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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임금제도의 구조
1. 임금제도의 이중적 구조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교환은 인간의 지각에 대해 처음에는 서로 다른 상품의 구매 및 판매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구매자는 일정액의 화폐를 주고 판매자는 화폐와는 다른 어떤 물품을 준다. 법률적 의식은 이 경우 기껏해야 소재적 차이를 인식할 뿐이다. 이 차이는 법적으로 동등한 다음과 같은 정식들로 표현된다.
“네가 주니까 나도 준다. 네가 하니까 나도 준다. 네가 주니까 나도 한다. 네가 하니까 나도 한다.”(Do ut des, do ut facias, facio ut des, und facio ut facias)
임금노동을 만들어낸 인위적인 제도, 임금제도의 구조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앞서 이 제도 속에는 두 가지 부류의 상품소유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한 바 있다. “자본”을 가진 사람, 즉 자본가와 “임금노동”을 가진 사람, 즉 임노동자가 바로 그것이다. 임금제도란 바로 이 두 가지 상품소유자들이 각자의 상품을 교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교환구조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 노동 = 임금 v + 잉여가치 m )
교환관계의 내용은 간단하다. 임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얼핏보면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이 교환관계는 그러나 보통의 교환관계와 구별되는 두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임금문제를 이해해 나가는데는 이 차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이 교환관계는 거래과정이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분리된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의 상품 교환관계는 구매와 판매, 즉 거래행위가 한번으로 동시에 이루어진다. 상품을 주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즉시 그에 상응하는 가치 혹은 또 다른 상품이 건네지는 것이다. 한쪽에서 상품을 건네받기만 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그런 경우는 강도나 절도, 혹은 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우리가 대개 외상이라고 부르는 경우에도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일정한 채무증서가 건네지거나 혹은 적어도 외상장부(간이채무증서라고 할 수 있다)에라도 기록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노동력의 교환관계에서는 일단 임금이 먼저 결정되고 나서 그 다음에 그 대가로 노동이 이루어진다. 이 두 과정은 따로따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분리된 두 과정인 것이다. 회사에 처음 취직하는 노동자가 취직하기 전에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그 회사에서 자신이 얼마의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이다. 이처럼 임금이 먼저 결정되고 나서야 그 다음에 노동자는 출근을 해서 일을 한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임금의 결정과 노동의 수행은 이처럼 분리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취직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들은 해마다 정해진 임금협상기간에 임금을 협상한다. 통상 우리가 “임금투쟁”(혹은 줄여서 임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임금협상이 진행되어 일단 임금이 결정되고 나면 이 임금은 그 다음 협상기간까지의 임금으로 적용된다. 다시 임금이 결정되는 법은 없다. 다음 협상기간까지는 일상적인 노동이 계속 이루어질 뿐이다. 임금이 먼저 결정되고 그 다음 노동의 수행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임금의 결정과 그 대가로 이루어지는 노동의 수행은 따로 따로 진행되는 두 개의 과정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의 독특한 성질에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계약을 맺고 나서도 이 상품의 사용가치가 현실적으로 구매자의 손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성질도 포함되어 있다. 노동력의 가치가 다른 어떤 상품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유통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노동력의 생산에 일정한 사회적 노동이 지출되었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 사용가치는 그 뒤에 이루어지는 힘의 발현(바로 노동의 수행을 의미한다 - 필자)에서 비로소 성립한다. 그러므로 힘의 양도(임금의 결정 - 필자)와 힘의 발현(노동의 수행 - 필자) 곧 사용가치로서의 현존재가 서로 시간적으로 분리된다.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진행되는 이 두 과정은 또한 그것이 진행되는 장소가 다르다. 임금의 결정은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노동자는 아직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취업시장에서 여러 자본가를 상대로 자신의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을 결정짓는다. 자본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동력의 구매를 시장에서 여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비교하면서 행한다. 그것은 상품교환의 영역, 즉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는 임투시기에 노동력시장의 상황을 감안하여 일반적인 사회의 임금수준, 다른회사의 임금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임금을 흥정한다. 자본가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시장가치, 교환가치를 이루는 것이다.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이러한 특수한 상품, 즉 노동능력 혹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발견한다.
그러나 일단 시장에서 이처럼 노동력에 대한 상품의 거래가 성립하여 임금이 결정되고 나면 이제 그 대가로 노동이 행해지기 위하여 두 사람은 생산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다. 노동자는 이제 노동을 행할 장소, 즉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출입구에 붙어 있는 그 장소”로 간다. 노동은 여기에서 수행된다. 이처럼 임금이 결정되는 장소와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장소이다. 임금의 결정과 노동의 수행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분리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둘째 이 교환관계는 등가교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 쪽이 받는 것보다 다른 한쪽이 받는 것이 더 큰 부등가교환이다.
보통의 상품교환에서는 항상 가치가 같은 것끼리만 교환된다. 원래 교환이란 것은 같은 크기끼리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수퍼마켓에서 1,000원이라고 가격표가 붙어 있는 소주를 가지고 나오면서 계산대에서 지불하는 것은 언제나 1,000원이다. 그런데 만일 그 소주를 다른 곳에서 800원에 살 수가 있었다면 우리는 대개 “200원 싸게 샀다”, 즉 “200원의 이득”을 보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1,000원에 팔 수 있는 소주를 누군가가 800원에 판매함으로써 “200원을 싸게 팔았다는”, 즉 “200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과 맞물려 있다.
상품교환은 그 순수한 모습에서는 등가물끼리의 교환이고 따라서 가치를 늘리는 수단이 아니다. … ‘교환은 그 성질상 어떤 가치와 그와 동등한 가치 사이에 성립하는 대등한 계약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왜냐하면 받는 것만큼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금노동의 교환관계에서는 이런 등가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이루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말하자면 구조적으로 등가교환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 교환의 내용때문에 그러하다.
임금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경우 이 교환의 내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는 가난의 방패막이를 잃었고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을 갖지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재산인 노동능력을 이용해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이라는 생활수단을 획득하는 것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 교환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환이다.
그런데 임금을 제공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사뭇 달라진다. 그는 원래 돈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임금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노동자로부터 노동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이 노동이란게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노동의 결과물로서 어떤 물건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는 교환의 결과물로서 물건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건은 사실 그에게 교환의 최종목적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이 물건을 다시 시장에 내다가 팔아서 결국 화폐를 손에 넣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좀 분명해진다. 돈을 건네고 돈을 받는 것이 이 교환에서 실제로 자본가가 행하고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본가의 처지는 난감해진다. 이 교환이 다른 상품교환과 마찬가지로 등가교환이라면 그는 같은 금액의 돈을 내고 같은 금액의 돈을 얻게 된다. 이런 교환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화폐를 화폐와 교환하는 것, 즉 동일한 것을 동일한 것과 교환하는 것은 목적이 없고 무의미한 조작같이 보인다. 무릇 어떤 화폐액은 오로지 그 크기의 차이에 의해서만 다른 화폐와 구별될 수 있다. 그러므로 … 최초의 유통(교환 - 필자)에 투입된 것보다 많은 화폐가 유통에서 끌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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