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민족민주운동의 당면투쟁과제로 제기하는 것과 같은 오류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변혁사상의 기치 아래 굳게 단결할 때 한국사회변혁운동 즉, 민족민주운동이라는 열차는 반드시 승리의 종착역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