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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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집회 참가자를 IS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데 IS는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를 쓴 중동전문가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자신과의 싸움을 ‘대지하드’, 이교도와의 전투를 ‘소지하드’라고 한다”며 “정신과 언행으로 보여주는 지하드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전투를 뜻하는 소지하드의 경우도 “저들이 먼저 너희에게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의 대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가서 이교도(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를 무력으로 공격해 개종시키거나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침입을 받을 경우에만 최소한의 방어적 수단으로 무력을 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꾸란에 기록된 지하드는 시간이 흐르며 변질됐습니다. 성전의 개념을 보다 공격적이고 과격하게 해석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죠. 이슬람 국가가 유럽의 십자군 공격을 받아 많은 피를 흘리고 결국 몽골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면서, 이슬람 사회에서는 “공격적인 지하드가 신자의 의무”라는 생각이 피어납니다.
이런 생각을 가장 확고하게 이론으로 정리해 전파시킨 사람이 이집트의 사이드 쿠틉(1906~1966년)입니다. 시인이자 문학장학생이었던 쿠틉은 정부장학금으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지만 돌아와서 서구문명을 전파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서구·세속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옵니다.

이슬람 과격주의의 이론을 세운 사이드 쿠틉
이집트로 돌아온 그는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서방국가들에게 침탈당한 것은 이슬람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슬람이 아닌 모든 곳을 이슬람의 힘으로 해방(정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무력을 통한 성전을 최고의 종교적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본래 꾸란에서는 칼리파(지도자)만이 성전의 개시를 선포할 수 있지만, 쿠틉은 ‘가만히 있는 것’을 죄악으로 봤기 때문에 누구나 필요에 따라 성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무한 지하드의 시대’를 연 것이었죠. 그는 1966년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돼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진리를 향한 이정표> 등 옥중에서 남긴 글을 통해 ‘금서’가 돼 더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그의 이론은 이후 모든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일으키는 뿌리이자 명분이 됩니다.
<지하디스트의 여정>을 쓴 레바논 출신 미국인 저널리스트 파와즈 게르게스는 “과거 이슬람의 지하드가 가까운 적, 내부의 적과의 싸움이었다면 과격주의가 거세지면서 점점 더 멀리 있는 적, 가장 큰 적과 싸워야 한다는 프레임이 형성됐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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