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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단결투쟁 당당하게 현장속으로
대기업 이사들을 교육하며
작성자 새길벗
댓글 1건 조회 2,362회 작성일 2004-12-16

본문

머 하루 늦었지만 홈피 개편 추카! 느낌이 조으네요.
홈피 관리 관계자분들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지회조합원게시판을 별도로 만들것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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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대기업 이사들을 두 달 동안 교육한 적이 있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그런 교육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사들에게 주로 이야기한 내용은, 우리 사회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해 매우 비정상적인 혐오감을 갖고 있다는 것과 대기업 이사들도 결국 노동자일수밖에 없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성과가 없었다면 대기업 이사들이 누리는 혜택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대기업 이사들이라고 해도 노동자들과 한 편에서 부당한 권력과 자본, 그리고 지나친 고소득을 얻고 있는 불로소득 계층과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사회 구도를 이해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유익하다, 뭐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저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이사들과 입씨름을 벌인 적도 많았지만, 다행히 제 교육에 대한 이사들의 평가는 예상 밖으로 호의적이었습니다. 휴게 시간에 자기들끼리 “맞아. 이런 교육을 진작 좀 받았어야 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 교육을 마련하고 진행한 실무진들은 한껏 고무되어 그 대기업 부장급 이상 간부 전원에 대한 1년간의 교육 계획을 세웠고, 저에게는 교육일정을 미리 확보해달라는 통보까지 일찌감치 했으나, 제 강의를 들었다는 고위 임원 몇 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그 교육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저와 계속 연락하면서 그 교육을 준비한 실무진들도 대부분 부장급이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업장에서 저를 대하는 대기업 이사들의 언행은 매우 예의 바른 편이었고, 강사에 대한 예우는 융숭했으며, 강의를 한번 하고 받는 강사료는 작은 노동조합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받는 금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노동조합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있는지 설명하는 이사들의 표현은 매우 합리적이었고 진지했습니다. 만 명 가까운 직원을 통솔하는 공장장이 “오늘도 노동조합 간부들을 달래고 오느라고 교육에 조금 늦었다”고 자상하게 설명하는 얼굴에는 애사심이 넘쳐흘렀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이사들은 노동조합 간부들보다 교양과 학벌 수준이 훨씬 더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도 노동조합 간부들은 귀담아 듣지 않으니, 하 소장님 같은 분이 노동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말씀해주셔야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 사회의 대립 구도나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대기업 이사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두 달 동안 만나면서 들었다면, 경영진은 회사를 사랑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인데 반해, 노동조합 간부들은 그 회사에서 온갖 분탕질을 해대는 불학무식한 사람들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은 역사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의 이 같은 갈등이 한국 역사 발전 과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부의 재벌 편들기 정책이 결국 20여년 뒤에 불과 수십억 불을 빌리지 않으면 나라 경제 전체가 도산하는 치욕스러운 실패를 가져온 것과 노무현 정부의 대기업 편들기 정책이 장차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비교하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면, 저 역시 매우 설득력 있고 진지한 기업 경영자들의 주장에 경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소리를 듣는 386 정치인들이 빈번하게 경제인과 재계 인사들과 회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런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들이 이미 충분한 개혁성을 담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때 운동권이었을 때 가졌던 세계관이 더욱 객관적이고 합리적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정의의 편에 서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도 "남북전쟁에 승리하는 데에 유익하다면, 노예 해방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인의 한계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정도껏 해야 합니다.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개혁 조치들이 뒷걸음치는 방향은 항상 일정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유익한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법률안과 규제개혁위원회의 방안들이 기업의 요구가 수용되는 방향으로 마련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박정희 정부가 재벌 편들기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요즘과 같은 노무현 정부의 대기업 편들기 정책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역사가 판단한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요즘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항상 곰곰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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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을 결정하는 막강한 사람들에게 / 하종강
진보누리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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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도대체 '노동조합'을 아느냐?>

항공사의 조종사들이 파업을 했다. 언론이 "연봉 1억원이 넘는 사람들이 파업을 한다"며 매도하자 조종사들은 파업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언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항공대란에 따른 국민들의 불편"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강조했다. 그런 언론을 통해서는 조종사들이 왜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한번쯤 반성해보자. '조종사씩이나 되는 인간들'이 왜 자신들의 임금을 스스로 묶어놓고 파업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아는가... 극소수의 매체를 제외하고 언론은 노동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노동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서 수십년을 살았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조종사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조종사로 취업하면서 '내가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모여 파업하게 될 것이다'라고 미리 짐작했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조종사가 되면서 '내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것이다'라고 일찍이 짐작했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파일롯트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하다못해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나의 인생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라고 짐작했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없었다.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 파업까지 하게 될 사람들이 수십 년 세월 동안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대학에 가끔 강연을 하러 가서 강연회를 준비한 학생들에게 그 취지를 물으면 학생들은 이렇게 답하곤 한다. "대학생들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노동문제를 이해해야지요." 참 기특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자신들도 곧 노동자가 될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는 기색은 없다. 곧 노동자가 되거나 노동자의 아내 또는 남편이 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노동문제'를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 건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아량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지금까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합원의 거의 대부분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연구소 노동조합이나, 전체 조합원이 모두 토익 900점 이상인 노동조합들도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경찰이나 판사들도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을 그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어느 방송국 노동조합의 그 '잘나빠진' 아나운서, 피디, 기자들이 임금 한 푼 받지 않으면서 2백6십5일 동안이나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제도권 교육과 언론의 잘못>

우리의 역사가 '시민혁명'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일제 식민지'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말았다는 점 외에, 우리가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제도권 교육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서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과 메스컴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권력과 자본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국민들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권력'과 부정하게 재산을 끌어모은 '자본'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도저히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다.

권력과 자본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그동안 '분단'이라는 상황을 철저히 이용했다. "철도나 발전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서 전국의 철도와 전기가 마비되었을 때 북한에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국민들의 위협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다른 나라처럼 보장할 수는 없다고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은 '반노동조합 정서'를 조장하는 그 음모의 시스템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찌들어 살아왔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노동문제를 올바른 관점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속아왔다는 것, 따라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정서나 주장은 치밀하게 훈련된 어리석음의 결과라는 것, 우리의 고민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시켜보자.

<파업 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33조는 '노동3권'이라고 불리는 조항이다. 노동자들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세 가지의 권리를 신성한 권리로서 보장받고 있다. 물론 그 권리는 헌법 이전에 노동자에게 보장된 자연법적·태생적·천부적 권리이다. 그 중 핵심은 단연 단체행동권이다. 즉, 파업할 수 있는 권리이다.

노동3권은 이른바 '통일적 권리'로서 그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나머지 두 가지의 권리도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노동3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런 표현이 제한된 지식과 부족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자본가와 관료들에게는 노동3권을 마치 "각각 따로 나눌 수 있는 세 가지의 권리"로 오해하게 만들어 "단결권과 교섭권은 보장하되 행동권은 보장하지 않는다" 따위의 헛소리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업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한다. 서울시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서울시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TV 뉴스시간에 나와서 "왜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하느냐? 왜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느냐? 집단이기주의다."라고 매도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는가...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당연하다고 이해한다. TGV 초고속 열차 안에 콩나물 시루처럼 갇혀있으면서도 파업하는 철도 노동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온 도시에 쓰레기가 넘치고 냄새가 진동을 해도 파업하는 환경미화원들을 탓하지 않는다. 프랑스 시민들의 그러한 정서를 홍세화 씨는 그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똘레랑스'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했다. 프랑스뿐이 아니다. 영국, 독일,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유럽의 선진국들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궁금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빌려서 보면 된다. 권위 있는 왕립발레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시골구석에서 면접시험을 치르러 올라온 아버지와 아들에게 "파업 잘 끝내십시오."라고 격려하는 장면... 그것이 바로 영국판 '똘레랑스'이다.

<노동기본권을 법률로 보장하는 이유>

권력과 자본이 노동조합을 그토록 혐오하면서도 어째서 세계의 모든 국가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 헌법으로 노동기본권을 규정하고 각종 특별법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보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세의 인류역사가 200년 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을 검증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란 사회의 발전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되는 그야말로 "집단이기주의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불학무식한" 조직이라면 그 권리를 법률로서 보장할 리가 없다.

노동자들의 활동이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동자들의 지식과 교양과 인격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된 억압구조가 노동자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고대사회 '해방 노예'의 관점이 옳았고, 중세사회 '해방 농노'의 관점이 옳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의 관점이 바로 역사의 진행 방향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가지는 계급적 성격은 한 마디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지라도 사회 전체를 유익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계급은 그러한 특권을 가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자본가가 자신과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노력은 사회 전체를 해롭게 하고 역사를 후퇴시킨다. 신문을 장식하는 대형 사건들은 대부분 권력과 자본의 이기적 이익을 위한 노력의 결과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파업의 목적이 오로지 "내 일자리를 지키겠다"거나 "한 푼 더 받겠다"는 '집단이기주의'였다고 해도, 결국은 그 노력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노동조합이 사회 개혁을 위한 이타적 목표들을 추구하는 바에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이 세상은 소수의 특권을 누리는 세력들만의 이해가 무자비하게 관철되는 심각한 불평등구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노동조합은 자신들이 소속돼있는 사회의 불평등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가장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회의 특권세력이 노동조합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 '악의 축'들에게 노동조합은 가장 확실한 '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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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노동조합을 아느냐? / 하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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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조합원만을 위한 게시판을 강력 제안하신데 대해 먼저 감사드리며, 다각적인 검토를 해보았으나 현재의 문제가 되는 지점도 있고해서 계속 고민중입니다. 제안과 더불어 좋은 방안이 있다면 멜로 보내주시면 더욱 고민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